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5)

한국인의 국어생활 17

by 집우주

만약 누가 "대한민국과 코리아가 같다"고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덧붙여 대한민국, 한국, 심지어 한까지 다 다르다고 할 것이다. 이번 주제에서 계속 강조해 왔듯이 대한민국, 한국, 한, 코리아는 모두 우리나라를 가리킬 뿐, 그 이름이 지어진 역사와 유래는 물론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까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어 고유명사를 영어로 바꾸어 쓸 때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뜻으로 또 소리로, 제각각 번역하는 것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대한; 대한극장(Daehan Multiplex Cinema), 대한항공(Korean Air)

* 한국; 한국수자원공사(K-Water), 한국일보(Hankook Ilbo / The Korea Times)

* 한; 한겨레(Hankyoreh), 한화(Hanwha), 유한양행(Yuhan Corporation)

* 고려; 고려대학교(Korea University), 고려인(Koryo-saram), 고려화학(Coryo Chemicals)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로마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외국인이라면 영문에 써 있는 Korea를 보고 대한민국과 관련있는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대한, 한국, 한)'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모른다면 Daehan, Hankook, Han이 Korea인 것을 알 수 없다. Korea로 번역되는 이름에는 고려도 있다. 보통 국가 기관에서 '대한/한국/고려'를 Korea로 표기하는데 나라이름을 통해 얻게 되는 홍보 효과, 이미지 제고 등의 목적에서 쓰기도 한다. 국내 신문은 로마자 표기인 Hankook으로 쓰지만 영문판에는 Korea로 쓰는 한국일보가 좋은 예가 되겠다.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외국인은 왜 Korea University가 '한국대학교'가 아닌 고려대학교인지 궁금할 수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국 역사와 Korea의 어원에 대해서, 또 학교 이름을 고려로 지은 이유를 찾아 잘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회사명에서는 자칫 Korea가 국영(國營)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요즘은 기업에서 국제적 망신 수준의 사고를 내면, 국가명을 사명에 포함해서 짓지 못하게 해 달라는 댓글이나 국민청원도 보인다. 이름을 쓰는 데에는 당연히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낱자인 '한'은 홀로 쓰지 않고 앞뒤에 글자를 붙여서 이름을 짓는데, 내가 찾아본 바로는 전부 소리대로 Han으로 썼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보통 국가명의 덕을 보기 위해 Korea를 쓰는데 한화는 오히려 이를 피한 사례다. 한화는 '한국화약'의 줄임말로 영문명을 정할 당시 Korea Explosives Group으로 하려다가 한국의 테러단체로 오해될까 봐 지금의 표기로 정했다는 썰이 있다. 한자문화권인 나라도 있으니 Hankook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만약 사명이 '대화(대한화약)'여서 Daehan Explosives Group로 썼다면 괜찮았을지 모른다. 고려인의 영어 표기도 러시아어 표기인 Корё-сарам[고려사람]을 소리대로 적은 Koryo다. 나는 처음에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Korea가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남북 어느 쪽의 Korea도 아닌 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했기에 고려(Корё)를 채택했다고 한다. 때로 이름은 이렇게 삶이 처한 상황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함부로 지을 수 없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코리아는 누군가에게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삶 안에서, 통시적 측면에서 경험되기도 한다. 응답하라! 1988 서울 하계올림픽 개막식, 코리아나(Koreana)가 부르는 공식 주제가 '손에 손 잡고'가 잠실 주경기장에 울려퍼진다. 이 노래는 올림픽 기간 중 유럽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여러 대단한 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코리아'가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와 가수의 이름으로 국외로 알려진 반면, 국내에서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린 노래에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1983년 발표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사실 검열 때문에 건전가요로 수록된 곡이었지만, 희망찬 가사와 긍정의 노랫말 때문에 인기를 얻으며 1984 LA올림픽 개선(凱旋) 방송 등 국내 주요 행사에서 사용되었고,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국민 응원가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마련된 여러 특집방송에서도 정수라는 당대 최고 가수였던 김완선, 나미, 이지연, 전영록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아! 아! 대한민국”을 불렀다. (훗날 정수라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한강에 유람선이 없었기 때문에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라는 등의 노랫말이 개인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았다고 했다. 노래 가사 때문은 아니겠지만 1986년부터 한강유람선 운항이 시작되었고, 유람선은 올림픽 개막식 식전공연인 <강상제 The han River Boat Parade> 영상에도 등장한다. -문득,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세계화를 외치고, 외국에 나가서 "I'm from Korea"를 말해도 한국인에게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다. 한국인의 입에 '코리아'가 자연스럽게 붙기 시작한 건 새 천년을 맞이한 후에 개최한 2002년 월드컵 때였다. 안방에서 열린 축구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은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는데 이때 불렀던 응원가 중에서 가장 많이 들린 노래가 윤도현밴드의 <오 필승 코리아>다. 가사가 '오~ 필승 코리아'가 전부였기에 국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었다. 광장에 모인 수만의 군중과 붉은 물결이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전해졌고, 덩달아 이 노래도 외국인의 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필승 코리아'가 그들에게는 ‘Oh, Peace Korea'로 들린다며, 한국인들이 상대국을 비하, 야유하는 대신 평화를 노래한다는 등 뜬금없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당황스럽지만, 당시 한국인에게 그것이 억지스럽다는 논리적 사고는 없었다. 코리아는 필승이었고, 평화였다. 북한에서도 대한민국의 성적을 역사적인 쾌거로 소개했을 정도이니, 적어도 그때만큼은 북한 정권도 평화롭게 월드컵을 즐기며 '코리아'의 덕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월드컵 폐막을 앞두고 그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다.) 이 시간을 살았던, 이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과 코리아에서 시대의 변천을 보고, 두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이름을 글자로 써 보자. 받침이 있는 글자가 많은 대한민국은 네모 칸을 꽉 채운다. ㄱ(기역) 받침으로 끝나서 소리는 닫혀 있고 단단하게 들린다. 반면 코리아는 받침이 하나도 없다. 한국어 자음에서 유일하게 혀를 굴리는 유음(流音)인 ㄹ(리을)이 있어서 부드럽다. 응원가나 구호에서 두 이름이 어떻게 쓰이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은 거의 짧고 굵게 외치는 구호에 쓰이지, 화려한 멜로디 라인 위에 얹히면 좀 어색하다. 반면 코리아는 둘 다 잘 어울린다. 마지막 글자가 받침이 없는 모음으로 소리가 열려 있어서 끝음의 비브라토(vibrato)도 괜찮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스타카토(staccato)로, 코리아는 레가토(legato)가 좋겠다.


