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59
이름을 부를 때 붙이는 '-아/야'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이'가 있다. 주의할 점은 '-이'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에 받침이 있는 경우에만 쓴다는 것이다. 사전에서 찾으면 '자음으로 끝나는 사람 이름 뒤에 붙어, 그 사람을 자신과 동년배나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뜻을 더하는 말. 흔히 친근한 사이에 쓴다.'는 뜻으로 나오는 접미사다. 이런 설명은 오히려 머리만 아프니 예시를 보자.
* '전경'을 부르는 사람들
㉠ 고복수 : 경이 씨
㉡ 전낙관, 강인옥 : 경아
'전경, 고복수'라는 이름에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물론 당시 2002 월드컵으로 처참한 시청률을 기록했기에 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드라마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 전경(이나영 분)은 드라마의 여주인공, 고복수(양동근 분)는 남주인공, 전낙관(조경환 분)과 강인옥(이혜숙 분)은 전경의 부모님이다.
전경은 이름이 외자인 데다가 받침까지 있어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아주 좋은 사례다. 복수는 자신의 애인을 ㉠에서 보듯 '경이 씨'라고 부른다. '씨'는 이름 뒤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문법대로 하면 '경 씨'라고 불러야 맞다. 하지만 한국인의 귀에는 분명 이상하게 들린다. (글자만 본다면 성이 '경'인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글자가 앞서 언급한 '-이'다. 전경이라는 이름을 조금만 바꿔보면 이 접미사의 기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전경에게 스케이트를 신겨서 '전이경'으로 변신을 시켜보자. 같은 '경'으로 끝나지만 전이경을 부를 때는 '이경 씨'라고 부르지, '이경이 씨'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렇다면 복수가 '경이 씨'라고 부르는 건 '전경'이라는 이름이 외자이기 때문에 음절 수를 늘려서 안정감을 얻는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을 보면,전경의 부모님은 '경아'라고 부른다. 그런데 만약 부모님 두 분이 상냥한 사람이었다면 '경이야'라고 불렀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이름에 붙이는 접미사 '-이'는 앞선 글에서 살펴본 '-아/야'와 같이 이름을 부르는 마지막 글자를 모음으로 만들어서 소리와 느낌을 부드럽고 편하게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니, 영어에서도 Tom[톰]을 Tommy[토미]로 부른다거나 Joe[조], Joey[조이], Joely[조엘리]에서 들리듯 한국어의 [이]와 비슷한 소리를 활용해서 애칭,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가 쓰이는 다른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 둘리가 밥을 먹는다. / 둘리는 밥을 먹는다.
* 마이콜이 밥을 먹는다. / 마이콜은 밥을 먹는다.
* 길동이가 밥을 먹는다. / 길동이는 밥을 먹는다.
둘리, 마이콜, 길동 셋이 밥을 먹는다. (예시를 위해 이쯤에서 내 이름을 홍길동에서 고길동으로 바꾸겠다.) 한국어의 주격 조사는 '-이/가'인데 조사의 바로 앞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이', 없으면 '-가'다. 둘'리'에는 받침이 없으니 '둘리가'로, 마이'콜'은 자음으로 끝나니 '마이콜이'로 쓴다. 그런데 내 이름인 길동은 뭔가 특이하다. '동'에 받침이 있으니 '길동이 밥을 먹는다'고 하는 게 맞을 텐데 윗 문장처럼 어절을 '길동이가'라고 해야 훨씬 자연스럽다. (주격 조사로 쓰임이 가능한 '-은/는'을 붙여도 '-이'가 있어야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눈에는 마치 두 개의 주격 조사 '-이/가'가 모두 쓰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쓰인 '-이'는 주격 조사가 아닌 앞서 언급한 '자음으로 끝나는 사람 이름 뒤에 붙는 접미사'다. '길동이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눈과 귀에서 분명히 어색하다. 한국인들은 앞선 예시처럼 '경이'를 원래 이름처럼 듣는 것 같다. 이처럼 부르는 이름은 부드러워야 하니 '길동'보다는 역시 '길동이'가 좋다. 이렇게 불러서 주어에 가져다 놓으니 마치 '길동이'가 이름 같고, 그러니 주격 조사가 없는 것처럼 보여서 '-가'를 붙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 게 아닐까? 이것을 반증하는 예가 어절 '마이콜이'다. '마이콜'은 영어 이름 Michael을 들리는 대로 적고 촌스럽게 바꾼 이름일 텐데, 받침이 있는데도 '마이콜이가'라고 쓰지 않는다. 나는 앞선 글에서 외할머니가 손자를 부르는 '데이빗아[데이비사]'가 어색하게 들린다고 했다. 외국인 이름 뒤에서 '-아/야'가 어울리지 않듯이, 접미사 '-이' 역시 한국인을 부를 때만 쓸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문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격 조사를 붙일 때 오히려 외국어 이름이 한국어 문법을 예외없이 지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존칭인 '님'에 대해 살펴보자. 사람의 이름과 쓰일 때, 님은 '성+이름+님'이나 '이름+님'의 구조에서만 쓸 수 있다. '길동 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님'은 존중의 높이가 있는 만큼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 거리를 조금 멀게 하는 느낌도 있다. 님은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다양한 단어의 뒤를 따른다.
