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되고 싶은 막내, 받침 (2)

한국인의 국어생활 10

by 집우주

누구나 외국어를 배우면서 '우리 말과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다르다'는 생각에 공부는 어려워진다. 생소한 글자를 익히고 모국어에 없는 소리를 흉내내는 수고야 애초에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문법, 규칙, 관용, 예외 등에서 보이는 표현 방식의 차이는 전자(前者)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어려움이다. 언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의 역사, 문화, 관습 등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언어사용자들의 생활모습과 사회 현상까지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낯선 것을 만나는 순간순간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한다면, 외국어 공부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넉넉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언어에는 저마다의 고유성이 있다. 그 언어가 처음 만들어질 때, 또는 오래도록 사용되면서 생겨난 특징이다. 보통 이런 개성이 다름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불편함과 불쾌감을 동반한 매우 이상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판단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의적이고 상대적이다. 바깥에서 볼 때는 독특한 것지만, 그 언어로 말해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보편이지 않은가? 그러나 다른 것을 받아들 때, 마음을 넓게 쓰지 못하면 밴댕이 소갈딱지마냥 속좁게 성질만 부리게 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하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일 것이다.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는 그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다. 다만, 뒤에 모음이 이어질 때만 소리내어 읽는다'는 프랑스어 발음규칙에 괜히 발끈해 그대로 책을 덮어버린 나처럼 말이다.


당시에 나는 프랑스어 발음규칙이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후 어찌어찌하다 보니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곧 지난날의 행동을 처절하게 뉘우치고 반성하게 되었다. 프랑스어의 괴팍한 발음규칙이 한국어에도 똑같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 Saint : s + ai + n + t

- Saint[생] : 마지막 자음 t를 발음하지 않는다.

- Saint-Exupéry[생텍쥐페리] : t가 모음 E와 연결되니 발음해야 한다.


* 값 : ㄱ + ㅏ + ㅂ + ㅅ

- 값[갑] : 마지막 자음 ㅅ을 발음하지 않는다.

- 값이[갑시] : ㅅ이 모음 ㅣ와 연결되니 발음해야 한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내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소개하겠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자세히,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상대를 보면, 자신과 상대의 공통점을 아무리 못해도 한두 가지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각자 살아가는 시공간과 조건과 환경에 따라 다 다른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도 그렇다. 모양도 소리도 가지각색이지만 닮은 점이 많다. '다르다'는 생각을 '우리 말과 같다/비슷하다'고 바꾼다면, 최소한 외국어를 공부하다가 첫 장에서 책을 덮어버리는 치사하고 쩨쩨하고 졸렬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생텍쥐페리부터 프랑스어 발음규칙까지 돌아오느라 오래 걸렸다. 지금부터 이번 글의 주제인 한국어의 받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글이 길어졌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한글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자모(字母) 구성으로 글자를 만든다.


① 모음

② 자음 + 모음

③ 모음 + 받침(자음)

④ 자음 + 모음 + 받침(자음)


①을 통해 모음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글자로 단독으로 쓰이는 걸 알 수 있다. ②, ③, ④에서 보듯 자음은 모음 없이 단독으로 글자가 될 수도 없고, 소리를 낼 수도 없다. 문자나 메신저 등의 텍스트 채팅에서 자주 쓰는 ㅋㅋㅋ나 ㅎㅎ는 사실 소리내어 읽을 수 없다. 다만, 사용자가 '크크크', '캬캬캬', '킥킥킥'이나 '하하', '호호', '헤헤' 등 저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모음을 붙여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한글 자모의 이런 특성과 관계를 한자 母, 子라는 한자를 활용해서 모음-자음(母音-子音)이라고 이름 붙인 데 주목하려고 한다. 母는 '어머니', 子는 '아기'이다. 한자가 만들어졌을 당시 아주 먼 옛날, 어머니가 앉아서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어머니는 성인(成人)으로써 혼자 밥을 지어 먹으며 살 수 있지만, 아기는 어머니가 젖을 먹이지 않으면 스스로 살 수 없다. 이렇게 자립하는 어머니와 의존하는 아기의 모습을 글자가 단독으로 발음이 가능한지 아닌지 그 여부에 적용해 '모음'과 '자음'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바닥에는 어머니 다리를 붙잡으려 버둥거리고 있는 아기가 한 명 더 있다. 즉, 어머니에게 ‘첫소리/초성(初聲)’와 ‘끝소리/종성(終聲)’라는 자식(자음)이 둘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글에서 이들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름이 너무 어렵고 좀 딱딱하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초성)를 '첫째', 어머니 다리를 잡고 있는 아기(종성)를 '막내', 그리고 입에 영 붙지 않는 어머니를 '엄마'로 바꿔 보겠다.


① 엄마

② 첫째 + 엄마

③ 엄마 + 막내

④ 첫째 + 엄마 + 막내


한국어 글자의 가족 구성원이다. 위의 네 가지가 이들이 글자를 이룰 수 있는 경우이다. 엄마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이 집안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첫째는 늘 엄마보다 앞서 있고, 막내는 항상 마지막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순서에서 차별이 생긴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똑같이 엄마의 자식들이라지만 둘의 비중은 결코 같지 않다. 세상의 모든 첫째가 막내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겠지만, 막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첫째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덜 아프게 깨무는 손가락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가정 내에서 유난히 첫째를 편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은 누구나 감각적으로 첫 번째 경험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고 기억한다는 점에서, 또 한계효용 법칙의 관점에서도 부모의 첫째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사의 모습이 언어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을 본다. 엄마에게 첫째와 막내는 똑같은 자식이 아니다. 첫소리와 끝소리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째가 되고 싶은 막내, 받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