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30
'시원하다'는 '무엇인가가 잘 통하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이 왜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근본 의미로 보면,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지나 장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쭉 막힘없이 내려가는 것을 시원하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번 주제에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이게 다였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먼저 이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 있었고, 여기에 더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은 이번 주제를 다루지 않으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한국인이 뜨거운 것을 마시고서 시원하다고 할 때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선 앞서 확인했듯이 한국인은 차가운 것을 마시고서 시원하다고 말한다. 무더운 여름에 냉면을 찾거나 한겨울에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들이켜는 건 차가운 것에서 시원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의 시원하다는 '(액체의) 온도가 낮다'는 뜻일 수도 있고, '(몸속에서 액체가) 잘 통하는 상태'로도 볼 수도 있겠다. 국물이든 물이든(냉면 육수와 커피) 차가우면 둘 다 시원하다고 말하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뜨거울 때는 다르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한다. 국물이 식도와 위장(胃腸)을 지나가는 걸 감각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뜨거운 물'을 마실 때는 시원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이 입에 닿으면 "앗 뜨거!"에서 그치지, 시원하다로 이어지지 않는다. 주변에 뜨거운 물을 마시고 국물을 마실 때처럼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을 보았는가? 아무리 뜨거워도 국물은 시원할 수 있지만, 똑같은 온도여도 물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 시원하다
- 국물 ; 차가울 때, 뜨거울 때 모두 가능
- 물 ; 차가울 때만 가능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그만한 지식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뜨거운 국물과 뜨거운 물을 마실 때, 두 경우에 각각 신체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우리 몸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궁금하지만 검색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고기나 채소를 우려낸 국물은 물에 비해 열량과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을 테니 사람은 국물을 마실 때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느낄 것이다. (보통 국물을 마신다는 건 식사를 한다는 뜻이고, 밥과 건더기도 함께 먹으니 당연히 물을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경우이긴 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에너지가 생기면 "기운/힘이 난다"고 말하면 되니 이것이 국물에만 "시원하다"가 가능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시원하다의 근본 뜻인 '잘 통하는 상태'와도 거리가 멀다. 과학도 의학도 비전문인 내가 봤을 때 '시원하다'의 근간이 되는 '액체의 온도'나 '액체가 몸속에서 통하는 감각' 차원에서는 국물과 물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는 시원하다고 하고, 뜨거운 물을 마시고는 그러지 않는 걸까? 나야 당연히 모른다. 며느리도 모른다. 민호 아버지도 정답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결국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수밖에. 가장 단순하게, 국물에는 있지만 물에는 없는 글자 '국'이 눈에 들어오니, 우선 국에 대해서 알아보자. 국을 포함한 탕, 찌개 등에는 건더기와 국물이 있다. 한국인은 건더기가 크고 많이 들어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국물을 좋아한다. 국밥집에 가 보면,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있는 한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다 먹을 때쯤이면 뚝배기를 받침대에 기울여 올려놓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는다. 심지어 국물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닌 닭갈비, 오징어볶음 같은 음식들에서도 얼마 있지 않은 국물을 싹싹 모아서 밥을 볶거나 비벼서 먹는다. 라면 국물에는 찬밥을 말아서 먹고, 떡볶이 국물에는 순대나 튀김을 찍어서 먹는다.
