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58
영화 속 장면에서 어른들이 데이빗이라는 아이를 다르게 부르는 것을 통해 한국인을 부르는 방법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영어는 '데이빗'처럼 그 사람의 이름만 있으면 되지만 한국어에서는 보통 '-아/야'를 붙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확실히 분위기가 덜 이상하다. 나는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데이빗아'라고 부르는 외할머니 목소리에서 한국어를 듣고, 한국을 보았다.
손자의 이름 뒤에 붙은 '-아/야'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야'는 자신보다 나이가 같거나 어리면서 아주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한국에서는 윗사람에게는 '님'을, 어리지만 공적 관계이거나 거리가 먼 경우에는 '씨'를 써야 한다. 완벽히 대응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어의 '님, 씨'에 해당하는 말은 다른 언어에도 많다. 외국어를 잘 몰라도 '미스터, 미쎄스(Mr., Mrs.)'나 '상(さん)', 또 '시아오(小), 라오(老)' 같은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친구나 어린 사람을 부르는 한국어의 '-아/야'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별명, 애칭, 이름을 반복하는 건 들어봤어도 한국어처럼 특정 글자를 더하는 방식은 생각나지 않는다. (일본어의 '쨩(ちゃん)'과 비슷하다는 설명도 있지만 '물건'이나 '아빠' 같은 단어에도 붙일 수 있으니 그 사용대상, 범위가 완전히 다르다. 포르투갈어에도 이름 뒤에 붙이는 -inho/inha가 있는데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나우지뉴(Ronaldinho)'의 원래 이름은 호나우두(Ronaldo)이고 작다는 뜻의 어미 -inho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한국어의 '-아/야'와 달리 이때 -inho는 이름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린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인의 이름은 '성+이름'으로 구성된다. (순서나 개수에 차이가 있을 뿐, 전세계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성'은 가족, 가문을 나타내므로 결국 '이름'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래와 같이 한국어에서 이름 뒤에 붙는 말을 통해 대상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 홍길동 님, 홍 님, 길동 님
* 홍길동 씨, 홍 씨, 길동 씨
* 홍길동아, 홍아, 길동아
님과 씨는 좀 어렵다. 님은 성에만 붙일 수가 없고, 많은 경우에 직업, 직함 뒤에 붙여 쓰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려면 굉장히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한다. (대리, 과장, 부장, 차장, 실장, 팀장, 사장, 회장 등등의 단어를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씨'는 조심해야 한다. 같은 '씨'가 붙었어도 '홍 씨'와 '길동 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호칭에 예민하다. 그러니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알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당연히 이런 호칭이 어려울 것이다.
오직 이름에만 가능한 것은 '-아/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이름은 친하고 편한 관계에서만 (또는 친해지고 싶은 경우) 부른다. (특히, 일본은 그 경계가 명확하다.) 당연히 먼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과 친하고, 윗사람보다는 아랫사람이 편하다. 품사를 따지면 '-아/야'는 조사, '님'과 '씨'는 명사다. 때문에 띄어쓰기가 다르다. 문법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 띄어쓰기의 공간을 친소(親疏)의 거리로 본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줘서 올바로 띄어쓸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각은 법보다 우선하지 않는가?) 또한 '님, 씨'에 비해 '-아/야'는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친구나 동생의 이름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지면 되기 때문이다. (받침 여부에 따라 '-아/야' 중에 하나로 결정되는 건 한국어 교육 과정의 초급에서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럼 왜 한국인은 이름 뒤에 '-아/야'를 붙여서 부르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그 이유가 나는 한글의 특징인 받침과 이름의 음절 수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과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과 마음이 부족해서 매번 얄팍한 상상으로 때우게 된다.) 물론 이 건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이 이미 국립국어원에 물어보았다. 거기에는 '문의하신 내용은 언어에 따른 특성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러한 특성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고 친절한 답변이 달려 있었다.
