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42
앞서 살펴봤듯이 먹다는 주로 조사(助詞) '을/를'을 취하는 목적어와 함께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동사와 호응하는 조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을/를 먹다'의 형태로 가르치는 게 좋다. 그래야 대상을 바꾸어 가며 이것저것 먹는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잘할수록 앞서 살펴본 사전에 나오는 다양한 뜻의 먹다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사전을 찾으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아래 문장을 보자.
- 이 고기에는 칼이 잘 먹지 않는다.
- 얼굴에 화장이 잘 먹지 않고 들뜬다.
- 사과에 벌레가 많이 먹었다.
- 집 수리에는 자칫 새로 짓는 것보다 비용이 더 먹을 수 있다.
사전에서 먹다를 찾아서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면 조사 '에'를 쓰는 의미가 몇 개 나온다. (이 의미들은 '잘, 안, 많이, 더, 덜, 훨씬' 같은 정도(程度)를 비교하는 부사(副詞)가 사용되는 게 특징이다.) 위의 문장들은 거기에 있는 예시 문장들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에'가 포함된 어절(語節)을 생략하고 "칼이 잘 먹지 않는다, 벌레가 많이 먹었다"로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한국어가 서툰 사람들은 자칫 '이/가'를 주격조사로 생각해서 칼이 주어이고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칼이 입이 있는 생물이 아닌데 먹는다는 표현이 말이 안 된다고 하겠지만, <토이 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처럼 주방기구를 의인화한다면 식사를 하지 않는 칼의 상황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벌레가 많이 먹었다'는 대상이 전제되어 있다면 벌레를 실제 주어로 볼 수 있다.) 이외에 "염색약이 잘/안 먹는다"는 말을 보자. 사실 염색을 하는 상황을 먹다는 행위로 풀어보면 '머리카락이 염색약을 잘/안 먹는다'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람이 약을 먹지 않는가?) 하지만 한국인은 이를 '머리카락에 염색약이 잘/안 먹는다'로 쓴다.
모국어로 한국어를 익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명히, 어렵다. 먹다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더해가며 공부할 필요가 있을 뿐더러 조사의 바뀜과 생략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조사를 헷갈려하지 않는가?) 문득 위 문장들이 외국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고기에는 칼이 먹지 않는다'는 문장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말하는 상황을 가정해 '칼이 안 먹네'로 바꾸어서 번역기에 넣어보았다.
[구글] I don't eat a knife. / ナイフは食べません。
[카카오아이] I can't eat a knife. / ナイフは食べない。
[파파고] The knife is not working. / 包丁が効かないね。
[플리토] The knife isn't working. / ナイフは食べない。
각각의 번역기가 돌려준 영어와 일본어 문장이다. 네 개를 비교해 보면 이 대결(?)에서는 파파고가 이겼다. (영어는 파파고와 플리토가 맞았고, 일본어는 파파고만 맞았다.) 파파고의 일본어 번역은 "칼이 안 먹네"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는 상황까지 반영해 '칼'을 '包丁(부엌칼, 식칼)'로 바꾸었으니 이 문장에서는 가장 번역을 잘했다고 볼 수 있다. I don't eat a knife(나는 칼을 안 먹는다)나 I can't eat a knife(나는 칼을 못 먹는다)의 경우는 '칼'이 목적어로 되었으니 완전히 엉뚱한 번역이고, ナイフは食べない(칼은 먹지 않는다)도 조사 '은/는'으로 바꾸는 바람에 맥락을 모르면 칼이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지금 번역기의 정확성과 성능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칼이 안 먹네' 같은 말은 한국인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지만 문장 그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문장이고, 문법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2010년대 후반 '인공신경망 기반 번역(NMT, Neural Machine Translation)' 방식으로 넘어가면서 단어가 나열된 순서, 앞뒤 맥락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기 때문에 틀리는 원인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다른 외국어를 통해 들여다 보면서 나는 '을/를'과 '에'를 넘나드는 '먹다'라는 동사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이들을 한번에 아우르는 뜻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은 '작은 무엇이 다른 큰 무엇의 속으로 들어가서 작동하다'는 행위가 먹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몸 속에서 작용을 해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은 '먹다'는 행위에서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것을 드러내는 조사에 예민하게 굴지 않는 것 같다. 토씨 하나에 민감한 한국인이지만 먹는 것에서만은 관대하다. 사람이 음식을 먹기 때문에, 큰 것이 작은 것을 먹기 때문에,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그 주체와 대상이 이미 전제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내가 밥을 먹었어."는 분명히 어색하고, "밥을 먹었어."보다는 "밥 먹었어."가 자연스럽다. 조사가 생략돼도 먹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장을 들여다 보면 한국어가 서툰 사람일지라도 '칼이 안 먹네'처럼 조사 '이/가'가 쓰인 문장까지도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먹는 물
