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60
마지막으로 '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극존칭의 느낌이 강한 '님'과는 다르게 씨는 일반적으로 사용범위와 대상이 넓다. 그래서인지 씨가 쓰인 단어가 쉽게 떠오른다. 아래는 바로 떠오르거나 약간의 검색으로 찾은 단어와 책,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제목이다. (좋은 예시를 위해 적은 것들로 나는 제작사, 출판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 제목
<친절한 금자씨>, <막돼먹은 영애씨>, <김씨표류기>, <혜경궁 홍씨>, <구보씨의 하루>,
<숫자 울렁증 32세 이승환 씨는 어떻게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가 됐을까>,
<갈매기 씨의 달리기>, <소나무 씨 뭐 하세요?>,
<좀머씨 이야기>, <파퍼씨네 펭귄들>, <꾸뻬씨의 행복여행>,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 단어
화씨, 섭씨, 열씨, 석씨, 불씨, 모씨, 도씨
앞서 이미 살펴봤듯이 씨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의 모든 조합에 쓸 수 있다. 위의 제목들에서 한국인의 '성+이름', '성', '이름' 뒤에 붙은 씨를 볼 수 있다. 씨는 이름뿐만 아니라 필명(筆名)에도 쓰이고, 사람뿐 아니라 의인화된 동식물을 부를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보다시피 씨는 외국인의 이름과도 아주 잘 어울리는데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들리는 대로 바로 한글로 받아적은 이름뿐 아니라 중국 음역어도 괜찮다. ('화씨, 섭씨, 열씨'는 각각 '화륜해(華倫海), 섭이사(攝爾思), 열오류이(列奧謬爾)'라는 사람 이름을 부르는 단어다. '석씨, 불씨'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불교의 개조(開祖)를 가리킨다.) 한국인은 이름을 모르거나 감추거나 생략해도 될 때는 아무개에 해당하는 한자 '모(某)'에 씨를 붙이고, 심지어 이름을 알 수 없는 도둑도 '도씨'로 부른다.
이처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씨를 한국인의 이름 뒤에 붙일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고길동 씨', '고 씨', '길동 씨'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씨를 붙일 경우, 상대와의 관계, 상황, 의도를 고려해서 셋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사람은 그것에 따라 다른 자신이 된다. 어떤 조합의 이름이냐에 따라서 높임의 정도와 거리가 다르고, 무엇보다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할 부분이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사전에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글자 그대로 옮겨놓는다.
* 씨 :
이 말은 ‘박 씨’, ‘이 씨’처럼 성(姓) 뒤에 붙어 쓰이면 다소 낮춤의 경향이 있으며,
‘영숙 씨’, ‘준태 씨’처럼 이름 뒤에 붙어 쓰이면, 친분은 있으나 아주 가깝지는 않은 느낌이 있다.
이 경우,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지는 않는다. 한편 ‘홍길동 씨’, ‘이영만 씨’ 등처럼 성명 뒤에
붙어 쓰이면 공손의 뜻이 있어 어른에게도 쓸 수는 있으나 이는 병원이나 관공서 등 사무적이거나
공식적인 곳에서 손님이나 방문객을 부를 때 종종 쓰인다.
사전의 뜻처럼 존중의 글자인 '씨'가 쓰였음에도 '성+씨'는 듣는 사람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 소리로 옮겨보면 더 확실해진다. 공사현장에서는 짧은 기간 직함 없이 일하는 일용직을 '김 씨', '이 씨'로 부른다. 이름을 알 필요도, 친분을 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성을 이름으로 바꿔보면 확 달라지는 느낌을 확실히 알게 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구 씨'(손석구 분)를 '자경 씨'로 불렀다면 이 드라마의 정서와 서사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연인인 미정(김지원 분)은 그의 이름을 알게 됐을 때도 '자경 씨'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이라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름을 몰랐기에 '구 씨'라고 불렀던 것이었지만 '성+씨'에서 오는 '다소 낮춤의 경향'이 미정이 추앙을 요구하는 장면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자경 씨'에게 '추앙'을 말하는 장면은 아무리 해도 그려지지 않는다.)
