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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Jan 26. 2022

드라마 봄밤

결국, 사랑

이틀 만에 정주행을 마친 드라마 봄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별 기대 없이 밤 열 시에 시작했던 이 드라마는 호흡이 빠른 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몰입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있던 터라 마음속으로는 자야 한다고 수없이 외쳤지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핸드폰 작은 화면으로 보느라 눈을 몇 번이나 끔벅여야 했고, 그래서였는지 눈이 침침해진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안고서도 참아가며 16화를 다 볼 뻔했지만, 다행히도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지는 바람에 몇 시 인지도 모를 새벽에 잠들었다.


이미지 출처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싱글대디인 남자 유지호와 미혼인 여자 이정인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이 드라마가 나를 이토록 몰입시켰던 이유로는 우선 로맨스라는 장르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이야기는 진부하고 때로는 뻔하지만, 누구나 겪었을 법하면서도 실제 상황이었다면 상당히 오글거렸을 법한 전개에 대리만족이 되기도 하며, 마음속으로는 꾸준히 꿈꿔왔던 것들이 펼쳐지기에,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속에 풍덩, 나를 던져 넣는다.


약사인 유지호의 약국에서 이정인이 약을 사면서부터 시작되는 둘의 인연은, 시작부터 사랑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갑자기 저렇게 애가 타.'라는 생각을 하다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데 어떤 이유나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첫눈에 반해 보자마자 바로 사랑에 빠진 적이 많아 스스로를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라 칭했던 내가 사랑에 빠져 본 지 오래돼서 잠시 깜박했나 보다.

드라마에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유지호와 이정인은 짧았던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애인이 있는 여자 이정인과 결혼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있는 남자 유지호는 처음부터 서로의 옆에 있는 존재를 밝혔다. 시작할 수 없는 관계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사랑이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싱글대디라는 유지호의 캐릭터에 공감가고 동질감이 느껴진 것이 내가 이 드라마에 빠져버린 두 번째 이유이다. 20대에 사랑했다가 이별한 여자가 임신 8개월 만에 나타났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잠적해버려 아빠이지만 결혼한 적은 없는 그러니까 부인은 없는 아빠 유지호는 남편은 없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내 처지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미지 출처. 드라마 봄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자꾸만 지호를 찾아가서 친구로라도 지내자는 정인에게 지호는 자신이 정인을 단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지호: 도와줘요 나 좀. 진심이야. 정인 씨가 도와줘야 돼.
정인: 못 하겠다면 어쩔 건데?
지호: 억지로라도 해요.
정인: 싫어.
지호: 해! 정인씨가 너무, 더 아까워.

아이가 있다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시작하기도 전에 정인에 비해 부족한 자신이 마음을 접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약자가 된 지호였다. 자신을 향한 이끌림을 참지 못하고 찾아와 우는 정인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억누르고 참아야 할 만큼, 겨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면서도 그로 인해 자신은 어떤 꼴을 당하고 상처받아도 상관없다고 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철저한 약자였다.

나는 무슨 꼴을 당해도 상관없지만, 은우는 안돼. 내 아이한테 상처 주는 건 어떤 누구도 용서 못해.

사랑 앞에서는 한 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지만,  과거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지호가 버티고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을 만큼 단단한 존재로 만든 것 역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상처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지호의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았다.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상처가 되어 버린 과거의 일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이렇게 씩씩하게, 종종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두 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남편의 부재라는 커다란 결핍이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다 느끼며 당당하게 살아갈 만큼의 힘을 주는 건 나의 두 아들이다. 남편의 부재는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지만, 두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실감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아프다. 자신은 상처받아도 되지만, 아이 상처 주는 건 견디기 힘든 지호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몇 달 전 출간된 나의 에세이에 나는 남녀 간의 사랑에는 욕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최근 들어 그 부분은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훗날 언젠가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면, 나 역시 지호처럼 약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시작은 어려웠지만, 위기도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그들 곁에 있는 따뜻한 가족 덕분에 결국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데,  따뜻한 정인 엄마의 캐릭터도 내가  드라마를 애정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정인이, 엄마에게 상처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미안하다고 했을 , 정인의 엄마는 자식들한테 다른  바라지 않는다고, 그저 인생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아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욕심내지 않으리라 매일 다짐하고 있는 나에게, 지금  순간에도  다짐을 잊지 말라고 들려주는 대사 같았다.

소신껏만 살면 엄마는 실망 안 해. 나는 너희들한테 바라는 거 없어.
자기 인생 포기 안 하는 거, 그거 하나면 돼.

아들이 가여워 울고 있는 지호 엄마에게 다가가 손잡아주며 위로를 건넬 만큼 따뜻한 정인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속상하지만, 결국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게 용서되고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 또래 주인공의 로맨스에 몰입했다가, 엄마로서의 마음으로 고민해봤다가, 드라마에 몰입했다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바빴다.


남녀 간의 사랑이던, 가족 간의 사랑이던 결국 살아갈 힘을 주는 건 사랑이었다.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드라마 봄밤에 빠져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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