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4)

한국인의 국어생활 4

by 집우주

"물고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지금 당신이 머릿속에서 그린, 바로 그거다. 동그란 눈, 벌어진 입, 타원형의 몸, 두 갈래로 가늘어지는 꼬리, 거기에 아가미와 지느러미와 비늘을 더하면 완성되는 물고기의 옆모습 말이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본따서 魚(물고기 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인간의 눈에 비치는 물고기의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이 먹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채소, 고기(육류), 생선(어류)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살아있을 때의 모양 거의 그대로 식탁에 올려지는 것은 생선뿐이다. 채소는 뿌리, 잎, 꽃, 열매 중에서 인간이 먹는 것만 추리고 나머지는 거의 버려진다. (대파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간은 채소의 일부만을 취한다.) 고기는 보통 도축할 때 부위별로 잘리고 조각으로 나뉘어 그릇에 담겨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잘게 썰린 고기를 보고 무슨 동물의 고기인지 알아맞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르던 돼지를 직접 잡아먹는다고 해서,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밥상에 오르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물고기는 사람에게 잡혀서 생선이 되어도, 식탁에 올라도 그 모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모양을 유지한 채로 요리하는 것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생선의 신선함, 싱싱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생선은 통째로 밥상에 올라야 하니, 모양뿐 아니라 크기도 중요하다. 그래서 식탁과 그릇의 크기에 맞춰서 보기 좋게 담아낼 수 있는 물고기만 '생선'으로 요리되는 자격을 얻는다. 한국인은 멸치같이 크기가 너무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을 때 '생선을 먹는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큰 물고기도 생선으로 불리지 못하는데 상어가 좋은 예다. 바닷가와 인접한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돔배기(돔발상어)'라는 음식을 예전부터 먹어왔고,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보통 돔배기는 상어를 토막내어 산적(散炙)처럼 먹는데 이는 생선요리 방식이 아니라 고기(육류)를 요리하고 내어놓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돔배기, 즉 상어는 분명 물고기인데도 '생선'이 아니라 '상어고기'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한국인이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다. 한국인은 생선의 가시를 발라서 '살'을 먹는다. 하지만 고기의 뼈를 발라낸 부위인 '살'을 먹을 때에도 '살코기(살+고기)'라고 꼭 '고기'를 넣어 말한다. '살'은 뼈, 가시, 내장을 제외한 몸을 이루는 부분을 이르는 말로 살아있는 동물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이 지점에서도 한국인의 육지동물과 물고기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고기'라는 단어는 분명히 음식이 된 동물에게만, 육류에 대해서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물고기'에 들어있는 '고기'가 마음에 걸린다. 먹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자연생명체로서 '물고기' 대신 '물살이'라고 부르자는 어느 동물권 단체의 주장과 같이 물고기라는 단어가 어류를 먹을 것으로만 바라보는 인간 중심의 관점이라는 데 동의하며 불편해진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 이전에 도대체 왜 한국인은 먹지도 않는 '물고기'에 '고기'를 붙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사전을 찾았고, 문제는 예상보다 쉽게 풀렸다.


<표준국어대사전>

* 고기 :

①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

③ 어류의 척추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③은 '물고기'의 사전적 정의와 뜻이 같다.)



사전을 통해서 고기가 인간이 죽여서 잡아먹는 모든 동물(들짐승, 날짐승, 물짐승)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물고기의 경우에는 살아있을 때도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냇물가에서 고기 세 마리를 잡았다'는 문장에서 '고기'는 분명 '물고기'로 이해된다. 여러 문학작품의 예문에서도 '물' 없이도 살아있는 '물고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상생활에서 '고기'가 ①의 뜻으로 많이 쓰이고, ③의 뜻으로는 별로 쓰이지 않다 보니 오해와 혼란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고기'는 처음부터 저 두 가지 뜻으로 쓰였을까? 아무도 어원과 유래를 확실히 알 수 없기에 마음대로 상상을 해 봤다. 아주 먼 옛날 한국인들에게 '고기'는 살아있든 요리가 됐든 '모든 동물'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러나 그때의 한국인은 들짐승은 수렵으로, 물짐승은 어렵으로 잡아먹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땅(뭍)에서 사는 고기'와 '물에서 사는 고기'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에서 사는 어류에게 '물'을 붙여서 '물고기(물+고기)'라고 불렀다. 어쩌면 그때에는 들짐승을 가리키는 '땅고기'나 '뭍고기'라는 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후, 한국인은 더 자주 보고 특징이 잘 구분되는 들짐승들에게 먼저 이름을 지어주었다. 개, 고양이, 돼지, 소, ... 반면 모양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어류에게는 한동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만약 인간이 물에서 살았다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고기'는 음식이 된 동물을 뜻하는 의미로 범위가 축소되었다. 반면 '물고기'는 그보다 더 오래 사용되다가 오늘날까지 쓰이게 됐고, 음식이 되기 위해 잡혔을 때만 '생선'이 된 것이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골치만 아파서 그럴 듯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놓고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결론이야 어찌 되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이 처해 있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단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의미가 달라지고 또 갈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채소, 고기, 생선 말고 곤충도 있다. 가난한 시절을 살았던 어른들은 '메뚜기고기'를 먹지 않고 '메뚜기살'을 먹지 않고 '메뚜기'를 먹었다. 곤충은 기후위기 시대에 육류 대체식품으로 각광받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앞으로 그런 식생활이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면, 한국인이 곤충을 ‘고기’로 먹게 되려나?



** 참고 **

경향신문 <물고기, 고기가 아니라 '물살이'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50401205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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