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27
인간이 감각하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지금이 아닌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신체와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을 중요하게 여기며, 누군가는 세 가지 값진 금으로 황금, 소금, 지금을 말하기도 했다. 벌써 꽤 오래된 이 표현이 진부하거나 여전히 오글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이 소중하다'는 의미를 크게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시간과 관련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이 앞으로 간다'는 보통의 인식에서 '지금'을 기준으로 전후(前後)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이 언제인지에 따라서 '어제-오늘-내일'이나 '작년-금년-내년' 같은 단어들이 가리키는 때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어뿐 아니라 어느 언어에서나 시간 관련 단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달력과 시계를 매일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단어들은 꼭 필요하다. 나는 시간과 관련한 한국어 단어 중에서 '아까'와 '이따가'가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 아까 : 조금 전에.
* 이따가 : 조금 지난 뒤에.
뜻풀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고개가 갸우뚱해질 것이다. 아까를 "조금 전에"나 "좀 전에"로 바꿔서 말해도 아무 문제될 게 없어 보이는데 그럼 아까라는 단어가 도대체 왜 필요한 건지 궁금하다. 뭔가 개운하지 않을 때는 외국어 번역을 돌려서 뜻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따가는 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한국어 교재에서 이따가를 포함한 '나중에, 다음에, 금방, ...'등 여러 단어가 보통 later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아까와 이따가의 매력(?)은 '지금이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아까가 말하는 '조금 전'은 어제로 돌아갈 수 없고, 이따가가 가리키는 '조금 지난 뒤'는 내일에 닿을 수 없다. 영어로 번역할 때 earlier in the morning(아까)이나 later in the evening(이따가)처럼 특정 시간을 덧붙이는 게 조금 낫긴 하겠지만, 이는 구체적인 시간을 가리키지 않는 두 단어의 특징을 오롯이 반영하지는 못한다. "밥 먹었어?"라는 물음에 대답으로 "좀 전에 먹었어."와 "아까 먹었어."는 다르다. 언어를 수학처럼 절대화할 수 없겠지만, 아래 식은 단어가 품고 있는 시간의 길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지금부터 오늘의 경계까지의 시간 > '아까/이따가'의 조금 ≥ 일반적인 의미의 조금
아까와 이따가는 한국인이 감각하는 조금을 오늘 안에서 마음대로 줄이고 늘이며 쓸 수 있는 마법의 단어다. 나는 이렇게 시간이 한정된 단어를 사용하는 데에서 한국인들이 '지금'과 '지금이 속한 오늘 하루'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밤에도 불을 켤 수 있기 전까지, 한국인의 입에서 이따가는 주로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만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밤은 어두워서 인간이 활동할 수 없는 시간이니, 날이 어두워지면 이따가를 말할 일은 자연스레 줄었을 것이다.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불을 켤 수 있는 현대의 모습은 인류의 역사에서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예외로 봐야 한다.)
이제 단어의 사용에서 인간이 감각하는 낮과 밤이 다르다는 걸 알아보자. 사전을 찾아볼 것도 없이 낮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를 가리키고, 밤은 그 반대의 시간이다. 계절에 따라 낮밤의 길이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전체와 평균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하루가 똑같이 반으로 나뉜다고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낮과 밤 각각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의 결은 완전히 다르고, 한국인이 두 단어를 다루는 방법도 다르다.