* 그 님, 내 님, 아버님, 어머님, 부모님, 형님, 누님, 아드님, 따님, 아우님, 벗님, 해님, 달님, 별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맹자님, 손님, 장님, 스님, 선생님, 작가님, 기사님, 변호사님, 검사님, 판사님,
쉐프님, 주인님, 원님, 회장님, 사장님, 부장님, 팀장님, 사모님, 여사님, 님, ...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님이 정말 많다. 님은 보통 윗사람에게 사용하지만 아랫사람에게도 쓸 수 있고, 사람뿐 아니라 자연까지 그 범위가 넓다. 내가 볼 때, 한국인은 '님'을 좋아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다 님이 될 수 있다. 아버지를 아버님, 어머니를 어머님으로 높여 부르고, 둘을 합친 한자어인 부모에도 님을 붙인다. 종교인이라면, '예수'와 '부처' 뒤에 있는 '님'을 빼고 말하기가 영 찝찝할 것이다. 온라인 게시판, 게임에서는 유저를 '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한국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차별의 역사와 다르게,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장님'이라는 존칭을 썼다. (그런데 사전에는 '장님'이 '시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님'이 쓰였는데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 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지,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중에서 가장 특이한 단어는 '선생님'이다. '선생'은 한자로 쓰면 先生으로, 굳이 직역을 하자면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한 평생을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죽었던 과거를 상상해 보자. 그 시대에서는 보통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지식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밥 한 그릇 더 먹은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인 '선생'에게 삶의 기술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점점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체계화되면서 선생은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게 됐을 것이다. 같은 한자를 쓰는 중국어나 일본어의 先生에서 알 수 있듯이 선생은 그 자체로 존경이 담긴 단어다. (물론 그 뜻과 쓰임이 한국어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런데 [xiānsheng 시엔셩]이나 [せんせい 센세] 뒤에 아무 것도 붙이지 않는 그들과는 달리, 한국인은 '선생'에 반드시 '님'을 더해 부른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사장'처럼 '이름+직함'으로 부르거나 '□□さん[상]'처럼 '이름+님'의 형태로 부르지, 한국어처럼 직함 뒤에 '님'에 해당하는 さん[상]까지 붙여 부르지 않는다.) 중국인, 일본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은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언어로 드러나는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에는 언제나 '님'이 따라붙는데 '님'이 단독으로 쓰일 때와 '선생님'으로 불릴 때에는 차이가 있다. 아래에서 이름만 부를 때 '님'은 가능하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고길동 님, 고 님, 길동 님
* 고길동 선생님, 고 선생님, 길동 선생님
* 고길동 쌤, 고 쌤, 길동 쌤
한국어를 가르칠 때, 나는 외국인 학생들의 이름을 전부 외워야 했지만 그들은 나를 '선생님'으로 불렀기에 내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처음 소개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 이름을 말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 중에서 나를 특정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에 그럴 때는 '고길동 선생님'이나 '고 선생님'으로 말하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길동 선생님'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존경해야 하는 선생님을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이 한국에서는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선생님을 부르는 준말인 '쌤'이 생겼다. (공식 표기는 '샘'이지만 영 맛이 살지 않아서 된소리로 쓴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겨났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쌤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교실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의 입에서 쌤의 이름이 불렸다. '길동 선생님'은 불편했지만 '길동 쌤'은 괜찮았다. 스승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며 걱정과 우려가 쏟아졌던 '쌤'은 교육청에서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는 차원에서 적극 사용을 권장했고, 이제 한국어의 단어로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님'이라는 글자에 갇혀서 차마 불리지 못했던 수많은 선생들의 이름이 '쌤'을 만나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