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쿠키, 마카롱 같은 비교적 인지적 높은 디저트부터 까눌레, 판나코타, 에클레어에 이르기까지. 난 분명 고등학교 때까지 디저트 귀신이었다. 당류가 막연히 나쁘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혈당의 기전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했던 그때, 나는 가능하다면 모든 식사를 디저트류로 대신하고 싶었다. 밥 대신 딸기 케이크를, 김치 대신 체리 타르트를, 국 대신 초코푸딩을 먹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친구가 반에도 있었는데 우리는 어른이 되면 디저트집 투어를 하자며 온갖 맛집 블로그를 뒤지고 다녔다. 세상에 피자 한 판을 혼자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스크림 파인트 한 통을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완전히 후자였다.
재수를 하면서 친구와 멀어지고 관심 영역이 디저트 밖으로 넓어지며 '디저트 맛집 도장깨기' 계획은 자연스럽게 무산되었다. 하지만 입맛이 변하진 않았다. 고등학생 때 가끔(사실 자주) 급식실에 가는 대신 딸기우유를 홀짝대던 것처럼, 대학생이 된 나는 강의실에서 스무디를 홀짝이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하곤 했다. 지금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맨날 기운이 없는 게 당연하다. 스물 하나의 내 멱살을 잡고 혼내고 싶은 기분이다. 얼마나 극단적이었냐면, 식사로 300칼로리를 먹나 음료로 300칼로리를 먹나 똑같은 거 아닌가, 생각했었다. 남들이 균형 잡힌 식사를 논할 때 난 숫자에 관심있었다. 밥 약속이 없는 날은 하루에 천 칼로리쯤 먹었다. 그게 세 번 다 스무디였던 때도 있다. 거식증에 걸렸을 때는 하루에 4-500칼로리만 먹고 살았던 적도 있으니, 그만하면 건강한 식단이라 생각했다(미친 것 같다). 칼로리 얘기는 이만하고, 어쨌든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밥 대신 단당류 디저트를 먹는 인간이었다는 소리다. 커피 전문점에서 조각 케이크를 먹고 오늘도 든든한 식사였다고 퉁친 적도 많다(이 글을 읽으면 날 혼낼 사람이 많다는 걸 아는데 다 과거의 일이니 묻어두기로 하자).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단 음식을, 특히 액체로 된 단 음식을 조심하게 되었다. 입맛이 바뀐 건 아니고, 아마 슈가 러쉬와 슈가 크래쉬를 체감하게 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슈가 러쉬는 단 음식을 먹은 직후 순간적으로 혈당이 오르는 것을, 슈가 크래쉬는 그 영향으로 몸에서 인슐린을 급격히 분비하여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이런 현상을 혈당 스파이크라고 부르고, 몸에 정말 안 좋다는 걸 안다. 그때는 그냥 몸으로 알았다. 왠지 식사류를 먹었을 때와 디저트류를 먹었을 때는 컨디션이 다르다는 걸, 디저트류를 먹으면 순간 두근두근하고 기분이 좋지만 그 뒤에 우울해진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수도 없이 디저트를 식사 대용으로 (처)먹고서야 알았다.
지금도 나는 알록달록하고 포근달콤한 디저트류의 사진만 봐도 입맛을 다신다. 푸딩도, 에클레어도, 밀푀유도, 크림 브륄레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와구와구 먹기엔 조금 무섭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특별한 보상이 필요할 때나 정말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기회가 생겼을 때만 0.5인분 정도 먹는다(케이크 한 조각을 둘이 나눠먹는다거나). 나도 내가 이런 어른이 될 줄은 몰랐다. 어른이 되면 더 마음 놓고 디저트를 먹으러 다닐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달콤함을 아끼고 보류하다 보니 누리는 순간이 더 소중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