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부르는 말들 (1)

한국인의 국어생활 57

by 집우주

유튜브에서 우연히 몇 년 전 방송된 TV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2020년 초에 방영되었던 <케이팝 어학당 노랫말싸미>였는데 '외국인 최대 궁금증! 왜 식당에는 이모만 있고 고모는 없을까?'라는 제목의 클립이었다.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는데 한국인 진행자들과 제작진은 '풀리지 않는 숙제', '한국의 미스테리 X-파일'이라는 자막으로 이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제보해 달라는 농담으로 넘기고 만다.


한국인이 고모보다 이모를 더 좋아해서일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많은 식당에 고모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좀 그렇다. 나도 슬쩍 궁금해져서 기사를 찾아보니,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대부분 친밀감에서 찾는다. 자매(어머니와 이모) 사이가 남매(아버지와 고모)보다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모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이모는 품속 아주머니'라는 속담이 있다고 덧붙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모가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왜 식당에 이모만 있게 됐는지는 정말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은 식당에 이모만 있고 고모가 없는 이유도 모르지만, 더 나아가서 왜 식당에서 일하는 '중장년의 여자 종업원'을 '이모'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모는 분명히 가족 내 관계 안에서 쓰이는 호칭인데 왜 핏줄이 섞이지 않은 남을 가족처럼 부르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모는 식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기를 돌봐주는 육아도우미(베이비시터)나 결혼식날 신부 곁에서 치장을 도와주는 웨딩 헬퍼도 한국에서는 이모로 불린다. 또 어린 아이들에게 언니/누나로 부르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은 여자는 모두 이모가 된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고모는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서 성별만 바꾸면 '삼촌'이다. 아버지의 친형제도 삼촌이고, 태권도 도장의 남자 사범도 삼촌이고, 군인들도 다 삼촌이다. (예전에는 '군인 아저씨'였는데 아저씨보다는 삼촌이 젊은 느낌이 든다.)


형, 누나, 오빠, 언니는 일일이 예시를 들 것도 없다. 앞서 말한 동영상에서, 외국인 패널 조나단은 TV에서 연예인 김종민을 볼 때는 "김종민"이라고 하다가 실제로 만나니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김종민'이라는 이름만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국인 진행자들은 '그럴 때는 "형"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말한다. ('형'은 영어로도 쓰이는데 친한 사이를 강조하고자 '브라더, 브로'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어는 학교나 회사의 선후배, 각종 동아리, 동호외, 모임에서 만난 또래 사람들을 모두 형제자매로 만든다. 가수 검정치마가 자신의 노래 <외아들>에서 괜히 '언제부터 내 주위엔 형님이 많네~ 우리 집엔 아들이 나 하나뿐인데~'라고 한 건 아닐 거다. 예전에는 머리가 하야면 다 '할아버지, 할머니'였는데 요즘은 조심해야 한다. '아주머니', '아저씨'도 옛날에는 먼 친척을 부르는 말이었다고 하니, 결국 거의 모든 한국인이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멋있는 아저씨 원빈이 우리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국인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에게도 웬만하면 가족 호칭을 사용한다. 왜 그런지는 역시나 모르고, 친밀감이든 한핏줄이든 그럴 듯한 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나는 여기에 큰 관심은 없다. 내가 이번 주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다 보니 정작 한국인의 이름을 말하고 듣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숫자와 통계를 보여 드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생각해도 사람을 부를 때 그 이름을 말하지 않고 가족 호칭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이름이 불리는 횟수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선 '김종민'의 예처럼 애초에 어른에게는 이름만 부르지 않으니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많은 경우에 가족 호칭이 사용되니 사실상 사람의 이름이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친척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과연 이모, 삼촌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큰아빠, 작은엄마, 둘째외삼촌, 막내고모같은 가족내 관계가 먼저인 한국에서 '언클 쌤(Uncle Sam)' 같은 표현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인이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고, 심지어 작명소나 철학원(사주를 보는 곳이다.)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애써서 고민하고 고생해 가며 지은 이름을 덜 부르는 문화를 갖게 된 건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앞서 식당에 이모만 있고 고모는 없는 이유와 똑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은 여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겠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분명히 이해하는 데 노력해야 하고 적응해야 할 문화 차이, 문턱이다. 이에 대한 생각에 긍정도 부정도 있다. 패널로 나온 외국인 플로리안은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은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들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지 그냥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주면 좋겠다고 한다.


이렇게 호칭과 이름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한국인을 부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찾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살면서 지금까지 내 이름'만' 들은 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어 이름이 있다. 여기에서 내 실명을 밝힐 수는 없으니 편의상 '홍길동'으로 하겠다. (주민센터 같은 관공서나 은행 등의 서류 견본란에 예시로 쓰이는 대표 이름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까지 홍길동인가, 아무리 못해도 고길동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찾아봤더니 언젠가부터 '박보검'이 쓰인다는 뉴스가 있었다. 차마 박보검을 쓰지는 못하겠고 그냥 홍길동으로 하겠다.) 내 성은 '홍'이고, 이름은 '길동'이다.


부모님 같은 어른들이나 친구가 나를 부를 때, 보통 '홍길동'이라고 성과 이름을 같이 말하거나 '길동아'로 부른다. 누가 나를 "길동"이라는 이름만으로 부른 적이 있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굳이 어떤 특수한 상황을 떠올리거나 억지로 만들어 보면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분명히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이름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아', 없으면 '-야'다. 한국인 중에서도 이 규칙을 모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오히려 모국어이기에 그럴 수 있다.) 물론 '-아/-야' 없이도 이름을 부르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을 떠올려 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영어와 비교해 보면, 한국어만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 데이빗

㉡ 데이빗아


위는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대사로, 각각 다른 사람이 데이빗(앨런 킴 분)을 부르는 말이다. ㉠은 데이빗의 아버지인 제이콥(스티븐 연 분)이, ㉡은 데이빗의 외할머니인 순자(윤여정 분)가 말한다. 제이콥-모니카 부부는 젊은 나이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첫째 딸은 '지영'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지만, 둘째인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영어 이름인 '데이빗'으로만 불린다.


제이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아들을 '데이빗'으로 부른다. (가끔 '아들'로 부를 때도 있다.) 영어에서는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이름'만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그렇지 않다. ㉡에서 보듯이 이름 뒤에 '아'가 붙어야 한다. 순자는 손자를 '데이빗아'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가 외할머니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데이빗이라는 이름 뒤에서 들리는 '-아'에서 나는 분명한 한국어를 듣고 한국을 느낀다. 그 한 글자에서 나는, 밤을 먼저 한입 깨물어 손자에게 건네는 한국 할머니에게서 나는, 순간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 특유의 한국 냄새를 맡는다.


그래서 '데이빗'과 '데이빗아'는 다르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 영어 자막으로 이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 보자. 이름을 글자로 쓴 David에서는 물 건너 온 고추가루와 화투에 담겨 있는 한국 할머니의 마음, 한국의 정서를 절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