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내일은 있다 (1)

한국인의 국어생활 18

by 집우주

국립국어원의 주요 업무 중에 '우리말 다듬기'가 있다. 급속히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외래어, 외국어와 어렵고 낯선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는 일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문화가 대중화될 무렵에 '리플(reply), 네티즌(netizen), 이메일(e-mail)'같은 용어들이 등장하자 이를 '댓글, 누리꾼, 전자우편'으로 다듬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단어들은 그 뜻과 소리를 잘 다듬어 냈기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좋은 사례를 몇 개 더 소개하겠다. '에어캡(air cap)'은 튀어나온 모양뿐 아니라 손가락으로 터뜨리는 맛까지 아주 잘 살려낸 '뽁뽁이'로, 버려지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해내는 '업사이클(upcycle)'은 '새활용'으로 다듬었다. (물건을 다시 쓰는 '재활용(recycle)'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을 원하는 때에 볼 수 있는 'VOD(브이오디 video on demand)'는 한국인에게 좀 더 친절한 이름인 '다시보기'로 서비스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아무래도 영어 단어가 많지만 예전에는 어려운 한자어, 특히 일본식 단어가 주 대상이었다. 1995년 문화체육부는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국민의 의식과 언어습관에서 일제의 잔재를 지우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언어생활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약 700개의 일본어 투 생활용어를 순화하기로 한다. 이때 각각 둔치, 갓길, 뇌물로 다듬어진 고수부지(高水敷地), 노견(路肩), 와이로(わいろ)가 요즘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이렇게 제안된 순화어가 전부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는 않는다. 700개의 단어를 쭉 훑어봐도 쓰이지 않는 순화어가 훨씬 많다. 신조어가 많아진 요즘은 성공(?) 확률이 더 낮아 보인다. '브런치'를 '어울참'으로 다듬은 것에 공감하는가? 만약 어울참으로 대체가 되었더라도 이 블로그 서비스의 이름이 어울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화어는 강제가 아니고, 사용을 권고할 뿐이다. 결국 제안된 순화어의 생존(?) 여부는 언어 사용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 어느 단어가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쓰이지 않는 순화어를 보면 사람들이 왜 사용하지 않는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찾은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말로만 하려다보니 너무 억지스럽거나, 발음이 입에 붙지 않거나, 글자가 많아지거나, 또 기존 단어가 너무 익숙해서 굳이 대체어가 필요없거나, 전문 영역에서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나 등등이다. 이 이유들은 훨씬 더 많은 경우에 문화체육부의 목적인 '민족 주체성 확립과 국민 언어생활 개선'보다 앞선다. 수치와 성과로만 따진다면 이 사업은 접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단어 하나라도 다듬어서 쓰려는 노력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어가는 일이기에 꾸준히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에는 단어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자. 일부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물고기'를 '물살이'로 부르자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물고기가 인간이 동물을 죽여서 얻는 '고기'를 살아있는 생명에 붙여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물고기라는 단어에 일차적으로 생명을 먹을 것으로만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와 관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또 어느 단체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같은 생명이므로, 동물을 셀 때도 '마리' 대신에 '명'을 쓰자고 제안한다. 한자로는 명(名)이 아닌 목숨을 뜻하는 명(命)으로 통일하면 종(種)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은 생명으로 부를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나는 '물고기'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먹는 것을 떠올리게 하거나, '마리'라는 단위가 생명의 무게를 다르게 잰다고 보지 않는다. 연못의 잉어를 보면서 "물고기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옆에서 "맛있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농담으로 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진심인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리고 앞선 주제에서도 살펴봤듯이 한국인은 생선을 먹지, '고기'로 부르면서도 절대로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실제로 먹는 것도 고기가 아닌 '살'이다. '물고기'에서 '고기'만 떼어내서 '먹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언제나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나 그 뜻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물살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한국인의 생선 소비량이 줄어들까? '마리'가 아닌 '명'으로 세면 사람들이 고기를 덜 먹고 동물을 해치는 행위를 그만두게 될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선 인간이 현재 '명'으로 세고 있는 사람, 즉 서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명제가 참으로 성립해야 한다. 잠깐, 뉴스를 틀어보자. 그치지 않는 전쟁, 살인, 폭력, ..., 삶이라는 글자조차 버거운 사람들.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명'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가? 나는 이름을 바꾸자는 주장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주장해야 할 정도로 인간이 동물들을 얼마나 함부로 다루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생명을 온전히 담아내는 도구가 아니라고 본다.


