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감은 정말 설레는 단어이지만 사실 난 어릴 때 소풍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실내를 선호하는 어린이였던 것과는 별개로, 뭐든지 다같이 해야 한다는 부분이 스트레스였다. 어디든 줄을 서서 이동해야 했고,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만큼만 머무를 수 있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인솔해야 한다는 교사의 스트레스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은 신경질적이었고, 나는 집에 가고싶어했다. 어떻게든 말을 안 들으려고 이탈하는 애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말이다. 사실 집에서 자주 놀러다니는 애들은 소풍에 만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놀이기구를 열 개도 넘게 골라 탈 수 있는 곳에서, 딱 세 개만 골라야 하는 데다가, 뭘 탈지 친구들과 상의해야 하니까.
그래도 소풍에 좋은 부분이 있다면 뜬금없게도 도시락이었다. 나는 엄청난 편식쟁이에다, 집에서 메인 반찬 딱 하나만 두고 식사하는 습관(맞벌이의 분주함으로 생긴 습관이다)에 길들여져서 끝끝내 급식의 밑반찬에 적응하지 못했다. 김치도 나물도 싫어하는 내가 반찬을 남기면 벌을 받는 시스템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소풍은 늘 유부초밥이었다. 김밥조차도 한 번에 여러 맛이 나서 견디기 어려웠으니까. 소풍 도시락의 조건은 간결하다. 쉽게 상하지 않을 것. 식어도 맛있을 것. 유부초밥은 어째서인지 따뜻할 때가 더 별로라는 점에서 완벽하다.
소풍의 핵심 기억이 도시락이다보니 락앤락에 담긴 도시락을 먹을 때면 늘 소풍 같은 기분이 든다. 3단 보온 도시락통은 예외다. 그건 소풍보단 수능을 떠오르게 한다. 한솥 같은 단체 주문 도시락도 아니다. 그건 대학교 행사를 떠오르게 한다. 오로지 락앤락에 약간은 비뚤게 담긴, 집어먹기 좋게 만들어진 음식이 소풍을 연상시킨다. 2018년 2학기에 돈을 아끼겠다고 도서관에 도시락을 싸 다니던 시절이 있다. 나와 짝꿍 몫까지 2인분의 음식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들어서 락앤락에 나란히 담았다. 시험기간에 외식할 시간도 돈도 아낄 겸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쩐지 그 학기가 통째로 소풍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가장 많이 만들었고 성공적이었던 건 BELT 샌드위치였으며, 한 번 만들고 다시는 만들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건 햄식빵 치즈롤(식빵을 납작하게 눌러 펴고 얇은 햄이랑 치즈를 올린 다음 돌돌 말아 김밥처럼 납작하게 써는 음식이다. 만들기 간편하고 비주얼도 좋지만 맛은 그닥)이었다.
사실 소풍이 별 건가. 집에서 만든 음식을, 집이 아닌 장소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소풍이다. 내가 일하면서 수능 준비를 병행해야 했을 때 사무실은 일 아니면 공부로 점철되어 지루하기만 한 공간이었는데, 짝꿍이 도시락을 싸오자 그곳은 즉시 소풍 장소가 되었다. 나에게 로망이 하나 있는데, 만약에 내가 입원할 일이 생긴다면 누군가 병문안을 올 때 도시락을 싸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병실은 나에게 더이상 병실이 아니게 될 것이다. 병원 침대가 곧 돗자리요 TV 소음은 새소리인 소풍 플레이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