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7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한국인에게는 주의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 주는 속담으로 익숙하겠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은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실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 문장을 만들 때, '아'가 쓰이는지 '어'가 쓰이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어 수업 현장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방식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겠다.
* 먹습니다 ; 먹다 + (스)ㅂ니다 → 먹- + -습니다
* 좋아요 ; 좋다 + 아요 → 좋- + -아요
* 타고 ; 타다 + 고 → 타- + -고
# 어간(語幹) ; 먹-, 좋-, 타-
# 어미(語尾) ; -다, -(스)ㅂ니다, -아요, -고
위와 같이 동사(動詞)나 형용사(形容詞)의 경우, 단어의 기본형은 어간(語幹)과 종결어미(語尾)인 '-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어들을 활용해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만들려면 '-다'를 빼고 나서 '-(스)ㅂ니다, -아요, -고' 같은 어미를 붙이면 된다. 이처럼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은 단어의 어간에 여러 어미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한국어 교재는 1~6급(초·중·고급 각 2개씩)으로 되어 있고, 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급 하나를 배우는 데 1~6개월이 걸린다. 그리고 보통 매 수업마다 1~3개의 어미를 배운다. 이렇게 오래도록 공부해도 한국어의 모든 어미를 다 배우지 못한다. 한국인이라면 잘 알다시피, 한국어의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은 어미를 통해 나타나고, 그 어미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설명 없이 가나다 순으로 쭉 늘어놓기만 해도 아마 꽤 두꺼운 책 분량은 될 것이다. 거기에 정확한 표기가 어려운 지방 사투리인 '-유, -래요, -는겨, -능가, -꼬?, -엄서?', 조선시대 정승 맹사성의 공당문답 일화에 나오는 '-공?, -당', 동물관련 단어에서 따와 이모티콘이나 동영상 자막에 많이 쓰이는 '-개, -멍, -냥, -소, -조', 특정 집단의 은어나 또는 그저 재미로 사용되는 '-용, -숑, -즈아', ... 표준어로 인정되지는 않아도 옛이야기나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이런 어미들을 과연 다 세어 볼 수나 있을까?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어미들 중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를 염두에 두고 잘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아/어-'로 시작하는 어미들이다.
* -아/어요, -아/어서, -아/어라, -아/어자, -아/어, -아/어 가다, -아/어나다, -아/어 먹다, -았/었, ...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운 한국인은 위의 '아/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는 '한국어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에서 '아/어'는 문장을 만들 때 '아'나 '어'에서 하나만 선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지 결정하는 열쇠는 '어간 마지막 글자의 모음'이 쥐고 있다.
{어간 마지막 글자의 모음이 ㅏ 또는 ㅗ인 경우} + -아-
* 가다 ; 가- + -아요 > 가아요 → 가요
* 보다 ; 보- + -아요 > 보아요 → 봐요
* 만나다 ; 만나- + -아요 > 만나아요 → 만나요
{어간 마지막 글자의 모음이 ㅏ 또는 ㅗ가 아닌 경우} + -어-
* 서다 ; 서- + -어요 > 서어요 → 서요
* 주다 ; 주- + -어요 > 주어요 → 줘요
* 마시다 ; 마시- + -어요 > 마시어요 → 마셔요
어간 마지막 글자의 모음 ㅏ는 어미의 같은 모음인 '아'와 결합하고, 모음 ㅓ 또한 같은 모음인 '어'와 결합한다. 이 규칙을 따라 어미 '-아/어요'는 '-아요' 또는 '-어요'로 쓰이는 것이다. 모음조화에 대한 감각이 있는 한국인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모음 ㅏ와 ㅗ의 관계다. ㅏ는 문법을 따라야 할 때, 언제나 ㅗ를 데리고 온다. 죽마고우, 베프, 절친, ... 사내 놈들이라면 불알친구라고 할 정도로 둘은 항상 붙어 다닌다. 그래서 ㅏ와 ㅗ 두 모음은 어미의 '아'와 결합하고, 나머지 모음은 모두 어미의 '어'와 결합한다.
위에서 예로 든 어미들은 모두 '아/어-'로 써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모음 하나가 더 숨어 있다. 아래와 같이 동사나 형용사 중에 기본형이 '-하다'로 끝나는 경우에는 위의 법칙대로 '아'와 결합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여'와 결합한다.
{어간 마지막 글자의 모음이 '하'인 경우} + -여-
* 일하다 ; 일하 + -여요 > 일하여요 → 일해요
* 따뜻하다 ; 따뜻하 + -여서 > 따뜻하여서 → 따뜻해서
여기에서 '하'는 '일하다'처럼 동사(動詞) '하다'의 어간일 수도 있고, '따뜻하다'의 '-하다'처럼 어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와 '여-'의 결합은 의미에 따라 구분되지는 않으므로 속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어쩌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힌 한국인들이 오히려 이런 문법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결합방식은 문장을 쓰거나 말하려고 할 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어미에 '아/어-' 두 개만 써 있더라도 '아/어/여-'로 봐야 한다. 이 모음들의 차이를 모르고 이 결합방식에 익숙해지지 못한다면, 한국어로 말하기는커녕 바로 다음 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르고, 또 '여'가 다르다. 이것만 알면, 한국어라는 산의 정상을 떡하니 가리고 있는 눈앞의 언덕 하나를 넘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