나아가 씨는 기분을 상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특정 직업이나 직함을 쓰지 않을 경우 보통 '성+이름+씨'으로 쓰고, 이름을 모르거나 감추거나 한 번 언급이 되어 생략해도 될 때 '성+씨'의 구조로도 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우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이렇게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연세가 아흔이 넘었던 국민 MC와 대한민국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대통령의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고 영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부를 때의 의도가 중요해진다.) 한국인이 처음 보는 중장년의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가능하면 직업이나 직함에 '님'을 붙여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말에 기인하는 한국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마주보고 부를 때는 웬만하면 '씨' 대신 '님'을 사용하는 추세다. 관공서에서는 민원인의 이름을 '○○○ 씨'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 님'이라고 부른다. (언어로서 존중의 의미를 담는 의도도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봤을 때 공직자와 민원인의 지위가 역전된 느낌도 부정할 수 없다.) 행사나 모임, 워크숍이나 온라인 미팅에서도 처음 본 사람들의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괜히 '씨'를 붙여 부르는 것보다는 안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씨'와 '님'을 비교해 보면 그 느낌의 차이를 확실한 알 수 있다. 둘은 이름이 아닌 가족 호칭에도 붙여 사용할 수 있는데 내가 볼 때, 이 차이에 가장 민감하게 구는 건 한국 남자들이다. 남자인 나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남자를 형(兄)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형'은 한자어로 오늘날 이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을 모르고 쓰지 않는다.) 이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존칭을 붙인 '형님'과 '형씨'는 완전히 다르다. 형님은 형을 높여 부르는 것이지만, 형씨는 주먹을 부른다. (여자인 경우, '누님'은 있지만 '누씨(?)'는 없다. '언니'에도 님이나 씨를 붙이지는 않는다. 한자를 보면 손위 여자를 부르는 '자씨(姊氏), 매씨(妹氏)'는 있지만 '자님, 매님'은 없다.) 초면에 나이를 물어서 서열부터 정리하는 한국 남자들은 술 몇 잔 돌려 마시면 위아래로 몇 살 차이나는 형동생끼리 친구를 먹기도 한다. 그런데 평소에는 누가 생일이 빠른지 잘 따지지도 않던 동갑내기 친구들끼리도 결혼을 하고 나면 달라진다. 나의 아내는 '형수님'이고, 친구의 아내는 '제수씨'가 되기 때문이다. '형수씨'도 사전에 있는 단어로 가능은 하지만 요즘 한국인 중에 형수를 씨로 높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 자기가 생일이 가장 늦는데도 친구 아내들을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수컷들의 쓰잘 데 없는 자존심이 걸린 이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책은 '와이프'다.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외부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나는 '씨'가 분명히 존칭인데도 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거리낌없이 쓸 수는 없는지 궁금했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혹시 그 이유가 소리에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봤다. [씨]라는 소리가 한국인의 입에 가장 쉽고 흔하게 오르는 욕과 닮았기 때문이다. 각각 명사와 감탄사인 '씨'는 우연히 글자와 소리가 같은 것이고, 둘 사이에 어원적인 연관성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하지만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이 우연 때문에 나이가 많고 높은 지위의 사람의 이름에 [씨]를 더한 소리가 기분이 나쁘고 싸가지 없게 들리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언어생활과 교양의 영역에서, 된소리는 천박하고 쌍스럽다는 문화와 관습이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억지를 부리며 이번 주제를 끝내려 한다.
이름은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만든다. 이름은 똑같은 것들을 다른 것으로 구분하게 한다. 전 세계 79억 명의 사람들은 이름이 있기에 저마다 단독의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름은 특별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이름을 알고 싶어한다. 이름은 사람을 알아가는 처음이다. 양희은의 "너 이름이 뭐니?"라는 말이나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관등성명을 요구하는 것이 무섭게 들릴 수 있어도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겠다는 뜻이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보통명사가 된다. 이름도 성도 필요없고 전화번호만 원하는 건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지 않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TV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오디션의 최종무대에 오르거나 서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한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은 번호나 가명, 그도 아니면 '저기요'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이처럼 이름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국어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이름을 부르는 방법이고 이름 뒤에 붙는 말이다. 그동안 김춘수 시인이 부른 그가 누구였을까 궁금했는데, 이번 글을 쓰고 나니 시인이 그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는지가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