㉡ (이거) 먹을 사람
㉢ 냄새 먹는 하마
㉣ 벌레 먹은 사과
위의 예시로 좀 더 자세히 다뤄보자. 동사 '먹다'에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수식하는 어미(語尾) '(으)ㄴ, 는, (으)ㄹ'이 쓰여 있다. ㉠은 물이 대상이고, ㉡은 사람이 주체다. 괄호 안은 이미 언급된 것을 전제로 대상을 생략한 것이다. ㉢은 앞의 것이 대상, 뒤의 것이 주체로 요소가 모두 드러나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쉽다. ㉣은 서술형 문장으로 풀면 '벌레가 사과를 먹었다'나 '사과에 벌레가 먹었다'가 된다. 움직이며 동작이 가능한 벌레를 주체로 볼 수 있고, 어쨌든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시선에서는 벌레나 사과 모두 대상으로 다뤄질 수도 있다. 이처럼 먹다가 쓰인 수식형에서는 주체(주어)와 대상(목적어)의 순서가 바뀌고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조사마저 생략된다. 어쨌든 여기에서 내가 중요하게 보는 점은 한국인은 '먹다'를 언제나 능동형으로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을 '먹히는 물'로, ㉣을 '벌레 먹힌 사과(벌레에게 먹힌 사과)'로 써도 되고, 그렇게 하는 게 언어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먹다'는 행위 자체가 상황으로 정의되고 전제되기에 언제나 능동으로 표현하고 그것이 가능한 것 같다. 그러니 굳이 피동인 '먹히다'로 쓸 필요가 없다.
'먹다'라는 기본형 단어, 심지어 '먹-'이라는 한 글자만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에 글자를 적게 쓰는 쪽이 경제적이다. 이런 높은 효율성은 먹다가 쓰인 다른 단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관광 용어로 자주 쓰이는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 읽을거리' 등은 동사 어간(語幹)에 '(으)ㄹ 거리'를 붙여서 만든 단어들이다. 문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사실 '먹거리'는 '먹을거리(먹을 거리)'가 맞다. 다른 동사들은 규칙이 엄격이 적용되지만 먹다만 예외로 인정됐다. 밥이 하늘이었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한국인인데 먹는 것 앞에서 무슨 규칙을 따질까? 배가 고프면 몸도 마음도 급해지는 게 인간 본능이고, 빨리빨리가 일상이고, 눈치가 빠른 한국인은 '먹-' 한 글자면 OK, 어떤 상황인지 바로 다 알아듣는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이 먹는 것 중에 특이한 것은 '욕'이다. '욕먹다'의 반대는 '욕하다'인데 '□□하다'는 형태의 동사는 그 반대 의미로 '□□받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칭찬하다-받다'가 좋은 예다.) 그런데 받다의 명사형으로 쓰인 '욕받이'는 있지만 '욕받다'로 말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칭찬은 받으면서 왜 욕은 먹을까? (찾다 보니 그리스어에도 매를 맞은 것을 '매를 먹었다(έφαγε ξύλο)'고 하는 표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영화 <친구>에서도 칼 맞은 것을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한다.)
나는 이 답을 '먹다'만 인정되지 않는 다른 문법에서 찾는다. "도시락을 싸 가다, 책을 읽어 오다"에 있는 어미 '-아/어 가다/오다'는 '행동한 후에 나온 결과물을 가지고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 오세요."처럼 실재하는 결과물이 아닌 머리로 기억하는 내용을 가지고 가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어미에 '먹다'는 붙을 수 없다. "밥을 먹어 오세요."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동작의 완료와 순서의 전후를 나타내는 "밥을 먹고 오세요."로 써야 한다.) 한국인은 머릿속으로 들어간 것은 '계속 있는 것'으로, 먹어서 뱃속으로 들어간 것은 '없어진 것'으로 여긴다. 칭찬은 받아서 고이 모셔 두고, 욕은 먹어서 소화를 시키는 것이다. 앞서 늘어놓은 단어들을 다시 보니, 이제 한국인이 왜 이것들을 먹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인이 먹는 것'에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순간일 뿐이고, 그것들로 채우고 비워내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참고 **
블로터.[함께 쓰는 풀리퀘]“뭐 먹을래? 난 간짜장 곱빼기” AI로 번역해보니
https://www.bloter.net/newsView/blt202202110229
블로그. 그리스어로 '매를 먹었다'라고 표현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