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43
이번에는 웬만한 건 '보는' 한국인, 한국어에 대해서 알아보자. 연구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이 감각기관으로 얻는 정보량의 절반 이상(60~80%)이 시각이라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가 없어도 누구나 인간과 뇌 활동에 있어서 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은 물론 동물들도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심지어 식물에게도 눈이 있다. 이 눈은 '막 터져 돋아나려는 초목의 싹, 꽃눈, 잎눈 따위'를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모든 생명체가 세상과 만나고 연결되는 통로, 매개가 바로 '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어에서 눈을 사용하는 행위를 담은 단어도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눈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동사 '보다'인데 기본 의미는 '눈으로 알다, 인식하다'이다. 동서양인을 구분하기 이전에 똑같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프랑스에 다녀오는 게 좋겠다. 프랑스어의 단어 voir - avoir - savoir는 글자를 하나씩 더해가며 단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들은 각각 '보다 - 가지다 - 알다'는 뜻이다. 보는 것을 통해 상(像)을 가지게 되고, 그것으로 알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한국어 사전에 나오는 '보다'의 기본 의미는 이처럼 프랑스어 단어를 통해 쉽게 풀이된다. 인간이 '무엇을 아는 것'은 '보다'라는 행위가 근간이 되는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보다'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조사 '을/를'을 취하는 뜻만 무려 28가지나 나온다. 스크롤을 여러번 내려야 할 정도의 양이니(종이사전이라면 한두 페이지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보다'라는 단어가 실제 언어에서 얼마나 많이 쓰일지 그 가짓수만으로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겠다.
㉠ 하늘, 영화, 시계, 신문, ...
㉡ 아이, 사람, 사주, 시험, 사무, 맞선, 끝장, 술상, 대/소변, 며느리/사위, 이익/손해, 환자,
맛, 간, 장/단점, 집, 시장, 흉, 욕, 때, 눈치, ...
임의로, '눈으로 보다'라는 실제 행위 여부를 기준으로 ㉠과 ㉡을 분류해 봤다. ㉠은 인간의 감각기관인 눈을 통해서 정보를 얻거나 감정을 느끼는 행위에 초점이 맞는다. 하늘, 영화, 신문, 시계를 볼 때 한국인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눈을 대상이 있는 쪽으로 향하게 해서(또는 대상을 시야 안으로 들여오게 해서) 대상의 존재, 특징, 내용 등을 파악한다.
이중에서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신문을 보다'이다. 영어로 바꿔본다면, 이 경우에는 watch, see(보다) 같은 단어가 아니라 read(읽다)를 쓰는 게 맞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경우에 한국인은 신문, 책, 잡지, 보고서처럼 그 안에 있는 문자를 '읽지' 않고 '본다'고 한다. '읽다'는 원래 "그 문장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 소리를 내는 개념이 담긴 단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방이나 서당에서 책을 펴놓고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소리를 내어 읽어가며 공부를 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책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 어디에서나 꺼내 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소리를 내어 읽을 수는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 모르는 사람과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시공간이 많은 현대의 삶에서 그것은 피해를 주는 일이고, 실례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소리를 내지 않는 '읽다'도 괜찮아졌고, 결과적으로 눈만 사용하는 '신문을 보다'라는 표현도 가능해진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영국에서 기차가 발명되고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들고 다닐 수 있는 포켓 사이즈의 책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럼에도 영어에서는 '보다'에 해당되는 동사의 뜻이 확장되거나 대체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야기를 하나 더하자면, 미국인들은 그 옆사람과 대화를 하는 쪽을 택했다.)
어쨌든 내 생각에, 오늘날 한국인은 분명히 책, 신문, 잡지를 읽기보다는 '보는' 쪽을 선호한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덜 채택되는 '읽다'는 '영화, 그림을 읽다' 같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텍스트(text)를 넘어 콘텍스트(context)를 해석하는 쪽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자신의 눈을 대상으로 향하는 행위와 동작 그 자체가 직관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
* 부사 : 어떤 수준에 비하여 한층 더.
* 조사 : 체언의 뒤에 붙어, 앞말이 비교의 기준이 되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
그래서 나는 조사(助詞), 부사(副詞)로 쓰는 아래의 '보다'도 그 출발이 동사(動詞) '보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 둘을 영어로는 각각 more와 than으로 보면 쉽겠다. 부사와 조사로서 두 '보다'가 쓰이려면 대상이 최소한 둘이 있어야 한다. 그 둘을 눈으로 봐야 알 수 있고, 알아야 그 내용을 비교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 눈으로 보는 동작을 적용하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아이를 보다'를 '눈으로 아이를 보다'로도 생각해 "애 좀 봐 줘."라는 말을 듣고 시선을 아이에게 고정하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눈으로 봐 달라는 의미로도 가능하다.) 이럴 때는 문맥과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왜 한국인은 요리를 하면서 맛을 보고, 간을 볼까? 맛과 간은 혀를 사용한 미각의 차원인데 왜 이것에 '보다'는 동사를 썼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간에게 '보다'라는 행위 후에 당연하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알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프랑스어를 빌려서도 이야기했지만 무엇을 느끼고, 깨닫고, 인식하고, 인지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국인은 웬만한 건 일단 본다. 그래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