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시 십분의 비밀 (5)

한국인의 국어생활 49

by 집우주

보통 개수, 횟수를 셀 때는 고유어인 '하나, 둘, 셋'으로 읽고 차례, 번호나 길이, 무게 같은 단위를 나타날 때는 한자어인 '일, 이, 삼'이 사용되고, 숫자를 읽을 때 이 둘을 바꾸는 게 가능한 경우는 없다. 이렇게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 꼭 '되는 경우'가 튀어나온다. '삼겹살'은 1990년대 중반에서야 단어로 사전에 올랐고, 그전에는 '세겹살'이었다. 둘 다 표준어로 쓰이긴 하지만, 현재는 삼겹살로 대체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또 이들은 숫자를 세는 데서 출발하긴 했지만 단어로 굳어진 걸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 요즘 '하나도 없다'는 표현을 '일도 없다'나 '1도 없다'로 바꿔서 쓰기도 하는데 올바른 문법은 아니다. 이 또한 애초에 실제 숫자 표기나 읽기와는 크게 상관없는 표현이다.


어찌 됐든 딱 자를 수 없지만, 숫자를 읽을 때 고유어와 한자어를 잘못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100% 리얼 찐 한국인이라도 살면서 누구나 숫자를 읽을 때 '하나둘셋'과 '일이삼'을 바꿔 말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래, 숫자 읽기를 잘못한 경험담을 들어보자.


"충성! 일석점호 인원 보고. 총원 이십 명. 열외 무. 번호!"

"하나"

"둘"

"셋"

..., ..., ..., ..., ...,

..., ..., ..., ..., ...,

"마흔여덟"

"마흔아홉"

"오십! 번호 끝."


마지막 번호 "오십"에서 빵하고 웃음이 터진다. 점호 시간, 무거운 분위기의 생활관(내무반)에 긴장이 풀어진다. 당직사관은 유치원을 못 나왔어도 숫자는 셀 줄 알아야 한다며 한 마디를 던진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핑계를 대자면, 보통 한 분대 당 10여 명이어서 평소에는 '열' 조금 넘는 숫자에서 번호가 끝났는데 이 날은 행군 훈련으로 큰 막사에서 자게 되었고, 여러 분대가 함께 점호를 받았다. 몇 번일지 대략적으로 파악이 안 되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자기 차례에 당황한 나머지 '쉰'이 생각나지 않은 것이다. (아마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거나 현장에 있었을 이야기일 것이다.) 현대 표준어를 잘 배우고 사용하는 성인들도 가끔 이러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과 이제 말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잘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은 당황하고,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틀린 문법이 되거나 문장의 뜻이 달라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무리 갑작스러운 상황이더라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쉰'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개인적인 기억으로 '쉰'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실수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피한 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살면서 하나, 둘, 셋으로 시작해 쉰까지 세 본 것은 숫자를 공부하던 어린 시절과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50대 어른의 나이를 말하는 상황 정도를 빼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말하고 들은 바로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실제 숫자 읽기에서는 이보다 더 적은 숫자에서만 고유어 읽기가 사용된다.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아래 숫자를 읽어보자.


㉠ 50명, 50개, 50마리, 50살, 50번(횟수)

㉡ 1명, 1개, 1마리, 1살, 1번(횟수)


보통 숫자의 고유어 읽기는 개수나 횟수를 셀 때 사용된다. 하지만 ㉠에 써 있는 '50명, 50개, 50마리, 50번(횟수)'은 보통 '오십'으로 읽고, 듣기에도 편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심지어 앞서 언급했던 나이도 '쉰 살'로 읽는 게 맞지만 '오십 살'이라고 말하는 걸 꽤 많이 듣는다. ㉡의 1을 읽어보면 숫자 읽기가 이상하다는 게 명확해진다. 여기의 1은 무조건 고유어인 '한'으로 읽어야 한다. '일 명, 일 개, 일 마리, 일 살'은 틀린 문법이다. 심지어 '1번'의 경우에는 '일 번'으로 읽으면 '한 번'과는 완전히 뜻이 달라지게 되므로 문맥과 상황을 잘 따져야 한다. 1에서는 분명히 '하나둘셋'이라는 고유어 읽기만 가능했는데 50에서는 '일이삼'이라는 한자어도 가능해지고 오히려 고유어가 어색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 1, 2, 3, ... 10, ... 20, ... 30, ... , 40, ... 50, ... , 60, ... , 70, ... , 80, ... , 90, ... + 명


1부터 하나씩 숫자를 키워가며 단위명사 '명'을 붙여 사람을 세어봤다. '한 명, 두 명, 세 명, ... , 열 명, ... , 스무 명, ... , 서른 명, ... 마흔 명, ... , 쉰 명, ... , 예순 명, ...' 어느 숫자를 딱 자를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른 명'까지는 괜찮은데 '마흔, 쉰'부터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마흔 명, 쉰 명'보다는 왠지 '사십 명, 오십 명'이 말하기도 편하고 귀에도 더 익숙하게 들린다. 명 대신에 '개, 마리' 같은 다른 단위 명사로 바꿔봐도 마찬가지다.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과 잘 어울리는 건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 뿐이다. (실제 대화에서 어른들의 연세를 말할 때는 단위 명사를 생략하는 게 자연스럽다.) 나아가 한자어 숫자로 바꾸어도 말해 보면, 10 단위까지는 '열 명, 열다섯 개, 열아홉 마리'처럼 고유어인 '열'만 가능하지만, 20부터는 '스무 명'도 되고 한자어 숫자인 '이십 명'도 가능하다.


결국 한국인은 1부터 99까지를 고유어만으로 말할 수 있고, 이를 보통 개수나 횟수를 셀 때 사용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건 가능한 수의 1/3 수준이 '하나 ~ 서른 □□'까지의 수다. 나는 이것이 시간에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오래도록 인류가 살아온 전통적인 방식의 일상생활에서 숫자를 말할 때 십의 자리가 필요한 경우는 자신의 나이와 날수 정도였을 것이다. (달의 모양에 따라 하루를 세는 음력(陰曆)에도 30에 해당하는 '그믐'까지만 있고,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도록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세-40세였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 한국어를 사용했던 우리 조상들에게서 이런 상황이 훨씬 더 오래도록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중에서도 한자어 숫자 읽기를 허용하지 않고, 고유어만 자연스러운 수는 1~19까지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는 두 자리수 숫자의 1/5 밖에 되지 않는다. 딱 손가락과 발가락을 더한 수 정도다. 정말 그런 건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한 일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서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 전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한국어 고유어 숫자 읽기로 세상을 헤아려 보니 앞서 다룬 숫자 100은 굉장히 아득하게 느껴지는 큰 수인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나는 한국인의 이런 숫자 읽기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고 유효하다고 본다.


인과관계의 선후(先後)는 모르겠지만 손가락, 발가락으로 수를 셌던 고유어 숫자 읽기는 한국인의 시간 개념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간을 표기하는 10:10의 같은 숫자 10을 왜 '열'과 '십'으로 다르게 읽는지, 비밀이 거의 다 풀려간다.



** 참고 **

경향신문. <수 개념 익히기>

https://www.khan.co.kr/article/20081027143032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