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국물은 시원하다 (1)

한국인의 국어생활 29

by 집우주

아주 오래되고 해묵은 질문을 다시 꺼내겠다. 한국인은 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할까? 어릴 때 나는 식사 자리에서 종종 듣던 어른들(주로 중장년의 남자들)의 이 말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었다. 어린 나처럼 이것이 궁금했던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은 웹에 이미 차고 넘친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관련한 유튜브, 카드뉴스 등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이니 이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아직 식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말할 때는 아래 둘 중 하나다.


㉠ 차가운 국물을 마시고

㉡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은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은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는 우리 몸의 과학적인 원리가 있다고 한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배출되며 일시적으로 체온이 떨어지고, 또 혈액 순환이 활성화되어 혈관이 확장되는데 이 때문에 열의 발산이 쉽게 되면서..." 우리 몸이 시원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많은 한국인들이 몸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 삼계탕을 먹으러 간다. 펄펄 끓는 국물을 삼키며 더위를 물리치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 그저 선조들의 허무맹랑한 말장난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 개운하지 않다. 한국인이 정말 몸이 감각한 온도를 표현하는 것으로만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는 분명히 한국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귀에도 이상하게 들릴 것이니, 위의 상황을 영어로 말해보자. ㉠의 예로 냉면이 좋겠다. 차가운 육수 자체나 그것을 감각한 느낌에 대해서는 단어 cold를 사용해서 말하면 될 것 같다. ㉡의 경우 내 짧은 실력으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땀과 열을 빼서 몸이 시원해진다고 하니 cool 같은 단어를 쓰면 되려나? 검색 찬스를 써서 찾아낸 바로는 이럴 때 "It hits the spot."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말로 "딱이다." 정도의 어감으로 '만족감, 원하는 즐거움을 주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표현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난 후에 "시원~하다"고 뱉는 한국어의 느낌과 딱 맞지는 않는 것 같다. 중국어나 일본어에도 ㉡에 적당한 표현은 없었다.


누군가는 '한국식 표현의 최대 난제'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설명하려고 할 때, '시원하다'를 '온도가 낮다, 차갑다'로만 생각해서 현상을 단어의 뜻에 끼워 맞추려고 하거나 아예 뜻과 상관없는 번역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시원하다에 대한 오해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단어를 제대로 알기 위해 사전을 꺼내보자.


* 시원하다 :

① 덥거나 춥지 아니하고 알맞게 서늘하다.

② 음식이 차고 산뜻하거나, 뜨거우면서 속을 후련하게 하는 점이 있다.

③ 막힌 데가 없이 활짝 트이어 마음이 후련하다.

④ 말이나 행동이 활발하고 서글서글하다.

⑤ 지저분하던 것이 깨끗하고 말끔하다.

⑥ (‘시원하지’ 꼴로 ‘않다’, ‘못하다’의 앞에 쓰여) 기대, 희망 따위에 부합하여 충분히 만족스럽다.

⑦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가뿐하다.

⑧ 가렵거나 속이 더부룩하던 것이 말끔히 사라져 기분이 좋다.


번호가 무려 여덟 개다. 다 뜻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로 통한다. 어느 뜻 하나가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들을 모두 꿰어내는 하나가 있다는 말이다. 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정말 반갑게도 나보다 훨씬 먼저 이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답을 찾아낸 분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글자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시원함은 무엇인가가 잘 통하는 상태를 말할 뿐이다.

기운이 잘 통하고 느낌이 잘 통하고 이야기가 잘 통하고

컴퓨터 네트워크가 잘 뚫리고 전화기가 잘 터지는 것.

이 모두가 시원함이다.


- <"으~ 시원해" 목욕탕 아버지의 거짓말?> 이상국 기자


그렇다. 시원하다는 '무엇인가가 잘 통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게 미안하니 '장애나 막힘 없이, 방해를 받지 않고' 정도를 덧붙이면 좋겠다. 꿰뚫고 통하는 하나를 알면 사전의 개별 뜻을 따로 따져야 하는 수고가 줄어든다. 이제 아래 예문들에 쓰인 시원하다가 훨씬 쉽게 이해될 것이다.


시원한 바람 / 시원한 김칫국 / 시원하게 뻗은 고속 도로 / 시원하게 대답하다 /

쓰레기장을 시원하게 치워 놓아라 / 일이 돌아가는 모양이 영 시원치 않다 /

일이 시원하게 끝났다 / 체했던 속이 시원하게 내려갔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는 말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속이 다 시원하다.



** 참고 **

중앙일보. <일본어>시원하다와 차갑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25542#home

아시아경제. [카드뉴스]'으~ 시원해' 목욕탕 아버지의 거짓말?

https://www.asiae.co.kr/article/20160627105905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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