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되고 싶은 막내, 받침 (3)

한국인의 국어생활 11

by 집우주

앞선 글에서 모음을 '엄마'로, 첫소리/초성에 놓이는 자음을 '첫째'로, 끝소리/종성에 놓이는 자음을 '막내'로 부르기로 했다. 자모(字母)를 의인화했으니 앞으로 자음을 첫째나 막내로 부를 때 단위명사 '- 명'을 사용하려고 한다. 사람처럼 바꿔놓고서 '- 개'를 붙이려니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좀 그렇다. 호칭에 대해 정리를 했으니, 이제부터 한국어 글자 집안에서 첫째와 막내 사이에 어떤 차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 {첫째}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ㄸ, ㅃ, ㅆ, ㅉ

* {막내}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ㅆ


자식들을 줄세워 보니 한눈에 수가 다른 게 들어온다. 첫째는 19명이고 막내는 16명으로, 막내가 첫째보다 세 명이 적다. 하나하나 비교해 보니, 첫째에 있는 ㄸ, ㅃ, ㅉ은 막내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집안의 유전적 특징인지 아니면 이 셋을 막내로는 낳지 않는 문화가 있는 건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순서에서도 꼴찌인 막내가 쪽수에서도 첫째한테 밀린다는 사실이다. 이런 객관적인 차이야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지, 뭐 별 수 없다.


진짜 차별은 따로 있다. 아기들에게는 기역, 니은, 디귿, 리을, ... 저마다 이름이 있다.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그들의 이름을 노래로 부르며 익혔기에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읏', '티긑', '히응' 등 한 획씩 틀리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ㄲ을 '끼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기들은 첫째든 막내든 모양이 같으면 이름도 같다. 그런데 그냥 ㄱ(기역)이라고만 하면, 첫째와 막내 둘 다 있는 경우에 누구를 부르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막내의 이름 뒤에는 '받침'을 붙여서 둘을 구분한다. 받침이라는 단어는 희생, 보조의 느낌이 강하다. 늘 위쪽에서 돋보이는 첫째와 달리, 막내 받침은 '받치다'에 있는 '밑에서 괴다'는 뜻을 충실히 따라 아래쪽인 바닥에 자리한다.


이름뿐 아니라 소리에서도 차별이 이어진다. 첫째 19명은 모두 온전히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가'의 ㄱ(기역)에서 [ㄱ] 소리가, '카'의 ㅋ(키읔)에서 [ㅋ] 소리가, '까'의 ㄲ(쌍기역)에서 [ㄲ] 소리가 난다. 하지만 막내는 대부분 그러지 못한다. 막내 ㅋ과 ㄲ은 자신의 소리가 아닌 [ㄱ] 소리를 내게 된다. 이렇게 막내 중에서 일부는 '대표 받침'으로 소리가 바뀌게 되는데 그 가짓수는 아래와 같이 16명의 절반도 안 되는 7개뿐이다.


[대표 받침소리] 해당 자음

* [ㄱ] ㄱ, ㅋ, ㄲ

* [ㄴ] ㄴ

* [ㄷ] ㄷ, ㅅ, ㅈ, ㅊ, ㅌ, ㅎ, ㅆ

* [ㄹ] ㄹ

* [ㅁ] ㅁ

* [ㅂ] ㅂ, ㅍ, ㅃ

* [ㅇ] ㅇ


이 중에서 소리만 듣고 누구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막내는 ㄴ, ㄹ, ㅁ, ㅇ 네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대부분 대표 받침소리로 나거나, 그로 인해 이름을 확인해야만 알아볼 수 있다. 특히 [ㄷ]으로 무려 7명이 같은 소리로 나는 걸 보고 있자니, 막내의 설움이 얼마나 클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진다.


이미 막내에 대한 차별이 이리 심한데, 이 집안에 자식이 하나 더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식이 둘이었을 때 막내였던 둘째는 셋째에게 막내자리를 넘기고 중간 지위를 갖게 될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집안에서 첫째가 아닌 이상 둘째와 셋째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고, 둘 다 막내일 뿐이다. 집(글자를 쓸 수 있는 한 칸)은 그대로인데 식구가 하나 늘었으니 셋째에게 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엄마는 꼭 있어야 하니 첫째가 공간을 조금 양보하면 좋으련만, 첫째는 그럴 마음은커녕 동생들에게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다. 결국 둘째와 셋째는 받침자리를 나눠서 쓸 수밖에 없다. 몸을 줄이고 쪼그려서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둘을 욱여넣는다. 어찌어찌해서 각자 자리는 가졌지만, 안타까운 상황은 여전하다. 막내가 늘었어도 '대표 받침'은 둘 다 소리가 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막내들의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


① ㄲ, ㅆ

② ㄳ, ㄵ, ㄶ,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ㅄ


①처럼 둘째와 셋째가 쌍둥이라면 별 다툼 없이 사이좋게 해결이 된다. ㄱ과 ㅅ은 혼자일 때나 쌍둥이일 때나 대표 받침소리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②의 경우에서 생긴다. 둘째가 소리를 낼 때가 있고, 어느 때는 셋째의 소리가 나야 한다. '밟다'는 [발따]인가, [밥따]인가? 갑자기 헷갈릴 것이다.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부르면 안 된다. 어느 쪽으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겹받침을 읽는 발음규칙이 있으니 관련문법을 찾아보기 바란다. 생각보다는 덜 복잡하지만, 조금 까다롭고, 많은 경우에 그렇듯 예외도 있다.


이렇게 한국어 글자 집안에서 첫째를 우선하니, 막내는 늘 찬밥신세다. 또, 셋째까지 생기게 되면 그 식은 밥을 놓고 막내들끼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막내는 첫째가 부럽다. 첫째로 태어나기를 빌고 또 빈다. 하지만 세상만물에는 근본이 있는 법, 하늘같은 대왕님이 정한 그 순서와 위치와 역할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게 꿈만 꾸던 막내는 한 가지 꾀를 내어본다. 첫째가 집에 없으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째가 되고 싶은 막내, 받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