[별글] 65_ 애착 장소

by 벼르

어릴 때는 이동의 자유가 많지 않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나이를 준-성인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비로소 보호자가 골라주는 친구가 아닌, 본인이 선택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나이. 어쨌든 그렇기에 특정 장소를 좋아한다고 해서 질리도록 그 장소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학교나 학원, 집이 아닌 그 어딘가의 장소에 가려면 엄마 아빠를 졸라야 했고,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희소하고, 가장 가고 싶었으나 가장 적게 간 장소는 '정글 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린이들이 볼풀에서 놀고,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고, 트램플린 위에서 뛰고, 말랑한 장애물을 넘어다닐 수 있는 구간도 있는 그런 놀이 시설이 유행이었다. 누군가는 생일파티를 정글인에서 하기도 하고, 그냥 놀러가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키즈 카페로 통칭하는 시설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온 세상이 정글 인이었다. 안전상의 이유겠지만 나는 이곳을 갈망하면서도 자주 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미짱은 나를 놀이시설 안에 던져두고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늘 내가 정글인에서 놀고있을 때에도 나를 지켜봐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미짱에게 그럴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미짱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같이 책읽기, 함께 노래부르기 등 더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분기별로 한 번씩은 정글인에 가서 놀았다. 그런 날이면 꼭 일기를 써서, 일기장을 읽는 성인인 내가 다시 기억한다. 정글인에서 노는 일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었는지 말이다.


어린이 전체로 따지면 희소했지만, 나는 거의 일 년에 서른 번도 넘게 찾은 곳은 놀이동산이다. 친구들은 아마 이런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을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꼭 놀이공원 연간 회원권을 끊어두고 일요일 아침에 놀이공원이 열리자마자 입장해 점심 무렵에 나왔다. 우리 가족도 종교인이었지만 어린이 미사는 토요일 오후에 있었고, 일요일 오후에 대부분의 종교인이 교회를 찾으면 놀이공원은 완전히 한산해졌다. 우리는 사람이 없는 오전 시간에 실컷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 무렵에 집에 돌아와 짜파게티를 먹었다.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놀이공원은 늘 가고싶은 장소였고, 목에 걸고 다니는 연간 회원권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나 쉽게 못 해봤을 유년기 경험이 있다면 바로 모델하우스다. 아파트를 판매하려고 지어두는 그 건축물을 말하는 게 맞다. 건설 회사에 다니는 만짱이 가끔, 모델하우스를 오픈하지 않는 날 나를 데리고 소풍처럼 모델하우스에 놀러갔다. 아마 자주 갔으면 지겨웠겠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하염없이 즐거웠다. 모델하우스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최소한의 짐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사시면 됩니다, 하고 말하는 듯한 최소한의 가전제품과 가구들. 사실 살다 보면 짐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커다란 집에, 그것도 우리 집과 달리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방에서 신발을 신은 채(!) 침대에 올라 뒹굴대며 만화책을 읽는 일이 좋았다. 얼마 전 가족여행에서도 아빠가 모델하우스에 우리를 데려가 좋았는데, 이전과 달리 집이 '상품'으로 보여서 그렇게까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좋은 보호자를 만나서, 그다지 억압받지 않는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못 하지만, 혼자서 갈 수 없는 어딘가에 동행당하는(?) 기분은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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