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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Dec 08. 2021

닮은꼴

사춘기 아들이 나에게 건넨 최고의 칭찬

큰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1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열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15층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반갑게 말을 건넸다.


“어머 큰 아들이죠? 엄청 많이 컸네. 지금 몇 학년이에요?”

“중학교 1학년이에요. 많이 컸죠?”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아주머니의 인사와 질문이 이어졌다. 아주머니의 친절한 질문공세에 사춘기 아들 녀석도 상냥하고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차에 타자마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랑 친한 분이야?”

“우리 라인 이웃이라서 만나면 반갑게 안부 주고받는 사이? 처음에는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좀 무뚝뚝한 편이셨어.”

“그런데 왜 이렇게 반가워하시고 친절하셔?”


몇 해 전 언젠가 아주머니가 몸이 좋지 않았던 건지, 그래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지 머리가 다 빠진 채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만 나눴다.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마주친 아주머니는 모자를 안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거의 삭발에 가까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치료가 끝나고 새롭게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우와.. 헤어스타일 너무 예쁘게 잘 어울리세요.”

“에구 예쁘긴요. 이제 막 기르기 시작해서.. 좀 부끄러운데.”

“아니에요. 키도 크고 예쁘시고.. 모델 같으신 걸요. 짧은 머리 너무 멋지고 예쁘세요.”


난 원래 빈말은 잘하지 못한다. 다만 칭찬에는 인색하지 않다. 느낀 바를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주머니는 내 칭찬 한마디가 마음에 닿았나 보다. 그 이후로 나와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이웃 아주머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착 해갈 때쯤에 화제가 아이 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이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서둘러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네가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 우리 건이 속도 깊고 유머도 있고.. 이렇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


평소 같으면 피식 웃고 말거나, 별 말이 없었을 아이가 대답했다.


“내가 엄마 닮은꼴이잖아. 엄마가 아주머니한테 그랬던 거나 사람들한테 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뭐.”


사춘기 아이에게 칭찬을 건넸더니,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감동받은 마음이 두근거렸다. 

큰 아이와 난 한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를 가장 사랑했지만, 미워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을 사랑으로 착각해, 그 착각한 사랑을 쏟아부었고, 아이가 나를 미워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사랑하는데 미워하는 어처구니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던 우리 모자가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칭찬을 주고받았으니, 가슴이 두근댈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던 중에 남편과 갑작스레 사별하게 되었다. 사별 후 아파하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하늘 아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렵게 얻은 그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욕심이 내 안에 들어오기에, 매일 비워내려 노력 중이다.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노력하니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욕심으로 무겁게 짓눌렸던 마음이 말이다. 가벼워진 마음만큼 아이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물론 싸우기도 하고 서로가 짜증 나는 순간도 많지만, 아이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날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는 비워낸 욕심만큼 마음에 자리 잡은 이 행복을 붙잡고 있다.


오늘도 난 두 아이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의 행복을 만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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