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1)

한국인의 국어생활 13

by 집우주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한 해를 늦춘 대회라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간절하게 느껴진 것 같다. 팬데믹이라는 전례없는 현장과 덥고 습한 날씨라는 악조건에서도 큰 사고 없이 대회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승리의 기쁨, 패자의 눈물, 경쟁을 떠난 우정, ... 올림픽에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단연 개막식이다. 관람객과 시청자의 눈이 한 데 모이는 이 행사는 개최국에게는 자신들의 문화와 국격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장이다. 그래서 춤과 노래, 대형 군무, 불꽃, 영상 등으로 꾸며진 다양한 공연은 전통과 현대, 예술과 기술이 어우러진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개막식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선수단 입장을 기다린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나라들과 다채로운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데 오래 걸리고, 좀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각 국가에서는 인기 종목과 메달 경쟁 시합을 위주로 중계하고, 그렇게 조명을 받는 국가와 선수들은 전체 참가 수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국가명을 하나하나 불러 주면서 선수들을 환영하는 선수단 입장이 어쩌면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 정신과 의의가 담겨 있는 유일한 시간일 것이다.


올림픽기를 든 기수가 선두에 서고, 뒤를 이어 국가별로 선수들이 입장하는데 1번은 언제나 그리스(Greece / Ελλάδα[엘라다])다. 고대올림픽 발상국이자 제 1회 근대올림픽 개최를 예우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개최국 선수들은 맨 마지막에 얼굴을 보인다. 주인이 먼 길을 와 준 손님들을 먼저 소개하는 걸 수도,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처음과 끝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국가명을 쓴 문자의 표기순으로 결정한다. 1896년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대부분의 대회가 로마자(라틴 문자)를 사용하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렸기에 입장 순서는 거의 ABC순을 따랐다.


현재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는 200개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보통 Korea(코리아)로 쓰니 중간쯤인 100번 전후로 입장해 왔다. 전체 참가국의 수와 특정 국가의 참가 여부에 따라 순서가 앞뒤로 조금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로마자를 쓰는 일부 언어에서는 '코리아'의 첫 글자를 C로 적기도 한다. 실례로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에서 열린 2016 리우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공식명칭은 República da Coreia였다. República da는 공화국을 뜻하는 영어의 Republic of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이름은 Coreia로 알파벳 C그룹에 속해서 Korea로 쓸 때보다 훨씬 앞번호인 52번을 받았다. 프랑스어로는 Corée로 쓰니, 다음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인 파리에서도 비교적 일찍 우리나라 선수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자를 쓰지 않는 경우에는 순서를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일본어를 사용하고 고유문자인 가나(假名)로 국가명을 표기한 이번 도쿄올림픽이 좋은 예가 되겠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2 하계올림픽 때와 비교해 보자. 런던에서 1~6번으로 입장했던 알파벳 A로 시작하는 나라들은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아래와 같이 순서에 변화가 있었다. (1번으로 입장하는 '그리스'와 도쿄올림픽에서 2번으로 들어온 '난민 올림픽 대표'는 제외한 순번이다.)


(영국 런던 → 일본 도쿄)

- Afghanistan / アフガニスタン (1 → 4) ; 아프가니스탄

- Albania / アルバニア (2 → 9) ; 알바니아

- Algeria / アルジェリア (3 → 6) ; 알제리

- American Samoa / 米領サモア (4 → 154) ; 아메리칸사모아

- Andorra / アンドラ (5 → 13) ; 안도라

- Angola / アンゴラ (6 → 11) ; 앙골라


A(에이)와 ア(아)는 각각 영어 알파벳과 일본어 가나의 첫 글자다. 그래서인지 위 6개 나라들의 순번이 바뀌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두 올림픽에서 모두 초반에 배치되어 있다. 다만 아메리칸사모아(또는 '미국령 사모아')는 한국어의 '미국령'에 해당하는 米領(べいりょう[베료])가 サモア(사모아) 앞에 붙는 바람에 154번으로 크게 밀려났다. 도쿄올림픽에서 자리가 빈 1~3번에는 아이슬란드(Iceland / アイスランド), 아일랜드(Ireland / アイルランド),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 アゼルバイジャン)이 이름을 올렸다. 영어 알파벳 I(아이)로 시작하는 아이슬란드, 아일랜드의 선수들은 ABC순일 때는 아마 80~90번 쯤으로 입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1번, 2번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하면서도 무척 좋아하지 않았을까? 머나먼 동쪽 나라에서 받은 뜻밖의 환대가 -물론 주인인 일본조차 의도하지 않은- 그들에게 무척 특별한 추억이 됐을지 모른다.