유튜브채널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서 대치동 학원가의 전설적인 강사였던 손주은 대표가 나온 편을 봤다. 백만 불짜리 공부 노하우로 소개된 강의의 핵심은 "공부는 개념이고, 개념은 용어에 녹아있다."였다. 그는 '사회화'라는 단어를 '사회+화'로, 영어의 '관계대명사'를 '접속사+대명사'로 풀어내며 학생들에게 용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깨우친다. 마지막 수학시간에서는 적분(積分)을 한 글자씩 '쌓다, 나누다'로 풀어냈다.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인 가로×세로를 '나눈 것을 쌓는다'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적분은 사실은 분적(分積)이다'고 정의한다. 그는 분적으로 썼다면 학생들이 적분을 더 잘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적분이 분적이 된다한들 학생들의 수학점수가 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수학점수가 낮았던 건 적분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면 늪의 바닥까지 빠져버린 수포자(살아남기 위한 수영마저 포기한 사람)들을 얼마 건져낼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겨우 인테그랄 하나를 그려놓고서 또 아무 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 (문송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글자를 뒤집으면 뜻이 어색해질 수 있다. 적분(積分)은 한자어의 술목(서술어+목적어) 구조다. '나눈 것을 쌓다'라는 설명 그대로 '分(나눈 것)'이 목적어가 되면 서술어인 積(쌓다)이 앞에 와야 한다. 분적(分積)이라고 하면 두 행위가 아무 관계없는 '나누고 쌓다'로 해석될 수 있다. (참고로 미분(微分)은 '작게/잘게 나눈다'는 뜻으로 적분과 한자어 구조가 다르다.) 나는 무척 기뻤다. 틀렸다는 사실을 집어내서? 아니, 뒤늦게나마 적분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서다. 글자를 뒤집었어야 한다는 말은 용어의 이해를 강조하려다 보니 나온 실수라고 넘기면 그만인 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이런 개념을 알려 줄 수 있는 선생이 있는지 없는지, 또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그런 스승인지 아닌지일 것이다.


지금껏 단어를 다듬고, 바꾸고, 뒤집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나는 이들이 한 제안의 바탕에 '언어가 사고(思考)를 지배한다'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인간의 사고에서 생각과 행동이 일어나니, 곧 '언어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도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한국인은 여전히 엥꼬(えんこ)난 기름을 만땅(滿タン=滿tank)으로 채우고 있고, 한국의 주방에는 요리법과 요리사가 쫓겨나고 레시피(recipe)와 쉐프(chef)가 들어온 지 오래다. 1992년 가수 배일호가 부른 <신토불이>의 '순이는 어디 가고 미쓰리만 있느냐'던, 우리 것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 대한 탄식은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도 그 울림이 크다. 정말 이렇게 우리말을 쓰지 않으면 언젠가 한국인은 민족의 주체성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물고기, 마리라고 말하면 한국인은 생명을 식용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공장식 축산/수산 산업의 폐해에 대해 계속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분적이 아닌 적분으로 가르치는 방법으로 내 사고를 지배해서 수학 점수를 낮춘 수학선생님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해야 할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언어는 내 사고를 지배하고 있고, 내 생각과 행동은 언어에 종속되어 있다. 정말 그런가? 앞선 대답을 다시 한번 반복해 보면, 나도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여기에서 '어느 정도'는 '일부'다. 언어는 인간의 활동이기에 당연히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주지만, 나는 그것이 결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렇더라도 그 정도는 다 다를 것이다. 특히 단어 하나만 다룰 때, 나는 그 영향을 아주 적게 보는 편이다. 만약 언어가, 그 언어에 있는 어느 단어 하나가 인간의 사고를 강하게 지배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특정 단어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이다.


한국어의 고유어, 즉 순우리말에는 '내일'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어제-오늘-내일' 중에서 유일하게 내일(來日)만 한자어다. 누가 언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을 가지고 "한국인은 내일이 없는 민족으로 희망이 없고, 과거에 집착하는 패배의식이 짙은 사람들이다"는 말이 꽤 오래 전부터 떠돌았다. 분명히 기분은 나쁜데, 단어가 없다고 하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명제가 참이고 절대적이라면, 이 말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단어를 다듬고, 바꾸고, 뒤집자는 제안을 부정하고 반대하며 까칠하게 굴었던 것이니, 모쪼록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 참고 **

한겨레 <갓길과 노견>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03

경향신문 ‘한 명’의 동물을 생각한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8300300095#c2b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초특급 섭외 손주은 35년 백만불짜리 공부 노하우>

https://www.youtube.com/watch?v=ttwp80Gr6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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