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2)

한국인의 국어생활 2

by 집우주

영어 단어 'fish'는 한국어에서 물고기 또는 생선으로 번역된다. 물에서 헤엄치며 살아있을 때는 '물고기', 요리된 채 식탁 위에 놓여 있을 때는 '생선'이 된다. 이런 경우는 없겠지만, 만약 당신이 외국영화의 영어 대사를 한국어 자막으로 보다가 '점심에 물고기 먹었어.', '이 식당 물고기가 정말 맛있대.' 같은 문장을 보게 된다면, 아마 당신은 빠져나오려는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번역가가 누구인지 찾아볼 것이다.


한국인은 생선을 먹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이 절대로 물고기를 먹지 않는 것(또는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원시적 삶을 살거나 원초적 자연 상태에 놓인 한국인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한반도에서 살았던 한국인들의 옛 조상들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 자연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나 TV프로그램에서 '물고기를 먹었다'라고 표현해도 크게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두 단어의 차이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 물고기 : 물 + 고기

* 생선 : 生 + 鮮(=鱻)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물고기는 순우리말이고, 생선은 한자어라는 것이다. 아마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조상들은 '물고기'로 말하고 들었고, 그 후에 한자의 영향을 받아서 '생선'이 쓰이게 됐을 것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다'에 초점이 맞고, 생선은 사람이 먹을 음식으로서 '싱싱하다'는 뜻이 더 중요하다. 한자를 뜯어보면 생(生)은 '살다, 싱싱하다', 선(鮮)은 '신선하다, 물고기'라는 뜻이다. 鮮의 옛 글자는 鱻인데 魚(어) 자 3개로 이루어져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갓 잡혀서 팔딱거리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의 물고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생선'이라는 단어가 필요했을까? 현대와 같이 냉장시설이나 유통망이 갖춰지지 않았던 옛날을 상상해 보자.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살 수 있고,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 인간이 잡은 물고기는 물밖에서 금방 죽게 되고, 죽은 물고기는 상온에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된다. 어느 누구도 물고기 특유의 비린내에 썩은내까지 더해진 물고기를 먹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물고기를 먹었다가는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내륙지방에서 물고기는 구하기 힘든 귀한 식재료였다. 그래서 인간은 바로 요리되지 못한 물고기를 염장해서 보관기간을 늘리거나 볕과 바람, 추위를 이용해 말려서 먹는 등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잡은 동물을 바로 먹을 때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요리를 하기 직전까지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는 단어, 분명히 어느 인간 집단에서는 그런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단어가 필요하지 않았던 인간 집단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니, 더 궁금해졌다. 선(鮮)에도 '물고기'라는 뜻이 있다지만, 한국인에게 물고기의 뜻으로 훨씬 익숙한 한자는 魚(어)다. 왜 '생선'에 魚를 사용하지 않는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찾아봤다. 놀랍게도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모두 魚(=鱼: 중국어 간체)를 쓰고 있었고, 더욱 놀랍게도 魚는 한국어의 '물고기'와 '생선'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었다. 마치 영어의 fish처럼 말이다. 굳이 한국어의 '생선'과 비슷한 뜻으로 말하려면 생어(生魚)나 활어(活魚), 일본에서는 선어(鮮魚)를 사용한다고 한다. 生鮮(shēngyú / せいせん)은 두 나라에서 한국어의 '생선'뿐 아니라 과일, 채소 등 열을 가하거나 가공하지 않은 신선식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중국어에서는 生鮮(생선)이라는 단어가 더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조리한 식품', 더 넓게는 디지털/온라인 배달시스템을 활용한 '당일 배송이 가능한 식품'으로도 쓰인다고 했다.


生鮮(생선)은 '싱싱하다'는 뜻으로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한 단어가 각각 다른 문화, 국가, 역사에서 사용되어 오다가 현재에 이르러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고 무척 흥미롭다. 왜 한국어만 선(鮮) 자를 쓰고 있는지, 중국어와 일본어가 어느 때에 어(魚)자로 바꿨다면 한국어는 왜 바꾸지 않은 건지, ... 질문이 많아졌지만 여기서 당장 답을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단어의 어원과 유래를 알아가는 일은 분명 보람차고 재미있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혼자서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생각과 상상을 해 보는 게 즐거울 뿐이다. 오늘 내가 듣는 단어들, 어제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단어들을 어떻게 말했을까?



** 참고 **

조선비즈 <오강돈의 중국마케팅: 한·중 양국에서 생선(生鮮)의 의미>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9/20200609016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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