도쿄에서 우리나라는 Korea 때와 비슷한 101번째로 들어왔다. 나는 일본어로 우리나라를 韓国(かんこく[캉코쿠])로 부르니, 오십음도(五十音図)에 따라서 アイウエオ[아이우에오] 다음인 カ=か[카] 그룹에 속해서 초반에 우리 선수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大韓民国(だいかんみんこく[다이칸민코쿠])로 소개되었고, アカサタナハマヤラワ[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 순서에 따라 タ[타]의 탁음인 ダ=だ[다]로 영어 순번과 별 다를 바 없이 중간쯤에 들어왔다. 韓国으로 썼으면 순번이 빨라졌을 텐데 아쉽기도 했지만 정식국호인 大韓民国으로 소개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일본은 1964 도쿄 하계올림픽과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가나를 쓰지 않고 영어 알파벳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했다.


아시아에는 로마자가 아닌 자신들의 고유문자를 쓰는 나라들이 많으니 조금만 더 살펴보자. 19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เกาหลี[까올리]로 소개되었다. เกาหลี는 高麗(고려)의 태국식 음차(音借)다. 한국어로 [ㄲ] 소리에 가까운 자음 ก(꺼 까이)는 태국어 문자 표기의 첫 글자이기 때문에 '까올리'는 41개 참가국 중 캄보디아, 카타르 다음인 3번을 받았다. 올림픽에 비해 참가국 수가 적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빠른 순번이다. 33개국이 참가한 1982 델리 아시안게임 때는 कोरिया[꼬리야]로 7번이었다. 힌디어 문자표기는 먼저 11개의 모음을 쓰고 그 다음에 자음이 오는데, क(ka 까/꺼)는 첫 번째 자음이다. 그래서 모음으로 시작하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인도네시아, 이란, 오만 다음에 카타르, '꼬리야'가 뒤를 이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다. 만약 아랍어로 썼다면 كوريا[쿠리야]로 아마 후반에 입장했을 것이다. 문자에 표기 순서가 없는 한자(漢字)를 쓰는 중국은 어떻게 했을까?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 중국은 국가명을 간체자로 쓰고, 글자 획수가 적은 나라부터 번호를 매겼다. 그리스 다음에 들어온 나라는 几内亚[Jǐnèiyà](기니)로 几는 2획이었고, 개최국인 중국 바로 앞번호를 받은 나라는 무려 16획인 赞比亚[Zànbǐyà](잠비아)였다.


참가국들은 문자 표기 순이라는 큰 원칙에 따라 대체로 개최국이 정한 입장 순서를 수용한다. 그러나 역사·외교·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연달아 입장하게 될 경우 순번에 예민해지고, 주최측은 난감해진다. 사례를 찾으러 멀리 갈 것도 없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올림픽에서 공동입장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남북의 평화와 화합을 연출해 내기도 하지만, 때때로 앙숙처럼 등을 돌려 버리기도 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대한민국은 韩国으로 177번, 획수가 12획으로 같은 朝鮮(조선)은 178번이었다. 하지만 당시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입장처럼 보일 것을 의식한 조선은 차라리 순번을 뒤로 바꿔달라고 했고, 결국 180번째로 입장했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는 중국 측에 韩國[Hánguó]가 아닌 大韩民国로[Dà Hán Mínguó] 표기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정식국호라는 명분과 더불어 초반에 입장하는 효과까지 고려한 요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원래대로 입장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가나다'순으로 정했다. 한국인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초청할 나라들의 명단을 써 보자. 가나, 가봉, 가이아나, 감비아, 과테말라, ... 다 써 놓고 보니, 뭔가 잘못된 게 보인다. 한국어로 부르는 이름이 두 개인 나라를 중복해서 쓴 것이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에스파냐', '대만-타이완', ‘이탈리아-이태리’,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 ... 음... 고민이 된다. 코리아의 K를 C로 쓸 때 순서가 바뀌고, 大韓民国이냐 韩国이냐로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신경이 쓰인다. 만약 당신이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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