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 별명을 쓰라거나, 회사 면접에서 별명이 뭔지 물어봤다거나 하는 질문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별명으로 뭘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조건도 까다롭다. 고양이, 토끼 같은 동물 종류는 면접에서 말하기에 '나쁜' 별명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사실 그 질문이 진짜로 별명이 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그 별명을 짓고 불러줄 친구가 있는지 묻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슴없이 서로에게 별명을 붙여 부르던 유년기를 지나, 더이상 별명은 'I'll call you ㅇㅇ'이 아닌 'Call me ㅇㅇ!'에 가까워졌다.
어릴 때는 주로 설명이 필요없는 별명을 가졌다. 특히 이름을 활용한 별명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초등학생 때는 평범한 이름이 축복이라고 느껴질만큼, 이름을 이상하게 변형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아무리 변형해도 예쁘게 변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던 내 이름(한별)은 별똥별이 되었다. 유성이라 생각하면 여전히 예쁜 별명이지만, 역시 유년기에는 '똥'에 방점이 찍혔다. 친구들이 장난으로 나를 똥별이라 부르면 나는 울상이 되었다. 멀쩡히 다른 이름을 가진 내 동생이 나 때문에 가진 별명도 있었다. 내 이름이 '한별'이면, 동생 이름은 '두별'이냐는 논리로 애들은 나를 놀렸다. 두별이, 세별이, 네별이... 내 동생은 하나뿐이고 별이랑 상관은 있지만 언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사실 놀리는 대상은 나였지만 나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또 초등학교 때 수우미양가나 상중하와 같은 표현을 지양하게 되면서 가장 잘한 성취수준을 별로 표현하게 되었는데, 성적표를 받을 때마다 바뀌는 별명도 있었다. 애들은 내 성적표에 참 관심이 많았다. 별이 열 개인 날은 열별이, 여덟 개인 날은 팔별이, 하는 식으로 계속 바뀌는 별명이었다.
내 친구들이 젠틀한 건지, 아니면 다들 어른이 되면서 서로의 체면을 지켜주는 법을 알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름을 가지고 무분별하게 놀리는 일은 사라졌다. 서로의 특성을 'mock'하는 일 자체가 사라졌다.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서로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면 내 스스로 지칭하는 말이 생겼다. 예를 들어 친구 딱 하나가 나의 이름 끝 글자를 늘여 '벼르'라는 애칭을 지었는데, 어감이 유독 예쁘게 느껴졌다. 그 이후 오만 군데의 사이트에서 '벼르'라는 닉네임을 쓰고,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는 스스로를 '벼르'라고 소개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벼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열심히 서치한 맛집에 친구를 데려갔는데 친구가 마음에 들어한 날이 있었다. 그날만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다른 친구와 만나는 날도 또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친구들은 말했다. "한별이가 데려간 식당은 실패한 적이 없다니까~?"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맛집네비(맛집 네비게이션)잖아~" 그 이후로 나를 맛집네비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생겼다.
결국 성인기 이후의 별명은 친구들과 나의 합작이다. 성인기 이후에 생긴 (자소서에 써먹을만한) 긍정적인 별명이 있으려면, 일단 좋은 말을 해줄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막연한 칭찬을 쉽게 부를 만한 별명으로 치환해 자칭할 센스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별명을 묻는 질문은 생각보다 심오할 수도 있겠다. 친구가 있는지만 묻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특성이 무엇인지, 자만 없이 모두가 인정할 만한 호칭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스킬까지 묻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