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2)

한국인의 국어생활 14

by 집우주

올림픽같이 세계적 이벤트가 열리는 기간이 아니라면, 일상 대화에 나라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는 건 언어명일이 아닐까 한다. 현재 지구 상에는 7,00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한국어'라는 단어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들어있듯이 '□□어, △△어' 같은 언어명에서 보통 그 언어가 만들어져서 주로 사용되는 국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 한국어로 다른 나라의 이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교의 인문캠퍼스, 그중에서도 다양한 외국어를 만날 수 있는 '어문계열 학과'에 찾아가 보자.


[어문계열 학과명]

중어중문학과, 일어일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노어노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중(中), 일(日), 영(英), 독(獨), 불(佛), 노(露), 서(西)가 국가명을 대표하는 글자다. '중'은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의 첫 글자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중화민국(中华民国)으로, 더 짧게 중국(中国)으로 쓴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공(中共)으로 쓰기도 했다.) '일'은 일본(日本)인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드물지만 일본국(日本国)이라는 표기도 쓰였다. (왜 일본은 중국처럼 일국(日国)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만 이번 주제와는 크게 상관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영'은 영국이다. 중국 사람들이 England를 듣고 英吉利로 적고 나라를 뜻하는 國을 붙였다. 英吉利國[Yīngjílìguó 잉질리궈]를 줄여서 英國[Yīngguó]로 썼는데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영국이 된다. 학과명에 있는 '중어'는 중국어, '일어'는 일본어의 준말이다. 그런데 '영어'는 영국어(英國語)로 말하지 않는다. 영어는 19세기 말부터 영국이 아닌 미국을 통해 퍼져나가며 오늘날 세계공용어의 지위까지 올랐다. 우리나라는 이래저래 미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으니, 영국이라는 특정 국가를 표시하지 않으려고 '국(國)'을 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옛날 신문을 찾아보니, 상대적으로 횟수는 적지만 '영국어'도 '영어'와 함께 쓰이다가 1960년대부터 쓰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자(漢字)는 중국에서 만든 문자이지만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 몽골 등 동아시아 전반에서 사용됐고, 각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래서 한자로 쓰는 단어라고 해서 다 중국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독'은 독일(獨逸), '불'은 '불란서(佛蘭西)'인데 이들은 일본어의 음역어(音譯語)다. 獨逸은 일본어 발음으로는 ドイツ[도이치]다. 독일어 원어인 Deutchland[도이칠란트]에서 세 글자를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예처럼 글자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獨(독)이 아닌 德(덕)을 써서 德国[Déguó 떠궈]로 부른다. 일본은 프랑스를 佛蘭西[フランス]로, 중국은 法兰西[Fǎlánxī]로 적었다. 한국식으로 각각 불란서, 법란서이지만 두 나라의 발음으로 읽어 보면 France[프랑스]와 제법 비슷하게 소리가 난다. 호주도 일본과 중국에서 다른 한자를 쓴다. 일본에서는 濠洲[ごうしゅう 고우슈]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澳洲[Àozhōu 아오주]로 쓴다. 베트남에서도 중국과 같은 한자 澳[Úc 욱]으로 표기한다. 미(美)국도 있고, 미(米)국도 있다. 영어 America[어메리카]를 원어로 발음하면 [어]는 아주 약하고 [메]에 강세가 있다. 처음 서양인들에게 이 소리를 들은 아시아 사람들은 [어]를 잘 듣지 못했고 [메]를 중요하게 인식했다. 중국인은 그것을 美로, 일본인은 米로 적었고 그 글자가 U.S.A.를 가리키는 '미'가 되었다. 음차는 글자의 소리를 빌려오는 것이지만 그 뜻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美國으로, 북한은 米國으로 쓴다. 핵폭탄과 미사일 버튼을 먼저 누르겠다고 서로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북한이 미국을 아름답게(美) 볼 리가 만무할 것이다.


