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73_ 방글이네 떡볶이

by 벼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추억이지만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기억이 있다. 우리 동네 떡볶이집에 대한 기억이다. 우리 동네는 놀거리는 전무하고 먹거리도 거의 없으며 오로지 주거만을 위해 존재했다. 그래서 상가에 괜찮은 가게가 있으면 장사가 무지막지하게 잘 되었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호떡집 사장님이 빌딩을 샀다느니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더 큰 집으로 옮겼다느니 하는 소문이 들렸다(어른들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애들이 얼마나 유심히 듣는지 잘 모른다). 그런 소문은 사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우리 집에서 1분도 안 걸리는 '방글이네 떡볶이'를 좋아했다. 떡볶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방글이네 떡볶이 아주머니는 그냥 음식을 파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동 육아를 담당하는 하나의 일원이었다. 엄마들은 방글이네에 만 원이나 이만 원씩 선불금을 내두고 우리가 하교 후에 배고플 때 얼마든지 떡볶이를, 김밥을, 순대와 튀김을 먹을 수 있게 해두었다.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은데 우리 엄마가 내둔 돈이 다 떨어졌다면? 그래도 괜찮다. 친구 이름으로는 남아있을 테니까. 만약에 우리 모두의 선불금이 없다면? 그래도 괜찮다. 이름을 말씀드리면 외상으로 달아주실 테니까. 그 정도 신뢰는 있는 동네 장사였다. 맞벌이를 하는 집 엄마들은 방글이네를 사랑했다. 손수 간식을 만들어줄 수는 없어도, 방글이네에 간식을 외주 맡겨 우리 애가 굶주리지나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짱은 맨날 이랬다. "배고프면 학원 가기 전에 방글이네 들러." 우리는 맨날 이랬다. "아줌마, 제 이름으로 얼마 남아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자주 엄마가 내둔 돈으로, 가끔은 엄마가 낼 돈으로 부담없이 배를 불렸다.


아직도 방글이네는 번창한다. 여전히 많은 초등학생들의 배를 불리면서 말이다. 정말 신기했던 건 사장님의 기억력이다. 사장님은 늘 우리 이름을 부르셨다. "어머, 민지 왔구나. 정우도 안녕. 오늘 형진이는 같이 안 왔네? 옆에 친구는 처음 보네. 이름이 뭐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단골 관리 차원이라면 그렇게 애쓰실 필요는 없었다. 우리에겐 어차피 다른 옵션이 없었다. 그 흔한 편의점도 없었던 상가이고(아직도 없다), 농협은 어쩐지 장볼 때만 가는 장소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늘 떡볶이 아니면 김밥, 그것도 아니면 순대였다.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얼굴을, 어쩌면 친구들의 어머니들보다도 잘 알았다. 1년 전쯤 미짱이랑 순대를 사러 들렀는데 아직까지도 내 얼굴을 알아보셔서 놀랐다. 아무래도 나는 얼굴을 못 외워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찾아갈 정도로 돋보이는 맛은 아니어도 출출한 배를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던 맛을 가진 분식집. 지금 맥주잔을 기울이며 하는 이야기가 가장 심오한 이야기인 것처럼 그때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하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다. 친구의 이야기에 놀라다 웃다 하다보면 포크에 찍힌 채 먹히지 않고 있던 떡볶이는 선풍기 바람에 식어갔으나, 식는다고 맛없어지진 않을 만큼 자극적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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