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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07. 2020

개들을 위한 도시는 없다

개를 다루는 완벽한 방법 1 <플란다스의 개>

*** [봉준호의 동물들]의 연재 글로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의 중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



봉준호의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동물은 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개를 키웠고 현재도 개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 개를 다룬 내용이라는 것만으로도 그가 개와 가까이 지냈고 개에 대해서 잘 알 거라고 생각된다. 아마 20세기 사람들은 대부분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을 듣고 루벤스 그림을 보면서 행복하게 세상을 떠난 소년과 개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던 어린 날을 떠올리거나 ‘라랄라~ 라랄라~ 라라라 랄라 라랄라라’로 익숙한 어느 가요의 후렴구를 흥얼거릴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직접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다.)


제목이 주는 느낌 때문에 봉준호의 영화 <플란다스의 > 가볍고 잔잔한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포스터의  주인공이 잃어버린 개를 찾아 나서고, 길고 힘든 여정 끝에 개를 찾지만 그들 곁의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되는... 아련하고도 슬픈,  그런 영화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아파트 옥상에서 개를 집어던지려 하고 지하 보일러실에서 개목을 졸라 죽이려고 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제목을 배신하며 관객들의 추억과 기대를 산산이 부숴 버린다. 2000년에 개봉한  영화는  이상 20세기 만화와 노래의 ‘플란다스의  없다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인간과 개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며 21세기의 ‘플란다스의  새롭게 정의한다.


오프닝 시퀀스의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중반까지 죽은 개로 보신탕을 끓여 먹는 장면과 개를 집어던져 죽이는 장면이 이어진다. 처음부터 눈살을 반쯤 찌푸렸던 관객이라면 아마 이 장면에서 반이나마 뜨고 있던 두 눈을 완전히 감아버리게 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공포, 개들이 느꼈을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와중에 한편으로 질문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절대 그럴 리 없었겠지만, 정말로 개를 죽인 건 아니겠지?


너무나 일상적인 도시의 아파트,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서 살생이 벌어진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연히’ 개를 죽일 수 없기에 옥상에서 개를 던지는 장면은 크로마키-흔히들 블루스크린으로 알고 있는-로 배경을 합성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러 번 던져졌기에 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라며 미안해했다. 또한 보신탕의 재료로 나오는 죽은 개는 마취를 시켜서 촬영했다고 한다. 마취시간이 30분을 넘으면 위험해서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벌써 20년 전 일이긴 하지만 영화 현장의 노동 환경과 동물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기에 촬영할 당시 개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믿는다. 안심이 되었으니, 이제 영화 속 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대학원생 윤주(이성재 분)는 교수 임용건으로 예민한 상태에서 통화를 하던 중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짜증을 낸다. 우연히 아파트 복도에 나와있던 삔돌이(견종:시츄)를 납치한 윤주는 삔돌이를 죽이려고 옥상으로 올라가고,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가 보지만 실패하자 삔돌이를 보일러실에 숨겨 둔다. 그러나 삔돌이는 변경비(변희봉 분)에게 발견되어 보신탕으로 잡아먹힌다. 스트레스의 원인인 개 짖는 소리가 아가(견종:미니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주는 할머니(김진구 분)를 유인해 아가를 납치해서 옥상에서 집어던져 죽여 버린다. 친구인 장미(고수희 분)와 함께 맞은편 아파트 옥상에서 우연히 이 모습을 보게 된 현남(배두나 분)은 윤주의 뒤를 쫓지만 잡지 못한다. 어느 날, 윤주는 아내 은실(김호정 분)이 키우려고 사 온 순자(견종:푸들)를 보고 깜짝 놀란다. 윤주는 아파트의 규칙상 개를 못 키운다고 말하지만 은실은 괜찮다며 오히려 윤주에게 순자와 산책을 하고 오라고 시킨다. 마지못해 순자를 데리고 나와 공원을 터덜터덜 걷던 윤주는 순자를 잃어버린다. 윤주는 순자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게 되고, 이 소식을 알게 된 현남이 그를 돕는다. 현남은 부랑자 최 씨(김뢰하 분)에게 잡아먹힐 뻔한 순자를 구해 내고, 순자는 은실의 품으로 돌아간다.


