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고 여 다르다 (4)

한국인의 국어생활 8

by 집우주

외국어를 공부하는 처음은 그 언어의 글자를 배우는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배우는 외국어는 영어로, 나도 어릴 때 멜로디에 맞춰 "ABCDEFG~" 노래를 부르고 한 글자씩 공책에 써 가며 알파벳을 외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F, R, V 같이 한국어에 대응하는 발음이 없다고 여겨지는 글자를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아래는 내가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헷갈렸었거나 혼동하기 쉬운 외국어 문자들을 정리한 것이다.


* {영어} E, F / M, N / P, R / V, W

* {중국어} 日, 曰 / 己, 已 / 田, 由, 甲, 申

* {일본어} シ, ソ, ツ, ン / ラ, フ, ワ, ウ

* {그리스어} Γ, Π / Δ, Λ

* {아랍어} ب ,ت ,ث / خ ,ح ,ج

* {태국어} ค, ด, ฅ, ต / บ, ป / ฎ, ฏ / ฤ, ฦ


한국인들은 보통 기초교육과정에서 영어 알파벳과 한자를 배운다. 나 역시 외국어 중에서 알파벳과 한자가 가장 익숙한데 어릴 때 획 하나, 점 하나에 전혀 다른 소리와 뜻이 되는 글자들을 그저 달달 외웠던 기억이 있다. 일본어에서는 특히 가타가나(片仮名)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늘 공부를 게을리하는 나를 탓하고 만다. 그리스어는 특정 글꼴에서 표기가 단순해지면서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아랍어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겠는 것이 구은재가 점 하나 찍고 민소희가 되는 수준이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태국어는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오래 보아도, 내 눈에는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각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고 할지 몰라도, 그 언어에 관련한 문화나 지식 하나 없이 외국어 글자를 마주한 사람들은 처음에 "뭐 이런 글자가 다 있냐?"고 황당해할 것이다. 물론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어 수업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도 점 하나, 선 하나만 있고 없는 한글을 보고 당황해한다.


* {모음} 아, 야, 어, 여 / 오, 요, 우, 유 / 애, 에, 얘, 예 / 와, 왜, 외 / 워, 웨, 위 / 으, 이, 의

* {자음} ㄱ, ㄲ, ㅋ / ㄴ, ㄷ, ㄸ, ㅌ / ㄹ / ㅁ, ㅂ, ㅃ, ㅍ / ㅅ, ㅆ, ㅈ, ㅉ, ㅊ / ㅇ, ㅎ


한글의 가장 단순한 형태의 모음(母音)과 자음(子音)에서 점이나 획을 더해가며 모양이 비슷한 글자끼리 임의로 그룹을 지어봤다. 글자 모양이 기준이지만 각 그룹 안의 글자들을 잘 살펴보면 비슷한 소리가 나거나 대체로 조음(調音)방식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직 한글, 한국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잘 알다시피 세종대왕이 과학적인 원리로 한글을 창제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덕분이다. 다른 외국어를 예시로 살펴보면, 이런 한글의 독특함이 분명해진다. 영어 알파벳의 E와 F는 획 하나만 다르고 순서도 연달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소리로 발음된다. 심지어 E는 모음, F는 자음으로 다르게 분류되고, 당연히 그 쓰임도 다르다. 日(일)과 曰(왈)에, 己(기)와 已(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저 글자가 많아지다 보니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오래도록 나를 괴롭히고 있는 シ(시), ソ(소), ツ(츠), ン(-ㅇ)에서도, 수학교과에서나 봤던 Γ(γάμμα 감마)와 Π(πι 피), 이제는 코로나 변이바이러스 이름으로 익숙해진 Δ(δέλτα 델타)와 Λ(λάμδα 람다) 사이에서도, 나는 그 어떤 소리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아 다르도 어 다르다'는 특별하다. '아'와 '어'는 모음의 가로점 위치만 다를 뿐 글자의 나머지 모양은 같고, 소리도 비슷하게 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언어에도 이 속담과 같은 표현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본 중에 가장 가까운 말은 '지금 당신의 행동, 매너, 언어에 주의하라'는 뜻의 'Mind your ps & qs'라는 영어 표현이었다. 이 말의 여러 기원 중 하나를 소개하면, 19세기 인쇄소에서 조판을 할 때 소문자 p와 q가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때 썼던 말이라고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와 거의 같다고 생각했지만 'Ps & Qs'라는 대문자로 표기하면 글자의 대칭이 주는 재미가 사라진다. 어이아이(於異阿異)라는 사자성어가 있다고 해서 반가웠지만 이것은 우리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를 한역(漢譯)한 것이었다.