'노'는 노서아, '서'는 서반아다. (1999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명에 있었던 '사바나'의 오기가 아니다.) 만약 언어 전공 관련자가 아닌데도 노서아, 서반아가 어느 나라인지 단번에 알아듣는다면 21세기에 태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러시아(Россия)를 노서아(露西亞) 또는 아라사(俄羅斯)로 썼다. 아라사는 몽골어에서 러시아를 가리키는 단어인 Орос[오로스]의 음역어라고 하기도 하고, Россия(러시아)를 적은 라사(羅斯) 앞에 Р(영어의 R 에 해당)를 발음할 때 혀를 굴리는 것을 표기하기 위해 '아'를 더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896년 고종 황제가 거처를 옮겼던 아관(俄館)이 바로 '아라사 공관'이다. 노서아의 노(露)는 한국어 문법의 두음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로'로 읽는다. '로서아'로 써 보니 '러시아'와 모양도 소리도 나름 비슷해진다. 서반아(西班牙)는 España[에스파냐]를 듣고 적은 것이다. America의 경우처럼, 강세가 없어서 소리가 약한 첫 모음 E[에]를 지워 보니까 西班牙[Xībānyá 시바냐]로 들린다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어문계열 학과명에서 쓰인 7개 나라이름을 통해 한국어의 외국 국가명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봤다. 사실 '○어○문학과'라는 과목명은 20세기 우리나라에 대학교가 설립될 당시의 중국, 일본식 한자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어로 국가명을 표기할 때 잘 쓰지 않는 글자가 과목명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문(語文)'은 어학(語學)과 그 언어로 쓰인 문학(文學)을 아우르는 교육과정으로 현대에 이르러 실용성을 추구하는 흐름과 좀 맞지 않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시대를 반영하여 언어학과가 신설되거나 이름을 바꾸는 경우 문학은 과정에서 빠지고, 언어명은 요즘 세대에 익숙한 영어표기로 바뀌고 있다.


[외국어전공 학과명]

영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독일어과, 프랑스어과, 러시아어과, 스페인어과


물론 영국, 중국, 일본, 독일은 여전히 한자가 익숙하다. 우리나라와 역사·지리·문화적으로 오래 전부터 많은 영향을 주고 받은 나라들이기 때문에 관습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노서아, 서반아는 불리지 않는다. 그나마 사용 빈도가 높았던 불란서도 인기드라마에 나온 제빵소 가게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20세기에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예술가들의 편지에 써 있는 남불(南佛), 북불(北佛)은 그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표현으로 남았을 뿐, 2024년에 파리 올림픽을 보러 불란서에 가겠다고 하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한자어로 표기하는 국가명이 사라지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보드게임 <부루마블>의 도시 중 하나로 시드니(Sydney)가 있다. 1982년 처음 발매됐을 때는 '호주(濠洲)의 항구도시'로 써 있지만 그후 개정판에서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의 항구도시'로 바뀌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언제부터인가 <그리스인 조르바>로 출간되고 있다. 희랍(希臘)은 일본식 음차로 ギリシア[기리시아]로 발음한다. 히브리인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은 <성경>의 출애굽기(出埃及記)의 埃及(애굽/애급)은 이집트(مَصْرِِ [마스르])다. 최신해설판성경(2005)부터 '출애굽기'가 '탈출기'로 바뀌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이름을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고, 오늘날의 국제관계까지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금까지 살펴본 것과는 조금 다르게, 멀리 돌아 우리나라로 들어온 이름도 있다. 홍콩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한자문화권인데도 香港이라는 글자가 낯설다. 중국 보통화 발음으로 읽으면 [Xiānggǎng 샹강]에 가깝지만 남방 광둥어에서는 [Hoenggong 횡공]으로 발음한다. 이를 들은 영국인들이 Hong Kong으로 썼고, 한국인은 샹강이나 횡공보다 홍콩이 익숙하다. 한자어와 서양어가 섞인 나라이름도 있다. 20세기 냉전시대의 한 축이었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은 그 긴 이름을 줄여서 써야 했을 것이다. Сове́т(소비에트)의 음차로 苏(소)자를 고르고, 기존 단어 聯邦(연방)의 联(연)을 붙여서 苏联[Sūlián]이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소련(蘇聯 정체자)으로 사용했다. 똑같은 방식이 쓰인 예로 도미니카연방과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다. (이름이 같을 뿐, 다른 나라다.) 영어 Dominica를 들리는 대로 적고, 각각 연방(聯邦)과 공화국(共和國)을 붙였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한글을 사용하는 북한에서는 두 나라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다. 영어권 국가인 도미니카연방(Commonwealth of Dominica)은 '도미니카'로, 스페인어권인 도미니카공화국(República Dominicana)은 '도미니까'로 쓴다. 고유명사에 된소리를 기피하는 한국어의 특징과 북한의 외래어표기법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 발을 들여놓을 당시, 주변 열강들이 사용하고 있었던 국가명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말로 적으려던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1908년 발간된 <소년(少年)>지 2호는 영국을 ‘뿌리탠’으로, 도이치를 ‘떠잇튀’로 적었다고 한다. 불과 20여 년 전, 아메리카를 '며리계'로 적었던 것에 비하면 듣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 1920년대 신문에는 푸란스도 보인다. 프랑스, 푸란스, 불란서는 다 다르다. 이들은 France와도 다르고, République française와도 다르다. 그러니, 대한민국과 코리아도 당연히 다르다.



** 참고 **

충북인뉴스 <도이치는 왜 독일인가>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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