우선 받침에 대해서 말해보면, 단어의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다는 것은 끝소리가 자음(子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음은 부드럽게 열린 모음(母音)에 비해 딱딱하고 닫힌 소리로 끝난다. (거의 모든 글자와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는 일본어를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나와 가깝고 친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데 있어 별로 좋은 어감으로 들리지 않는다. 내 이름을 예로 들어 말하면, 그 옛날에도 누가 '길동'으로 나를 부르면 뭔가 딱딱하고 고압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아주 오랫동안 씨족, 가족 안에서 생활해 왔고 여전히 핏줄과 혈연, 학연, 지연 등 관계에 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인에게 '친한 친구, 편한 동생'의 이름을 부드럽게 만드는 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야' 중에서도 받침이 있는 글자로 끝나는 '-아'로 부르는 것이 먼저 시작됐을 것이고, 받침이 없는 경우에 '-아'를 붙이면 오히려 발음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생기는 더 열리는 '-야'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이름만 부르게 될 경우 줄게 되는 음절 수도 '-아/야'를 붙이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한국인은 보통 성 한 글자, 이름 두 글자의 구성으로 3음절의 이름을 갖는다. 사실 이름의 역사에서는 이름보다도 가족, 가문을 알 수 있는 성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 또 호형호제하며 편해진 사이에서는 성이 필요없어진다. 그렇게 이름만 부르게 되면 글자와 소리가 2음절이 되는데 한국어에서 이는 이름으로서 너무 짧은 느낌이 있다. (만약 이름이 외자라면 부르는 말이 한 글자가 된다.) 과학적으로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연구하면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어는 이름을 3음절로 부를 때 안정적으로 들리고, 다른 한국인들도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아래 이름을 보자.
* 손흥민, 손흥민 선수, 손 선수, 흥민 선수, 흥민,
국가 대표팀이든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경기든 한국어 중계 방송에서 손흥민 선수를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만 존재하는데 어쨌든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모두 말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영어와 달리 성과 이름을 모두 불러야 하는 것이 성이나 이름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관점이 아니라 발음할 때의 음절 수와 소리의 길이 때문이라고 본다. 외국인의 이름을 한글로 바꾸어 말해보자.
㉠ 휴고 요리스, 데이비드 산체스, 에릭 다이어, 로드리고 베탕쿠르, 피에르 에밀 호이비에르,
라이언 세세뇽, 데얀 쿨루세브스키, 루카스 모우라, 해리 케인
㉡ 에메르송 로얄,
㉢ 벤 데이비스
위는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의 이름이다. 한국어와는 다르게 앞이 이름이고, 뒤가 성이다. 중계에서 캐스터가 이들을 부르는 걸 들어보자. 대부분 ㉠처럼 밑줄을 친 성으로만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건 한글로 표기했을 때 풀네임의 경우 이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생기고, 성만으로 최소 3글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글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2음절인 '케인'의 경우는 유독 '해리 케인'이라는 풀네임도 많이 들린다. ㉡은 '에메르송 로얄'까지 성인데, '에메르송'으로 부른다. (사실 로얄은 자신이 붙인 별명이고, 본명은 Emerson Aparecido Leite de Souza Junior란다.) 이름이 너무 길어져서 굳이 필요없는 별명은 빼는 것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의 '벤 데이비스'다. 벤 데이비스는 '손흥민'의 경우처럼 항상 '이름+성'의 풀네임으로 불린다. '데이비스'라는 이름이 흔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발음상 '벤 데이비스'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4음절인데도 풀네임이 불리는, 음절 수와는 상관없는 예외적인 경우로 보인다. (참고로 영어 중계에서는 손흥민을 성인 '손'을 영문으로 쓴 'Son'으로 부르고, 별명인 Sonny도 가끔 쓴다.)
이름에 쓰인 글자가 적으면 이름이 같아질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 감각적으로 부르는 맛이 떨어진다. 왠지도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괜히 어색한 것이다. (이는 언어의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중국에서는 한 글자 이름을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거나 짓는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인도 부르는 이름의 글자, 소리가 짧아지는 것에 있어서 분명히 허전함을 느낀다고 본다. (성이 두 글자여서 4자인 경우도 있기에 한두 글자가 늘어나는 것은 괜찮겠지만 짧아지는 것은 허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은 세 글자 이름에 익숙한 사람들이니 최소한 3음절로 부르는 게 가장 편하다. 그러니 성을 부르지 않을 때에도 3음절을 맞추기 위해 별 의미없고 가장 기본적인 모음인 '-아/야'를 붙인 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가 손자를 부르는 대사인 '데이빗아'에서 한국어를 듣고 내가 한국인임을 느끼지만, [데이비사]라는 이름이 영 편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의 이름에 ㅅ(시옷) 받침이 쓰여서 [사]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윗' 정도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같은 David다.) 귓가를 맴도는 그 걸림은 미국 땅에서 좀처럼 열매를 맺지 못했던 한국 채소, 또 낯선 나라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한국인 가족과 닮아 있다. 한국어에는 한국인만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있다. 당신이 아무리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져도 그들 이름 뒤에 '-아/야'를 붙여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