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44
앞서 다뤘듯이 한국어에서 흔히 말하고 듣게 되는 아래 문장들에서 사용된 '보다'는 결국 두뇌활동으로 이어진 생각, 판단, 결정을 뜻한다.
"보다시피 이런 상황입니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야"
"듣고 보니 그러네."
"보자 보자 하니까 안 되겠구만."
"저는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이 친구가 보는 눈이 있네."
"눈에 뵈는 게 없네."
'보다시피'처럼 한국인은 보아야 알 수 있다. 심지어 알거나 들은 다음에도 결국 '보다'를 말해야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보자 보자'하며 여러 번 보면서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하고, 의견을 내고 주장할 때도 '보다'로 마무리한다. '보는 눈'은 특정 분야를 오래도록 관찰하면서 키워온 안목이다. '뵈는 게(보이는 게)' 없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보다는 사리분별의 기본 행위인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
"그 사람을 볼 낯이 없다."
"남 보란 듯이 성공했다."
"비가 올까 봐 우산을 가져왔어."
"이제 공부할까 봐."
견물생심(見物生心), '본 놈이 도둑질한다'는 말이 있듯이 위의 문장들에서 보듯 '마음이 일어남'도 대부분 '보는 것'에서 시작되고 '보는 것'과 관련된다. '-(으)ㄹ까 + 보다'의 형태로 쓰인 아래 두 문장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보는 것'에서 추측에서 이어지는 걱정, 의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성이든 감성이든, 생각이든 마음이든 감각에 반응하는 인간의 두뇌, 신체, 정신 작용을 한국인은 '보다'로 표현한다. 사실 근본적으로도 마음과 생각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런 점이 한국어에서 '보다'를 사용하는 표현에 반영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첨언하면 한국인이 흔히 마음을 영어로 번역할 때 떠올리는 단어인 mind도 한국어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담고 있다.)
한국어에서 보다가 가장 많이 쓰이는 문법 표현은 '-아/어 보다'다. 어떤 것을 이루려고 계획하거나 행동하는 '시도(試圖)'를 뜻하는 이 어미(語尾)에 왜 '보다'가 쓰이는지 이미 동사를 마치고 나서 그 결과를 확인하고 알게 된다는 점을 살펴봤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냥 '먹어도' 될 텐데 한국인은 꼭 '먹어본다'고 한다. 시도한 뒤에 따르는 판단을 기대하는 표현인 것이다. 한 단어로 인정된 '알아보다, 찾아보다, 물어보다' 같은 단어들도 '알다, 찾다, 묻다'라는 행위 다음으로 이어지는 '보다'라는 앎, 깨달음, 확인의 과정이 요구된다. (시도의 의미인 '-아/어 보다'가 과거인 '-아/어 봤다'로 쓰이면 경험을 뜻하게 된다. 주의할 점은 눈으로 보는 행위가 "이 영화 봐 봐."처럼 시도는 가능하지만 "영화를 봐 봤다"처럼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언어적인 중복을 피하려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궁금한 부분이다.)
나는 '보다'의 가장 큰 특징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꼽는다. 이 행위에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다. 손으로 만지는 것과 달리 눈으로 보는 행위는 상대와 물리적으로 닿지 않는다. 한국어의 몇몇 표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보고 + 말하다, 생각하다, 웃다/울다, ...
* -에게 + 말하다, 전화하다, (편지, 돈을) 보내다, 주다, 건네다, 한 방 먹이다, ...
한국어에서 상대를 향하는 조사로 '-보고'와 '-에게'가 있다. 둘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고'는 주체가 상대를 눈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는 쌍방향 영상통화로 온라인에서도 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말, 생각, 표정 같은 것들만 오고 갈 수 있다. 반면 '-에게'는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 향하는 상대만 언급되면 되고, 물건을 전달하거나 물리적인 접촉도 가능하다. <삐에로는 우리를 보고 웃지>라는 노래 제목의 조사를 바꿀 수 없는 이유다.
한국어의 추측, 불확실한 것을 표현하는 어미 중에 하나인 '-(으)ㄴ가/나 보다'를 또 다른 표현인 '-(으)ㄴ 것 같다'와 비교해 보면 관찰자의 시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 -(으)ㄴ가/나 보다 - -(으)ㄴ 것 같다
- 나 바보인가 봐 - 나 바보인 것 같아 (나 바보 같아)
- 맛있나 봐 - 맛있는 것 같아, 맛있을 것 같아
'바보인가 봐'와 '바보인 것 같아(바보 같아)'는 다르다. "나 바보 같아."는 보통 자신의 실수, 실책, 무능력에 대한 자책, 후회가 느껴진다. 내 말, 행동, 모습을 '바보'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보인가 봐'는 말 그래도 내가 나를 바보로 보는 것이다. 이른 바 유체이탈(?)로 나에게서 빠져나온 내가 나를 보는 상황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아니면 마인크래프트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에서 가능한 시점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런 관찰자의 시점은 마치 클로즈업에서 화각(畫角)을 조정해 시야를 넓히는 줌(zoom) 렌즈처럼 대상만이 아닌 배경까지 정보의 종류와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판단은 주관이 아닌 어느 정도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직접이 아닌 간접 경험까지 확대된다. 식당에 손님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거나 별점, 리뷰가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맛있나 봐."라고 한다. '맛있는/맛있을 것 같아'는 음식을 직접 먹거나 보는 것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지만 "맛있나 봐"는 그럴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한국인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상황을 파악해서 유불리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결정하는 게 매우 빠르다. 흔히 '눈치를 잘 보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런 한국인의 특징을 나는 '보다'라는 단어를 통해 본다. 한국어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사용되는 '보다'에는 관찰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다'가 쓰인 표현 중에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것은 '봐주다'이다. 우리는 상대의 사정과 형편을 헤아릴 때 그 사람을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나보다 잘못이나 실수가 크더라도, 나를 화나게 하고 미운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잘 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