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의 명절
언제 추석이었나 싶지만,
기억을 되살려 늦은 추석후기를 써본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들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그 양쪽을 넘나드는 날이다. 하지만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은 대체로 즐겁다. 나같이 직장 다니는 싱글에게 추석은 '좋은 날씨에 허락되는 긴 연휴'이기 때문이다.
'어? 이번 추석 연휴가 꽤 기네.' 뒤늦게 긴 연휴를 알아차렸다. 이런 일정이면 유럽도 다녀오겠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항공권을 검색했더니 유럽은 대부분 3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아, 이번엔 어렵겠구나.' 일찌감치 해외여행은 포기하고 일상을 즐기기로 한다.
30대에는 추석 때는 무조건 멀리 여행을 떠났었다.
하지만 요즘은 일상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나이 들면서 생긴 여유일지도.
추석 전날 친구를 만났다.
연휴 내내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계획했던 야외 나들이는 못했지만, 전시도 보고,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여유롭게 커피도 마셨다
모처럼 여유 있는 날이었다. 내일도 쉬고, 모레도 쉬고, 글피도 쉰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여유. 선물 같은 날이다.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는데, 마음만은 한없이 느긋해진다.
추석 당일,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이모네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고기뭇국, 갈비찜, 잡채, 녹두전, 송편...... 그나마 명절 느낌 나는 날이다.
혼자 사는 싱글에게 명절 음식은 좀 먼 이야기다. 집에서 식사를 챙겨 먹는 편이긴 하지만, 나물이나 생선 이렇게 혼자 해 먹기 어려운 집밥이 가끔 그립다.
그래도 옛날 느낌 나는 명절상이 반갑고, 오랜만에 옛날이야기 나누는 친척들이 소중하다.
한참 입시 준비하는 조카들 때문에 올해는 가족모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언니가 "음식 좀 가져다줄게요."라고 연락하는 바람에 "오, 좋죠. 그럼 오는 김에 우리 집에서 식사해요."라고 대답했고, 덕분에 갑작스럽게 동생네도 오고, 가족모임이 성사됐다
혼자 사는 집이니 좁긴 했지만 옹기종기 앉아서 배달음식을 시켰다.
명절에 배달음식은 좀 안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오순도순 밀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다.
가족이란 게 결국 이런 거다.
완벽한 장소나 완벽한 음식이 아니라 좁은 집에 배달음식일지라도. 그냥 함께 있어도 고맙고 소중한 것.
그동안 못 보던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도 이런 연휴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간식거리 옆에 놓고, 남들 다 봤다는 '미지의 서울'을 1편부터 시작하고, 새롭게 업로드된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추억을 소환해 본다.
남는 날은 휴일 루틴을 보냈다.
카페 가서 글 쓰고, 짐에 가서 운동하고, 동네 산책하고, 연습실 가서 플루트도 불고. 오랜만에 하는 강의준비도 하고.
"자알 놀았다."
완벽한 계획도, 근사한 해외여행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며칠간의 휴가를 보냈다.
이런 게 싱글의 특권이다. 별거 아닌 일들도 누구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속도대로.
그런데 드는 생각.
"어떡하지. 또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