영화에는 이렇게 운명이 갈린 삔돌이, 아가, 순자가 나온다. 세 마리 개의 견생(?)은 다 다르지만 개들은 윤주를 움직이고 이동하게 하는 장치로 활용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주의 집에서 출발한 영화는 개를 납치하고, 죽이고, 산책시키고, 찾아다니는 윤주의 동선을 따라서 아파트 옥상과 지하로, 단지의 길과 공원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렇게 감독은 영화의 공간을 위아래로, 또 옆으로 늘리며 복도식 아파트의 수직과 수평 이미지를 마음껏 활용한다. 그리고 윤주가 지나다니는 공간으로 할머니, 변경비, 부랑자 최 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윤주와 같은 아파트에 있지만 지나쳐 버리거나 마주칠 기회도 없었을,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이다.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을 한 화면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는 봉준호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장치로 개를 활용한다. 마치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 분)의 ‘과외’가 절대 만날 수 없는 기택(송강호 분)네와 박사장(이선균 분)네를 만나게 하는 시작점으로서 기능하듯이 말이다.


윤주는 은실에게 아파트의 규칙을 말하며 개를 못 키운다고 하지만 윤주 또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 방법으로 교수 자리를 얻는다.


윤주는 개를 못 키우게 돼 있는 아파트에서 규칙을 어겨 가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선배로부터 교수 자리를 얻으려면 뇌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와서 원칙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한국 사회를 탓한다. 동시에 많은 돈을 들여 ‘비싼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며 뇌물로 찔러 줄 1500만 원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박탈감도 느낀다. 은실이 순자를 데리고 왔을 때, 윤주는 깜짝 놀라며 아파트에서는 개를 못 키운다며 화를 낸다. 아내가 개를 키우면 아파트의 규칙대로 아가를 죽인 윤주의 명분은 사라지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자존심도 지킬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 아내가 돈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돕기는커녕 엉뚱한 데에 돈을 쓰는 것에도 짜증이 난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그깟 개만 챙기는 아내를 향한 윤주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간다. 아내가 퇴직했고, 그 퇴직금으로 돈을 마련해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개를 키우는 사람, 개를 먹는 사람, 개를 죽이는 사람, 개를 구하는 사람, 개한테 전혀 관심 없는 사람 등으로 나뉜다. 감독은 이 분류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윤주가 개를 대하는 태도로 그의 예민한 성격이 구축되고 잠재된 폭력성이 드러난다. 윤주는 개를 죽이려고 하고, 실제로 개를 죽이지만 선천적으로 나쁜 사람이거나 동물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동물을 죽일 만한 인물이 못 된다. 단지 그가 사회생활과 집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분풀이의 대상이 말도 못 하고 짖기만 하는 개일뿐인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폭력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 향하기 마련인데 이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이 술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충숙(장혜진 분)이 하는 말, 행동과도 묘하게 겹치는 지점이 있다. “부자인데 착한 게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거지. 이 돈이 다 나한테 있어 봐. 난 더 착하지.” 하지만 충숙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개를 귀찮다는 듯이 손으로 밀쳐 낸다.


현남은 뉴스에서 영웅으로 소개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다.


감독은 평범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어두운 뒷모습을 도려 낸다. 이 영화에서 뒷모습이 어둡지 않은 유일한 인물은 현남이다. 현남은 강도에게 당당히 맞섰던 은행원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말단으로 일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부랑자 최 씨가 순자를 잡아먹으려는 걸 보고 용기를 내어 구해낸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촬영해 갔다며 텔레비전에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뉴스는 최 씨의 인터뷰만 보여 줄 뿐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위대한 일이지만 개 한 마리를 구하는 것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사실, 사람들은 개 한 마리쯤 죽고 사라지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도시에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동물의 생명을 지킨 것보다 중요한 건 부랑자가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잘 어울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또 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이질적인 것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터진다. 만약 봉준호가 이 영화를 만들던 90년대 말의 우리 사회가 동물에 대한 포용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였다면 개가 잡아먹히거나 죽을 일이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복도식 아파트와 개고기가 나오는, 너무나 한국적인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도시에는 유독 대형 아파트가 많이 지어졌고, 사람들은 아파트에서도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개 짖는 소리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을 줄이려고 성대 수술을 많이 했다고 한다. 봉준호가 새롭게 쓴 <플란다스의 개>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Barking Dogs Never Bite>가 더 안타깝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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