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3)

한국인의 국어생활 3

by 집우주

'물고기'와 '생선(生鮮)', 두 단어는 글자 수, 모양, 소리는 물론이고 단어가 구성되는 방식까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영어의 fish처럼, 모국어에서 둘을 하나로 사용하는 외국인은 한국어를 배울 때 두 단어를 모두 알아야 한다. 행여 대한민국의 나라말이 자기 나라의 언어와 달라서 더 많은 단어를 배워야 하는 그들을 가엾게 여길 필요는 없다. 같은 이유로 불쌍하기는 한국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어에서 '먹기 위해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지칭하기 위해 '생선'이라는 새 단어를 사용해 온 것을 확인했다. 기존 단어(물고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없는 다른 단어(생선)을 가져와 둘을 구분한 것이다. 영어에서는 이같은 방식을 육류 관련 단어에서 사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 중에서 돼지, 소, 양과 그 고기를 주로 아래와 같이 말한다.


* pig - pork : 돼지 - 돼지고기

* cow - beef : 소 - 소고기

* sheep - mutton : 양 - 양고기


한국어의 '물고기-생선'처럼, 위에서 '동물-고기'로 짝을 이루고 있는 두 단어 사이에는 연관성이 크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기'를 뜻하는 pork(돼지고기), beef(소고기), mutton(양고기)는 한국어의 '생선'처럼 '음식, 식재료'를 뜻하는 단어로 언제부터인가 쓰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세 단어는 모두 프랑스어 porc(돼지), bœuf(소), mouton(양)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었다. 11세기 프랑스는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했다. 패전한 잉글랜드의 사람들은 피지배층이 되어 주로 동물을 키우고, 사냥하고, 도축하는 일을 했고, 반면 프랑스 귀족들은 그저 요리된 고기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현대영어에서, 살아있는 동물은 앵글로색슨계의 단어로, 음식인 고기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아주 흥미로웠다.


영어에서 동물을 고기로 만드는 방식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단수/복수형 표현이나 관사(a/the)의 여부로 동물의 생사가 갈린다. 보통 복수형으로 말하면 살아있는 동물이고, 특정 동물 한 마리를 가리킬 때는 관사를 붙이면 된다. '고기'의 뜻으로 말하려면 복수형을 뜻하는 '-s'와 관사를 붙이지 않는다.


* chickens / a chicken : 닭 / 그 닭

* chicken : 닭고기


* I like dogs. / I like the dog. : 나는 개를 좋아해. / 나는 그 개를 좋아해.

* I like dog. : 나는 개고기를 좋아해.


한국어의 물고기와 생선을 fish라는 단어 하나로 아울렀던 영어는 육지동물(들짐승과 날짐승)을 잡아 고기로 만들 때는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진다. 단수/복수형이나 관사가 없는 언어 사용자는 익숙하지 않은 이런 문법 때문에 자칫 한순간에 자신의 반려견을 먹어버리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견주가 될 수도 있다. 그 반면에 한국어는 동물을 고기로 만드는 게 정말 쉽고 간단한데 동물 단어 뒤에 그저 '고기'를 붙이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肉(고기 육, ròu/にく)자를 붙여서 고기를 만든다.)


* 닭, 소, 돼지, 오리, 양, 염소, 개, 고래, 꿩, 토끼, 사슴, 캥거루, 낙타, 박쥐, 까마귀, ... + 고기


오래 전에 멸종된 공룡이나 상상속의 생명체까지, 한국어는 무슨 동물이든지 다 고기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방법이 워낙 단순하고 강력하다 보니 '사람고기'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나 맹수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인육풍습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에서 이 표현을 읽게 됐을 때, 그것이 윤리적 차원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는 있어도 언어적으로 잘못됐거나 단어가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는 육지 동물에게는 죄다 고기라는 이름표를 붙여서 잡아먹지만, 정작 물고기는 고기라고 부르면서도 먹지 않는다. 영어는 육류를 세세하게 다루면서도, 물고기에게는 헤엄을 치고 있든 식탁에 놓여 있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랜 역사에서, 인간은 동물을 보살피고 그들과 교감하며 같이 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생존과 필요를 이유로 동물을 죽여서 먹기도 했다. '동물에 대한 애정'과 '고기를 향한 욕구' 사이에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물'과 '음식으로서 동물'을 다른 단어로 구분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과 인식은 인간 집단에 따라서 분명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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