<아!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 두 곡의 제목에 있는 감탄사를 주목해 보자. 실제 노래로 불러보면 정수라의 "아! 아! 대한민국!"은 힘차고 당찬 느낌을 주고, 윤도현의 "오~~~ 필승 코리아~"의 떨림은 부드럽게 울려퍼져 나간다. 감탄사 '아'와 '오'는 각각 나라이름을 대표하는 글자인 '한'의 모음 ㅏ와 '코'의 모음 ㅗ로 그 소리가 조응한다. ‘아, 오’는 한국어에서 밝은 어감의 모음조화(母音調和)를 이루는 글자다. 말장난을 쳐서 '모음(모으다) + 조화(어울리다)'로 풀어보면, '아-오'의 모음조화는 곧, ‘대한민국과 코리아를 모은 어울림’이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대한민국과 코리아는 분명히 다르지만, 닿아있다. 로마자로 DaehanminkuKorea로 붙여 쓸 수도 있고, '대한민국코리아'로 써도 ㄱ받침과 ㅋ이 조음점이 같은 연구개음으로 발음이 연결된다. 끊김이나 걸림 없이 이어지는 이 이름처럼 대한민국의 단단함과 코리아의 부드러움이 태극의 음양같이 성쇠하며 한반도의 시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을 아우르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나는 이 역동에서 온갖 것을 모아서 새로운 맛을 내는 특유의 비빔밥 문화를 보고, 그것을 비비고 섞어내는 변화무쌍한 움직임인 다이내믹(Dynamic)에 매번 놀라움을 느낀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필승은 피스 코리아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임에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코리아의 평화를 확인한 세계인들의 눈길과 발길은 대한민국을 향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대한민국이 자랑이라면, 코리아는 사랑이다.


너무 국뽕이라는 걸 알지만, 한국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름 하나를 더 소개하고 이번 주제를 마치겠다. 우리나라를 대한민국도, 코리아도 아닌 솔롱고스(Солонгос)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몽골(Монгол Улс)인데 이 이름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고려를 부르던 말인 '고올리/꾸리/가올리'와 함께 쓰이던 Солонго(솔롱고), Солхо(솔호)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현대 사전에서 Солонго(솔롱고)를 찾아보면 족제비, 무지개가 나온다. 그래서 족제비 사냥을 해서 그 모피를 입고 다녔던 북방민족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고, 무지개가 뜨는 동쪽 나라 사람들이라고 아름답게 꾸며진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유래야 어떻든간에, 나는 우리나라가 새롭게 들린다. 요즘 뉴스를 보면 도시의 황사가 무척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몽골'하면 넓게 펼쳐진 초원과 드높은 하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몽골은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푸르른 나라구나. 그런 나라에서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니, 솔롱고스는 파랑으로 하면 좋겠다.



** 참고 **

<프레시안> 한국과 몽골, 그 천년의 비밀을 찾아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3599#0DKU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