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34
짜장면도 되고, 자장면도 된다.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짜장면이다. 짜장면 하면 바로 입에 군침이 돈다. 반면에 자장면은 듣기만 해도 졸린다.
어떤 책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나는 우리나라 어느 중국집도 자장면을 파는 집을 보지 못했다.
중국집에는 짜장면이 있고,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 <짜장면>, 안도현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책 <짜장면>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아나운서가 계속 [자]장면이라고 해서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시인은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 주지 않아서 더 힘주어 '짜'장면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나운서가 그렇게 말한 건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집 간판과 메뉴에서 '짜장면'을 봤어도 신문과 방송에서는 '자장면'으로 쓰고 '[자]장면'으로 읽어야 했다. (방송에서 표준발음을 지켜야 하는 아나운서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표준어는 자장면이었지만 거의 모든 한국인은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이라고 한 것은 위의 아나운서처럼 불가피하거나 의도적으로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나운서도 평소 입말에서는 '짜장면'이라고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짜장면'을 인정해 달라고 외쳤고, 오랜 노력 끝에 결국 2011년 짜장면은 표준어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한국짜장협회(?) 소속도 아닌 사람들이 국립국어원에 편지까지 써 가면서 왜 이렇게 짜장면을 인정해 주기를 바랐을까? 어원, 문화, 관습, 개인의 추억 등을 살피고 따져봤을 때 짜장면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근본적인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된소리가 맛있고, 입맛을 자극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는 자장면만 표준어였던 유구한 역사에서 모든 짜장라면에는 글자 '짜'가 쓰였다는 사실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자파게티, 자자로니'가 맛있게 들리는가? 입맛도 말맛도 싹 달아나버린다. '자왕, 진자장'은 이름만으로 라면인지 몰라보겠다. '진진자라'는 무슨 자라인가? (태진아 노래다.) 그리고 아무리 한우 채끝살을 넣었다고 해도 '자파구리'라고 하면 그냥 구리다.
그러니 한국인은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에 [땡]기는 것이다. (표준어는 '당기다'지만 이 역시 말맛이 안 산다.) 다시 말하지만, 된소리는 맛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의 음식단어에는 된소리가 많이 들어있다.
* 쌀, 떡, 찌개 / [꼬]기, -[꾹], -[빱]
* 빵, 짬뽕 / 꿔바로우, 똠양꿍, 빠에야, 라따뚜이 / [쨈], [쏘]시지, 돈[까]스
* 타코, 파스타, 피자
된소리는 한국인의 주식인 쌀에 들어있다. 쌀로 만드는 떡에도, 쌀밥과 함께 먹는 찌개에서도 들린다. 아이들은 눈으로는 '고기'로 배우지만 입으로는 [꼬]기라 한다. 물론 이는 닭[꼬]기, 물[꼬]기에서도 들을 수 있는 자연스런 된소리이기도 하다. 국은 재료를 넣으면 된장[꾹], 미역[꾹], 김칫[꾹]처럼 소리까지 맛있어진다.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도 모두 [빱]이다. 한국인은 매일매일 삼시세끼에서 된소리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사전을 찾아보면 볶음[밥]은 '밥'이지만 비빔[빱]은 '빱'이란다. 한국 전통 음식 하면 역시 비빔밥, 그러기에 한국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비빔밥에는 반드시 된소리가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한국인은 즐겨 먹는 외국음식에도 된소리를 바른다. 포르투갈어 pão는 일본으로 가서 パン이 되었고, 한국에 와서 빵이 되었다. 얼핏 소리를 들으면 '팡'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ㅃ을 사용했다. 팡이라고 하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빵이 아니라 팡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인들이 주식인 밥을 대체할 만큼 빵을 많이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짬뽕은 중국어 炒码面[차오마멘], 일본어 ちゃんぽん[챰퐁] 등 어원이 확실하지 않고 [썰]만 많은데 어쨌든 한국인은 그것을 된소리로 옮겼다. 꿔바로우(锅包肉), 똠양꿍(ต้มยำกุ้ง), 빠에야(paella), 라따뚜이(ratatouille)같은 음식은 아직 규범 표기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미 언중은 된소리가 나는 쌍자음으로 쓰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예사소리나 거센소리가 쓰인 자음도 한국인은 된소리로 발음한다. jam은 잼이라 쓰고 [쨈]이라 읽는다. "잼 있어."라고 하면 "재밌어."로 오해할 것을 염려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시지를 [쏘]시지로 읽어야 고전유머나 아재개그가 가능해지는 때문도 아닐 것이다. 세상에, 돈[가]스라니… 개인적으로 말맛이 살지 않아서 아쉬운 건 타코(taco), 파스타(pasta)다. 각각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들으면 [따꼬], [빠스따]에 가깝기도 하다. 비교적 근래에 들어와 대중화된 음식이기에 아무래도 영어발음의 영향이 강한 외래어표기법을 따라 된소리를 피했을 것이다. 피자도 '피짜'가 아니어서 좀 서운하다. (한때는 '핏자'로 쓰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벌집핏자'가 된소리 맛을 지키고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된소리의 말맛을 논할 때 한국어 욕을 빼놓을 수 없다.
* 씨, 씹, 씨발, 썅, 새끼, 꼴통, 또라이, 대갈빡, 빡치다, 삐꾸, 뻑큐, 찐따, ...
한국어의 욕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된소리가 들어있는 욕은 사용량이나 빈도에서 그렇지 않은 것들을 압도하리라 본다. 기본적으로 쌍자음을 넣어 된소리를 내야 욕도 맛이 살아난다. 또 상대를 자극해야 하는 경우라면 비하에 된소리를 얹는 게 좋다. 머리가 아니라 대가리로, 나아가 대갈빡이라고 했을 때 확실히 상대를 더 열받게 할 수 있다.
된소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돌아이[도라이]'와 '또라이'는 다르다. 돌아이라고 하면 전영록이나 노홍철이 떠오를 수 있는데 절대로 그분들을 또라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영어 알파벳의 F는 한국어에서 ㅍ이나 ㅎ으로 바뀐다. (family를 훼미리로 썼고 요즘은 패밀리로 쓴다.) 그런데 유일하게 Fuck You만 ㅃ이 가능하다. 물론 퍽큐로도 쓰긴 하지만 역시 뻑큐로 해야 깊은 빡침과 함께 한국화된, 토속적인 말맛이 살아난다. (혹시 이외에 F를 ㅃ으로 바꾼 경우가 있다면 제보 부탁드린다.) 한류와 함께 된소리 욕도 수출된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阿西吧[āxība]('아, 씨발'이다.)가 국민욕설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한국 음식도 한국 욕도, 그 맛을 보면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블로그. <편지: 이제는 짜장면을 먹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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