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내일은 있다 (2)

한국인의 국어생활 19

by 집우주

이번 주제에 대해 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TED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행동 경제학자(behavioral economist) 키쓰 첸(Keith Chen)의 '언어가 저축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Could your language affect your ability to save money?)'라는 강연이었다. 비슷한 경제와 체제를 갖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왜 완전히 다른 저축 행태를 보이는지, 경제학에서 오래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언어 구조에서 찾는다. 그는 산업이 부유한 편이고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OECD 가입국가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시간을 다루는 문법인 시제(時制)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나눈다.


㉠ 미래 시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

㉡ 문법상 현재와 미래에 차이가 없는 언어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축율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 글에 다 옮길 수는 없으니 내용이 궁금하다면 하단에 참고 링크를 통해 시청하길 바란다.) ㉡ 사용자들은 ㉠ 사용자보다 저축을 할 가능성이 무려 30%나 높았고, 그 누적효과로 은퇴할 시기에 25%나 더 많은 돈을 저축으로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축 뿐만 아니라 흡연, 비만, 성관계 시 콘돔 사용 같은 '현재의 쾌락'을 얼마나 즐기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서도 ㉡ 사용자들은 금욕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아가기 전에, 영상을 보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나는 이번 주제에서 '한국어의 고유어, 즉 순우리말에 내일이라는 단어가 없으니 한국인은 내일이 없는 민족이다'는 뭐라고 응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말에 언어적 측면에서 나름대로 반박을 하려고 하고 있다. 그 근거를 찾아서 하나하나 내어놓기에 앞서, 기분이 나빠진 것에 대해 먼저 한 방 먹이고 싶었다고 할까? 누군가 처음에 이 말을 만들었을 것이고, 말이 오래도록 떠도는 것을 보면 다른 누가 이 말을 옮기면서 퍼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중히, 아래의 나라 사람들에게 똑같은 논리로 이렇게 말해 줄 것을 부탁한다. "당신 나라의 언어에는 미래가 없으니 당신에게는 미래가 없다." 아래는 ㉡에 해당하는 '미래 시제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이다.


* 네덜란드, 노르웨이, 독일, 덴마크,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일본, 핀란드


휴~ 속이 좀 시원해졌다. (확실히 어떤 사실보다도 눈앞의 현실이 더 강력한 면이 있다.) 괜한 노파심에, 여러분에게도 부탁할 것이 있다. 행여라도, 위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미래가 통째로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국인은 겨우 내일 하나만 없을 뿐이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 "미래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나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감정이 지나쳐서 자기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다시, 강연으로 돌아가자. 미래를 분절된 시간으로 보느냐 현재와 이어진 시간으로 보느냐의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강화한다. 그로 인해 저축률 등 여러 지표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마 그도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에 꽤 강하게 동의할 것이라 생각된다. 전문가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연구이니 나같은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은 이렇게 말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인간의 모든 언어활동에는 통제할 수 없는 변인이 더 많고, 수치화할 수 없는 데이터 밖의 영역이 훨씬 넓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때로 특정 순간에 절대적으로 언어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단어 하나, 문법 하나가 사람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만든다'고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우연히 의미있게 나타난 것이지, 요인이 아니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견해다. (물론 인공지능, 양자역학, 빅데이터 등이 활용될 앞으로의 디지털 세상의 언어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앞선 문장에 '아직은'을 붙인 이유다.)


어쨌든, 흥미로운 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아무리 흥미로워도 일로 하면 흥미가 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꾸준히 연구해 주시기를 응원한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그가 제시했던 표를 보면, '미래 시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22개국'은 전반적으로 '문법상 현재와 미래의 차이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13개국'보다 저축률이 낮았다. 눈에 띄는 국가는 당연히, 단연 우리나라다. 미래 시제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분류된 대한민국은 저축률이 약 34%로, 전체 35개국에서도 룩셈부르크(42%)에 이어 두 번째였다. 미래를 현재와 단절된 것으로 생각하고, 누군가에게는 내일이 없는 민족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인이 훗날을 위해 이렇게 저축을 많이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가 미래 시제를 기준으로 국가를 분류했으니, 한국어의 미래 시제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어미들을 보면서 하나씩 알아보자.


① -겠-, -(으)ㄹ 것이다, -(으)려고 해요, -(으)ㄹ게요, -(으)ㄹ래요, -리-, ...

② -아/어요, -아/어, ...

③ -았/었, ...


①은 미래 시제에서 사용되는 어미(語尾)다.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말할 때도 쓰이고, 말하는 사람의 의지나 추측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래 시제는 생각보다 풍부해서 한국인은 상황에 맞게 골라 써야 한다. 말과 글에서 쓰임이 다르고, 그 끝에서 느낌이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②의 어미는 현재에 쓰인다. 그런데 "내일 비 와?", "이따가 전화해요.", "다음 달에 출장 가."에서 보듯 미래의 일을 말할 때도 아주 자연스럽다. 한국어는 미래 시제가 있지만 현재와 미래의 차이가 없는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동작의 완료나 과거를 뜻하는 ③의 '-았/었'으로도 미래의 일을 말할 수 있다. "너 이제 죽었다", "우린 망했다"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정사실화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한국어는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미래를 시제로 구분하지만 현재나 과거 시제가 미래에 가서 놓이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첸의 분류대로 한국어를 '미래 시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에 놓는 게 맞을까? 내가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연구가 잘못됐다고 꼬집으려는 것도 아니고, 언어의 다른 측면에서 높은 저축률의 요인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한국어만큼 외국어를 잘 알지 못하기에, 다른 언어도 사람들의 실제 언어생활에서 이렇게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의문이 들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 보자.


{한국어} 알겠습니다.

{일본어} わかりました.

{영어} I see.


한국어에서 대답으로 쓰이는 "알겠습니다"는 분명히 지금(또는 방금) 알았는데도 미래 시제인 '-겠'을 사용한다. 이 말은 '그것을 지금 알았고, 앞으로도 알고 있겠다'는 뜻인데 '지금 알았다'보다 '앞으로 알고 있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은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わかりました[와카리마시따]"로 대답하면 된다. 그런데 그대로 한국어로 직역하면 ました[마시따]가 과거 시제 어미여서 "알았습니다"로 뉘앙스가 좀 달라진다. 영어로 번역이 가능한 표현 중에는 I see[아이 씨]가 있는데 이때 동사 see는 현재형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가지고 한국인은 미래지향적, 일본인은 과거지향적,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은 현재지향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동의할 것인가? 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이 지금 맞장구를 치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 참고 **

TED <Could your language affect your ability to save money?>

https://www.ted.com/talks/keith_chen_could_your_language_affect_your_ability_to_save_money/up-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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