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걸어다니면서 자동적으로 까치발(방언으로는 꼿발이라고 하던데)을 하고 다니게 만드는 마법의 신발. 키를 7센티쯤 키워주고, 심지어 다리도 예쁘게 보이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성 어른을 묘사한 일러스트에는 하이힐이 많이도 등장했다. 나에게 하이힐은 어른의 상징이었다. 어른의 전유물이며, 많은 여자들이 신고 다니는 고유한 신발. 나는 내가 대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이힐을 신고 다니리라 상상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무렵은 하이힐의 전성시대였다. 1학년들끼리 듣는 수업에는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졸업반 언니들과 같이 듣는 수업에 들어가면 늘 또각또각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가끔 나도 약속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날이면 굽 있는 신발을 시도해보게 되었다.
하이힐은 끔찍했다. 사실 술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에 비해 환상을 깨는 대상이긴 했다. 이렇게 쓴맛을 즐기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그래도 술은 납득이 갔다. 사실 오이도 나한테는 너무 썼고, 생마늘도 나한테는 너무 매웠지만 어른들은 즐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입맛이 바뀌는 일은 꾸준히 있었으니까 납득했다. 나는 중학교 때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참치김밥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언젠가 술을 좋아하게 되는 시점이 오는 거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하이힐은 선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이힐은 그냥 너무 아팠다. 고통을 좋아하게 될 수는 없다. 내가 마조히스트가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이힐을 신고 집을 나서는 날이면 하루종일 발에만 온 신경이 쏠렸다. 친구의 인사에 대답하는 순간에도 나는 내 발이 얼마나 아픈지 생각하고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신발을 반만 벗고 있어도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신발을 벗고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가면 몇 명이나 나를 쳐다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언니들은 크게 웃었다. 내가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 거라며, 적응이 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언니들의 발의 신경 세포가 모조리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말은 미묘한 동력이 되어, 나는 스물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꾸준히 하이힐을, 플랫 슈즈를, 워커를, 통굽 신발을, 굽이 있는 샌들을 시도했다.
지금의 나는 신발에 있어 단벌신사다. 많은 사람들이 옷차림에 어울리게 신발을 바꾸겠지만 나는 절대로 신발을 바꾸지 않는다. 가장 편한 신발 딱 하나를 찾아서 마르고 닳을 때까지 신는다. 밑창이 나달나달해질 때까지는 나는 늘 편해진 딱 하나의 운동화를 신는다. 원피스에도, 트레이닝복에도, 평상복에도, 잠옷을 입고 편의점에 나갈 때에도 나는 늘 똑같은 운동화를 신는다. 일년에 두세 번,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아야 할 때라거나 공연에서 의상이 정해져있을 때만 구두를 신고 그나마도 4센티짜리 통굽이다. 발의 편함이 마음의 편함을 결정한다는 걸 깨달았고, 나는 마음이 편안한 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