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정신과 전공의 첫 번째 이야기

by 히비지비

나는 1년 동안 정신과 레지던트 수련을 받았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정규 근무에 더해 일주일에 2~3번 당직을 서면서 개방병동과 폐쇄병동은 물론이고 타과 컨설트(의뢰), 응급실, 외래까지 담당한 점을 고려한다면 꽤 밀도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환자,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세 달간 당직을 서면서 응급실에서만 100명에 육박하는 환자를 봤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환자들이 정신과를 찾는다. 정신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울,’ ‘공황,’ ‘불면’ 정도만 떠올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정신과 진단의 바이블로 여기는 DSM-V에 기재된 진단명만 해도 300가지에 이르고, 똑같은 진단명이 붙은 환자라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라도 진단과 치료를 포함한 접근방법 자체가 통째로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흔히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주요 우울 장애를 연상하기 쉽지만 양극성 장애(조울증)일 수도 있고, 지속성 애도 장애, 지속성 우울 장애, 불안 장애에 동반된 우울감, 조현형 장애, 갑상선 문제, 심지어 뇌 손상으로 유발된 문제일 수도 있다. 2개 이상의 진단명이 붙기도 하고, 그 어떠한 진단명도 붙이기 어려워 여럿의 의사가 몇 시간 동안 토론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정신과에서 처음 만난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바로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과에서는 혈액, 영상검사 등을 통해 나온 수치와 사진을 통해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신과에서도 각종 검사를 시행하지만, 환자가 언제부터 힘들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성격은 어떤지 알려주는 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 본인, 그리고 함께 내원한 보호자만이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과 의사는 그들의 말을 잘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실 정신과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던 시절, 정신과 의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TV에 오은영 선생님이 나와서 한마디 할 때마다 패널들이 웃고 울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멋있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과 3~4학년 때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만난 환자들이 내 말을 듣고 위로가 되었다거나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을 해주면 며칠 동안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명언이라도 내 앞에 있는 환자의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지 않은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정신과 수련을 시작하고 다양한 환자를 만나면서 몇 달, 아니 몇 주 만에 내 꿈은 말을 잘하는 정신과 의사에서 말을 잘 듣는 정신과 의사로 바뀌었다.


환자의 말을 그저 듣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우선 소극적 듣기(passive listening)와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의 이슈가 있다. 전자는 상대의 말을 듣는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지만, 후자는 전혀 다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잘 듣고 있다는 것을 눈짓과 몸짓으로 어필하고, 중요한 대목은 되묻기도 하고, 말의 흐름을 끊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리액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대화의 기술을 요하는 듣기 방식이다.


면담의 주인공은 환자가 되도록 하되,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일은 정신과 의사의 몫이다. 만약 환자가 떠오르는 말을 자유롭게 하도록 내버려둔다면(실제 이러한 ‘자유 연상’ 기법은 정신분석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정작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정보는 얻지 못할 수 있다. 실제 처음으로 주치의를 맡았던 병동 환자와 1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날 약제 조정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내용은 하나도 알아내지 못해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교수님들께 환자 보고를 드리거나 컨퍼런스에서 환자 발표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지적 중 하나가 “이건 왜 안 물어봤어?”다. ‘누구, 무엇, 어디, 왜, 어떻게, 언제’ 중 정신과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사는 단연코 ‘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감정과 사고, 인지를 다루는 학문인 정신과학을 공부하면서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항상 의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


환자 케이스를 논의하는 컨퍼런스가 열리면 실습 중인 의대생부터 레지던트 1-4년차, 교수님까지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데, 연차가 올라갈수록 질문의 격이 달라진다. 나처럼 정신과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단계의 1년차는 A, B까지 궁금해한다면, 컨퍼런스를 이끄는 교수님은 A부터 Z까지 모두 알고 싶어하신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건 매우 큰 능력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서 그 능력이 자연스럽게 늘기도 하겠지만,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신과 진료라는 특수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관심이 있어야 궁금한 점도 생기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신이 관심 없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썸을 탈 때 상대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행동을 관심의 표현이라고 인식하듯, 궁금증은 관심의 지표이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수련을 받는 동안 내가 사람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이 있는 편이라고 느껴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시간인데 종일 관심도 안 가는 사람들과 면담하고 그들의 치료를 고민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지 않았을까.


수련 동기들과 함께 식사나 커피 한 잔을 하거나 MT를 떠날 때면 다들 반짝이는 눈으로 자기가 만났던 환자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정신과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으로 가득 차 이야기를 멈출 줄 모르는 우리를 보면서 정신과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향인이다. MBTI 검사를 해보면 I 성향이 80% 이상 나오고, 학생 때부터 수없이 많은 발표를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떨린다.


하지만 1년간 수련을 받으면서 병동 면담실에서 주치의로서 환자와 일대일로 면담하는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했고, 그 일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환자 역시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게 느껴질 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확신했다.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되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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