앞선 글에서 모음 ㅏ와 ㅓ만 바꿔서 짝을 이루는 단어를 찾아봤듯이 한국어와 한글에는 시·청각적 유사(類似)의 재미와 재치가 있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단어 짝 중에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나 - 너'이다. 한글이 상형(象形)문자는 아니지만 몇몇 글자들은 형태를 본따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껏 이야기를 지어내 보곤 한다. '나'의 ㄴ은 아래-왼쪽은 닫혀 있고, 위-오른쪽은 열려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열려 있는 위쪽은 생각이 드나드는 머리, 오른쪽은 말이 오가는 얼굴 방향이다. 얼굴에 있는 ㅏ의 세로선은 눈, 귀, 코, 입 등 감각기관을 가리키고, 가로점은 입에서 말이 밖으로 나가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ㅏ가 반대로 뒤집어진 ㅓ는 말이 사람에게 가서 닿는 것이 되므로, ‘너’는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다. 재미로 상상해 본 것에 불과하지만 한국어, 한글에서는 점 하나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나'라는 주체와 '너'라는 상대가 만들어진다. 앞서서 언급했듯이 둘은 모양뿐 아니라 소리도 닮아 있다. 이것은 I와 You에서, 我와 你에서, わたし와 きみ에서, Yo와 tú에서는 결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한국어의 맛이고, 한글의 멋이다.


* {핀란드어} minä - sinä ; 나 - 너 (주격)

* {독일어} mich - dich ; 나를 - 너를 (목적격)

* {인도네시아어} aku - kau ; 나 - 너 (문어체)


이같은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다른 언어에도 있을까? 궁금함을 참지 못했고, 위처럼 글자 하나만 다르거나 순서만 바뀐 단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핀란드어에 'm 다르고 s 다르다'라는 말이 있는지 모른다. 독일어에도, 또 인도네시아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 건 나의 부족한 식견과 검색 능력 탓이겠지만, 그 이전에 한국인이라는 한계가 더 큰 이유로 다가온다.


하지만 굳이 그 경계를 넘어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에 얻게 된 축복이고, 그 말을 여러 가지로 바꿔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인 내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하는 사람인 '나'가 듣는 사람인 '너'를 신경써야 한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을 '나 다르고 너 다르다'로 바꿔서 말해 보면, 말뿐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다 더 잘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친 김에 '다 다르고 더 다르다'도 해 보자.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알면 남을 차별하지 않고 아우를 수 있을 것이고, 이 지구에서 인간과 다르게 진화해 온 동·식물을 비롯한 생명들이 인간의 방식보다 '더 다르다'는 걸 알면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을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맛과 그 멋에는 그침이 없다. 우연히도, 한국식 한자에서 '나'를 뜻하는 한자 我는 '아'로 읽고, '너'를 뜻하는 한자는 汝는 '여'로 읽는다. 이 둘의 실제 중국어 발음은 我[wǒ], 汝[rǔ]다. 그렇다면 '나 다르고 너 다르다'는 말을 '아(我) 다르고 여(汝)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 여'는 또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끝이 없기에 이 글은 이만 그치려고 한다. 참으로 ㅏ 다르고 ㅓ 다르고, 또 ㅕ 다른 한국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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