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난 작품이 의도하지 않은 교훈을 얻는다. 작년 봄에 친구를 따라 관람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도 그랬다. 뮤지컬은 큰 흐름에서의 각색 없이 고흐를 그려낸다. 반쯤 미치고 시대의 인정을 받지 못한, 가난하고 병든 화가로. 그리고 마지막 선택까지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탕. 고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뮤지컬을 관람하던 그날이 인상적으로 남은 이유는 세 가지 있다. 그때 난 인생 최악의 시간을 견뎌내는 중이었고 나를 미워함이 분명한 사람들의 위선에 지쳐 있었다. 최악의 시기에 통과하는 행복한 하루는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언제 만나도 편한 친구를 만나서 예쁜 옷을 입고 놀았고, 평소처럼 그 친구는 온통 까맣게 입고 나는 온통 하얗고 분홍색인 옷을 입어서 그걸 가지고도 우리는 한참 웃었다. 뮤지컬이 눈에도 귀에도 안 들어올 정신 상태에서 관람했는데 내 의식은 그 시기 치고 예외적으로 아주 또렷했다. 이 봄에서 기억을 다 몰아내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기억하겠다는 듯 또랑하게 하루를 보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날 공연에서 내 대각선 앞에 만난 아주 귀여운 안내견이다. 친구와 나는 여느 때처럼 따로 떨어져 앉았다. 친구는 특정 배우를 유독 더 좋아하는 뮤지컬 애호가인데, 입장할 수 있는 자리를 잡아 두고도 늘 좋은 자리의 취소표를 찾아 헤맨다. 그날도 친구가 취소표를 잡아서 내가 친구의 원래 자리에 입장할 수 있었던 날이다(내가 직접 예매했다면 맨 뒷줄도 못 앉았을 공연을 친구 덕분에 자주 관람하고 있다). 우연히 내 대각선 앞에 시각장애인 분이 앉으셨는데, 자리를 두 개 예매하셨는지 빈 자리 앞 공간에는 안내견이 있었다.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그 안내견은 하품을 한 번 하더니 익숙하다는 듯이(조금은 지겹다는 듯이) 몸을 둥글게 말고 엎드렸다. 그리고 뮤지컬이 진행되는 내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총소리가 나고 고 폭발음이 들리고 고흐 역을 맡은 배우는 소리를 지르다 노래를 부르다, 사람인 나도 깜짝깜짝 놀랄 순간이 이어졌는데 그 친구는 그저 한 번 더 작게 한숨을 쉬었을 뿐, 아주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그 의연함이 이상하게 기억난다.
마지막 이유는 맨 처음에 말한 그 교훈 때문이다. 사실 난 몇 년 전에 고흐의 편지를 엮은 책을 읽었었고, 고흐보다는 고흐의 동생인 테오에게 반했다. 상술했듯,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고흐는 살아있는 동안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화가였다. 그런 고흐를, 테오는 끝없이 믿고 지지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흐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테오는 내내 이랬다. "형, 언젠가는 세상이 형을 알아줄 날이 올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나는 형의 그림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형, 느껴져. 그날이 곧 올 것 같아. 돈이 더 필요해? 내가 마련해볼게. 형은 그림만 그려." 그리고 고흐는 내내 징징거렸다. 삶에 대해, 그림에 대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에 대해. 솔직히 난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동생을 가져서 테오의 기분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테오였다면 분명 한 번쯤은 "형, 이제 그만해. 나도 지쳐. 그렇게 징징거리려면 그림은 그만 그려!" 이랬을 것 같다. 테오도 분명 힘듦을 내비친 때가 있으나 한 번도 형의 그림을, 실력을, 언젠가 세상이 알아볼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는 다가오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고흐는 테오가 있는데도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타인이 있는데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 자신을, 존재 자체로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고흐는 죽어버렸다.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너무 충격적인 동시에 나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위로가 되었다.
남들은 잘 모르는 화가를 좋아한다고 멋지게 말하고 싶다. 적어도 심리학 하면 프로이트, 철학 하면 소크라테스, 음악 하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수준으로 유명하지는 않은 누군가가 그린 그림이 내 취향이라고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화가를 말하라고 하면 저항 없이 고흐를 말한다. 그가 자살할 만큼 우울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와중에 아몬드나무를 그렸기 때문에.
고흐의 아몬드나무 역시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 그런데 고흐가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테오의 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는 못한다. 난 어쩔 수 없이, 가장 어두운 밤에도 별빛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모차르트의 단조 음악에(모차르트가 작곡한 단조 음악 자체가 많지 않으나) 숨길 수 없이 반짝이는 장난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처럼. 뮤지컬을 같이 보러 간 친구는 이 그림이 눈물 버튼이라는데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말도 안 되게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아롱아롱 피어 있는 아몬드 꽃을 보면 지금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뮤지컬을 본 그 날은 나에게 아몬드 나무 같았다. 죽을 것 같은 시기에 피어난 새하얀 꽃, 비현실적으로 맑은 하늘. 솔직히 말해서 내가 고흐가 이 시대에 태어난 화가라면 난 어떻게든 그와 친해져 손을 잡고 정신과에 데려갈 것이다. 항우울제를 먹으라고 애걸복걸할 것이다. 고흐는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덜 사랑하고 덜 우울해지느니 그림을 사랑하다 죽을 거라고 대답할 사람이다. 나는 이마를 짚으면서, 이래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면서 울겠지. 그러면 그는 또 대답할 것이다.
"아몬드 나무가 피는 하루가 있다면 인생에 걸친 절망은 괜찮아,"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