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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배 Jul 26. 2018

밝은 빛, 마날리 숲

그 아름다운 빛

유독 북인도에 와서 비를 자주 만나는 듯하다. 시원한 것도 어느 정도여야 시원하지. 마날리 버스 정류장에 내린 배낭 여행자는 폭우를 만났다. 올드 마날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라는데, 이 비를 뚫고 산길을 갈 순 없겠지.


"조금만 깎아줘 겨우 5분 거리잖아!"

"300루피. 디스카운트 없어."


설탕에 몰려든 개미 때처럼 택시기사들이 버스를 둘러싼다. 비가 많이 오니 갑은 택시다. 부들부들 떨며 100루피짜리 세장을 택시 기사에게 건넌다. 큰돈을 써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벌어 먹어 자식들에게 닭이라도 한 마리 사다주쇼.


마날리의 흐린 첫인상


"마날리는 인도에서 제일 유명한 휴양지니 꼭 가봐!"


여행 중 만난 누군가 한 말이다. 아마 그는 마날리 출신 이었던 것 같다. 인도에서 히피들의 3대 성지 중 하나라는 이곳은 명성에 맞게 어디에나 널부러진 히피들이 널린 진짜 히피스러운 마을이다. 뭐 대마에 찌든 그들이나 술에 취한 나나 비슷한 모양새인 것 같기는 하다. 마음은 편하네. 아 대마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수제비, 만둣국이라는 글자가 가게 앞에 적혀있다. 무려 한국어로. 설산이 보이는 마날리의 쌀쌀한 날씨에 수제비라니 어떻게 안 갈 수 있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게로 들어가 수제비를 주문했다. 본래 뗀뚝이라는 티베트 음식인데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한 생김새와 맛을 가졌다. 한국인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 한국어 메뉴판도 구비되어 있다. 미리 말하면 매콤하게 까지 끓여주니 진정 마날리 맛집이다.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맥간에서 먹은 뗀뚝보다 배로 맛이 좋다. 저렴하지만 깊은 맛에 바가지 택시비는 이미 잊어버렸다. 단순해서 참 좋다.


치킨 수제비


뉴 마날리와 올드 마날리 사이에는 숲이 있는데 그곳이 주는 분위기가 좋아 매일 찾아갔다. 마날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다. 메이플 스토리의 엘리니아가 실제로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나무 사이사이로 내려오는 빛이 마법사로 전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숲 중간중간에 있는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낮잠이 당겨 숙소로 가는 길, 사과 와인과 자두 와인이 눈에 띈다. 먹고 자야지.


매일 가던 마날리 숲


마날리는 사과로 유명한데, 그 이유에서인지 사과 주스와 사과와인이 깔끔하고 맛있다. 자두 와인은 왜 맛있는지 생각해봤다. 자두로 만든 술이니 당연히 맛있겠지 뭐. 날씨도 쌀쌀한데 튀긴 만두를 포장해 숙소 테라스에서 와인을 홀짝이며 별을 본다. 기분 좋은 찬바람에 미소가 지어진다. 여행 중 이렇게 소소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작은 행복을 만들어준다.


이런 곳에서 나는 사과는 맛이 있을 수 밖에


마날리에서 술이 와인과 경치에 취해 4일을 보내고, 이제 그 악명 높은 델리로 떠나야한다. 인도에 온 지 한달이 넘었지만 아직 수도인 뉴델리는 가보지 않았다. 사기꾼의 천국이라는 그곳이 살짝 신경쓰이는 배낭 여행자의 어깨가 긴장에 들떠 들썩인다.


마날리에서 보이는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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