한국인은 국물을 사랑한다. 사랑은 아끼는 것이고, 아끼는 것은 쉽게 버릴 수 없다. 고로 한국인은 국물을 버리지 못한다. 요즘은 식사량이나 식습관에 따라서 국물을 남기기도 하는데 예전 같으면 어른들한테 "국물이 진짜다. 여기 좋은 게 다 들어있다."고 한 소리 들으며 혼났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옛날로 돌아가게 된다. 잔칫날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온 마을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자칫 고기가 모자랄 수도 있으니 물을 넣어서 양을 늘린다. 고기와 함께 그 물을 마시면 빠르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국물을 내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배부르게 만들 수 있도록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국물과 물의 차이가 글자에서는 '국' 자에 있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밥'에 있다. 물은 아무 때나 마시지만, 국물은 식사 때만 마신다. 현대생활 이전에, 대부분 농사를 업으로 삼았던 한국인은 고봉밥을 먹었다.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찬을 차리기 어려웠기에 '밥심'에 기댔던 것이다. 논에서 밭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땀 흘리고 몸을 쓰며 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들은 그 많은 밥을 두세 그릇씩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입에 찬 없이 밥만 밀어넣으면 목이 멘다. ('멕히다'로 쓰고 싶어!) 찬은 변변찮고 밥은 먹어야 할 때, 바로 국물이 필요한 순간이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 주면 밥이 살살 부서지며 술술 잘도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는 데에는 밥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시원하다는 말은 액체가 잘 통하는 상태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겠지만, 밥이라는 장애물이 얹어져 더 명료해졌다는 생각이다. 시원하다는 잘 통하는 상태이고, 통한다는 것은 무엇이 움직여야 한다. 바람이 불어서 시원한 것은 공기가 이동해서, 기온이 낮아서 시원한 것은 열이 이동해서 그런 것이다. 멈춰 있고, 갇혀 있고, 막혀 있어서 흐르지 못한다면 시원할 수가 없다. 시원하려면 '시원하지 않은 상태'가 전제되거나 비교되어야 한다. 목구멍에 욱여넣은 밥은 장애물이고, 입에서 식도와 위장으로 통하는 길은 시원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국물은 밥을 부수고 녹이며 길을 튼다. 시원함에는 거침이 없어야 한다. 기운이 강하고, 기세가 좋은 흐름만 시원하다고 할 수 있다. 고구마를 먹어서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처럼 밥을 먹을 때는 국물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음식에 국물요리가 많은 것도 밥을 많이 먹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니 든든하게 밥을 먹을 때 뜨거운 국물의 시원함, 퇴근 후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캔의 시원함, "성격이 시원시원하네."와 "장사가 영 시원찮아."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은 성질이 같은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물로 대표되는 커피, 차, 우유 같은 음료를 뜨겁게 마실 때는 시원하다고 말할 수 없다. 스프(soup)나 뱅쇼(vin chaud)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물을 마시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목이 마르거나 땀을 많이 흘린 몸 상태가 물을 원하는 조건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도부터 장에 이르는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지 않을 때 그 길은 언제나 통하고 있는데 그것을 "시원하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이는 평소에 텅텅 빈 도로를 보고 굳이 시원하게 뚫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우리 몸은 추운 곳에 있지 않는 이상, 뜨거운 물을 찾지도 않는다. 인류가 호수나 강의 물을 마셔와서 실온의 물을 마실 수 있는 쪽으로 진화한 때문일 것이고, 반드시 가열해서 익혀 먹어야 하는 식재료에 반해 물을 데워 마시며 에너지를 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뜨거운 물은 그냥 뜨거운 것이다. 아울러 이쯤에서 '뜨거운 국물'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겠다. 국은 불을 사용하는 요리이니 애초에 '차가운 국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식은 국은 뜨거운 것보다 밥을 잘 넘기지도 못하는데 온도가 낮으면 분자의 활동성이 줄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국이 식었다면 반드시 다시 데워서 밥상에 올린다.
이번에도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한껏 늘어놓았다. 시원하게 끝을 내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또 질문 하나가 끝을 막는다. 만약 한국인이 밥을 먹을 때 뜨거운 물을 국물처럼 마신다면 그때도 "시원하다"고 말할까? 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물리적으로는 밥도 물도 잘 넘어가겠지만 오히려 맛이 없어져서 음식 자체에 대한 욕구가 사라질 것 같다. 음식을 넘길 마음이 없어지니 당연히 무엇이 통할 일도, 시원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