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것과 하얀 것에 대해 쓰다 (4)

한국인의 국어생활 24

by 집우주

가장 단순하게 두 단어의 차이를 따져보자. 희다는 두 글자, 하얗다는 세 글자다. 원고지에 쓰거나 같은 속도로 읽는다고 가정하면, 희다에 비해 하얗다는 공간이나 시간이 50% 더 필요하다. 종결형 어미 '-다'를 빼고 어간에 '-(으)ㄴ'을 붙여서 흰과 하얀으로 만들면, 글자 수가 두 배가 된다. 특히, 정해진 박자와 음표의 길이에 맞춰 불러야 하는 노랫말에 쓰이는 경우에 음절 수는 무척 중요해진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징글벨》크리스마스 캐롤

② 창밖을 봐~ 눈이 와~ 그렇게 기다리던 하얀 눈이 와~

-《엉뚱한 상상》지누

③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옛사랑》이문세


①은 흰 눈, ②는 하얀 눈으로 썼다. ①에서 '하얀' 눈 사이로 썰매를 타려면 두 글자를 한 음에 욱여넣어야 하고, ②에서 '흰 눈'이 오게 하려면 희인으로 늘이거나 4분 쉼표가 필요하다. 이렇게 흰과 하얀을 바꿔 보면 부르기도 어렵고 영 어색하다. 결코 겨우 글자 하나 차이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미 만든 노랫말을 바꾸려니 어려운 것이다. 같은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여러 개 있고, 글자 수가 다른 것은 작곡이나 작사를 할 때 매우 유리하다. ③에서 보듯이 음표 에 얹히는 단어의 음절 수를 맞춰서 골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흰색과 하얀색을 살펴보자. 둘은 같은 색을 가리키지만, 나는 둘에서 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 앞선 글에서 알아봤듯이 희다가 해에서 나온 단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하얗다 또한 해를 어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전에서 하얗다를 찾아봤다.


* 하얗다 ← 하야다/해야다 ← + 아 + + 다

(이하 밑줄 친 모음의 ㅏ는 '아래아'다.)


글자를 뜯어보니 하얗다에도 태양인 가 있다. 희다의 '희'와 하얗다의 '하'가 모두 해를 뜻하니, 눈길은 저절로 '얗'으로 향했다. 위에서 보듯 '얗다'는 '-아하다'인데 이것은 현대 국어의 '-아/어하다'와 글자가 똑같다. (현재 보통 동사로 쓰는 '하다'의 옛 표기가 '다'다. 중세 국어에서 '하다'는 '많다, 크다'는 뜻이다.) '-아/어하다'는 보통 감정형용사와 함께 쓰여 '미안해하다(미안하다), 예뻐하다(예쁘다), 추워하다(춥다)'처럼 감각한 것이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날 때 사용되는 문법이다. 그렇다면 하얗다를 아래와 같이 다시 풀어볼 수 있겠다.


* 하얗다 ← (해야하다 / 하야하다 / 해어하다) ← 희다 + 어하다


'-아/어하다'인 글자 '얗'에는 인간의 감각과 느낌이 있고, 그것을 표현해내려는 인간의 행위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얗다는 인간이 햇빛의 흰색을 구현하는 데서 나온 단어가 된다. 오래 전 햇빛을 보고 희다고 말한 한국인은 직접 그 색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을까? 이렇게 본다면 앞서 일본인의 입장에서 공부한 '흰색은 자연, 하얀색은 인공'이라는 개념이 왜 잘 들어맞았는지 납득이 간다. 또한 하얗다가 오방색의 하나로 색채어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의 행위라는 관점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희다에서, '희'는 해이고 빛이다. 이 세상에 빛보다 빠른 건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후 지금까지 절대 진리로 여겨지고 있기에,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래서 나에게 흰색은 아주 짧고 강렬한 눈부심이다. 반면 '하얗다'는 시간이 걸린다. 하얀 것에는 인간의 시간이 있다. 그래서인지 하얀색은 왠지 느리고 은은하다. 희다가 번쩍이는 자연의 순간이라면, 하얗다는 인간이 공간에 펼쳐놓는 시간이다. 희다가 점이나 선이라면, 하얗다는 면이다. 흰 눈 사이를 지날 때, "와!"하는 탄성과 함께 일종의 감격과 흥분이 일어난다면, 창밖으로 내다보는 기다리던 하얀 눈은 한 폭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찰나인 희다와 달리, 하얗다에는 어느 정도의 시공간이 있어야 한다. 하얀 세상은 있지만 흰 세상은 없지 않은가? 또 조금 다른 관점에서, 희다와 하얗다를 직광과 반사광의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가 희다라면, 물질에 반사된 빛은 하얗다고 하겠다. 인간은 빛이 사물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과정이 빛이 바로 눈에 와 닿은 것보다 늦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얗다에는 그 뜻에도, 글자 수에도 분명히 시간이 들어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첫 문단을 읽어보자.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얼음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


-《흰》한강


작가는 흰 것들을 떠올리며 위의 목록을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희다가 들어있는 단어는 '흰 새, 흰 개' 두 개뿐이다. '백목련, 백지, 백발'에서는 한자 백(白)이 보이는데 이를 '흰 목련/종이/머리'나 '하얀 ○○'으로 바꿔보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백은 희다와 하얗다 사이의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하얗다는 '하얗게 웃다'에서 딱 한 번 보인다. 작가는 이를 '희게 웃다'로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문법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억지로 쓴다고 해도 어감이 좋지 않다. 그런데 하얗다라는 색채어를 하얗게라는 형태로 웃다 앞에 놓은 것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괜찮다. 앞서 알아봤듯이 하얗다에는 '인간 관점에서의 시간, 인간이 감각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선 글에서 봤던 <흰>의 문장 중에서 '아무리 희게 빛나도'를 '아무리 하얗게 빛나도'로 바꾸는 건 가능하다. 다만 작가가 말했듯이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배어 있는, 그 경계가 날카롭고 격렬하게 교차하는 '희게 빛나다'와 달리 '하얗게 빛나다'는 약간의 슬로우 모션(slow motion) 효과를 넣은 것처럼 빛이 부드럽게 번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희게 웃다, 희게 얼어 붙을 것이다, 머리가 희게 세다'로는 절대로 쓸 수 없다. '웃다, 얼어 붙다, 머리가 세다'는 빛의 속도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움직임과 변화와 세월이라는 인간이 보고 느낀 시간인 것이다.


드러난 현상으로서 흰색과 하얀색은 같지만, 희다와 하얗다는 근원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이번 주제를 마무리하려고 하니, 작가가 써 놓은 '흰 것'이 다시 눈에 밟힌다.


*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에게

"이제 당신에게 내가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것을,

오직 것들을 건넬게."


*

떠날 때 아직 여름이었던 서울이 얼어 있었다.

뒤돌아보자 구두 자국들이 다시 눈에 덮이고 있었다.

희어지고 있었다.


-《흰》한강


이제야 작가가 하얀 것이 아닌 흰 것에 대해 쓰고 싶었던 마음을, 그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책. 한강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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