* 낮동안 - 밤동안
* 낮사이 - 밤사이
* 긴/짧은 낮 - 긴/짧은 밤
* 낮이 깊다 - 밤이 깊다
일기예보에서 '낮동안, 밤사이'는 들어봤어도 '낮사이, 밤동안'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동안'과 '-사이'는 시간(기간)을 담고 있는 조사이지만 그 길이는 다르다. 어제도 만난 친구한테 "그동안 잘 지냈어?"라는 인사말은 맞지 않은데 '-동안'이 어느 정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사이에(=그새)'에서 보듯이 한국인은 '-사이'의 시간을 아주 짧게 인식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낮과 달리,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은 인간에게 위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조사(助詞)를 편식하는 두 단어에서 낮은 천천히, 밤은 빨리 지났으면 하는 한국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해가 떨어지고 난 후 완전히 어두운 밤은 인간이 죽어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때 활동을 한다면 밤의 시간을 감각하는 일이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밤에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정도에 따라 "밤이 길다/짧다"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 어느 소주 브랜드에서 '긴밤, 짧은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것이 성관계를 뜻하는 은어라며 뭇매를 맞았는데 사회적 영역에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문법적으로 잘못을 따질 것은 없다. 하지만 낮술을 하면서 '긴낮, 짧은낮'을 말하는 건 분명히 어색하다. 서술 형태로 말할 때도 한국인은 "하루가 길다/짧다"처럼 '낮' 대신에 다른 주어로 바꾸어 말한다. 계절이나 절기에 대해서 "하지를 지나면 낮이 짧아진다"처럼 실제 낮밤의 시간을 다룰 때만 '낮이 길다/짧다'가 가능하지, 인간의 감각 차원에서 한국인은 낮의 길이를 재지 않는다. 낮은 한국인 전부가 똑같이 인지하는 절대적 시간이고, 밤은 일부나 개개인의 상대적 시간인 것이다. 밤이 깊을 수는 있지만 낮은 그럴 수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낮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다른 관점은 '자정(子正)'과 '정오(正午)'에서도 나타난다. 두 단어는 현대의 24시간 체계 이전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순으로 시각을 표현하던 '12진각법(十二辰刻法)'에서 사용되던 단어다. 자시(子時)는 23:00~01:00 두 시간인데, 이는 다시 앞뒤 한 시간씩 자초(子初)와 자정(子正)으로 나뉜다. 그래서 밤에 두 시계바늘이 숫자 12에서 놓이는 시각이 자정의 시작인 것이다. 아무튼 이 규칙대로 쓰면 '낮 열두 시'는 오시(午時 11:00~13:00)에 속한다. 정오(正午)는 오정(午正)의 글자를 뒤집어서 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두 단어 모두를 찾아볼 수 있었고, 옛날신문에서는 1900년대 초중반까지 정오가 더 많이 보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정은 1980년대까지 몇 번 등장한 후로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 변화의 원인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어둡지 않은 창밖과 하루 종일 환한 집과 꺼지지 않는 모니터 불빛을 보면서, 낮밤의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글자를 뒤집은 단어만 선택되어 살아남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하루와 관련된 아래 세 단어를 살펴보자.
* 아침 : 날이 새면서 오전 반나절쯤까지의 동안.
* 점심 : 하루 중에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정오부터 반나절쯤까지의 동안.
* 저녁 :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뜻을 보면, 아침-점심-저녁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인 낮을 셋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아침, 점심은 '동안'이 쓰이고, 저녁만 '사이'로 풀이되어 있다. 한국인이 저녁의 시간을 짧게 정의한 것이 눈에 띈다. 만약 아침-점심-저녁의 시간의 길이가 균형을 갖춘다면 나는 아침과 저녁의 길이가 비슷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의 기대와 희망이 담긴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는 마음과 하루 일과에 지쳐서 빨리 집에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아침해'라는 단어는 있지만 '저녁해'는 없다.)
세 단어는 식사와 관련되어 있어서 더 가깝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삼시세끼를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근현대에 이르러 생긴 식생활의 변화로, 고려나 조선의 기록만 봐도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농사일을 하던 중간에 새참을 먹은 것이다. (이것을 몰랐을 때,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에서 왜 점심을 다루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점심(點心)은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로 이 또한 가벼운 간식을 먹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식습관은 한번 더 크게 바뀌었다. 주말 이틀을 연달아 쉬게 되면서, 거기에 서양의 브런치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인은 아침 겸 점심인 '아점'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멀어지자 점심과 저녁을 아우르는 '점저'도 생겨났다. (한국만 이런 건 아니고, 영어 단어의 brunch(breakfast + lunch)나 lunner(lunch + dinner)도 이런 사회현상이 반영돼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또 밤 늦게까지, 날을 넘겨 새벽까지도 자지 않고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이에 맞춰 언제 어디에서든 배달, 포장, 즉석 조리식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야식(夜食)은 한국인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저 옛날, 우리 조상들은 아직 빛이 남아 있는 저녁(시간)에 저녁(식사)을 먹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해가 완전히 떨어진 '밤'에도 얼마든지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시대가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고, 식사시간이 늦어졌는데도 한국인은 여전히 저녁을 먹는다. 글자 그대로 따지자면 '밤에 먹는 식사'는 '야식'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훗날 이것이 반영돼 '야식'으로 대체되고 '저녁(식사)'이 사라지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정오(正午)'가 아닌 '오정(午正)'?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9010316094007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