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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Jan 29. 2022

구정 전, 떡국 한 그릇

아이가 끓여준 첫 떡국

매년 구정날이면 아침은 시댁에서, 점심은 친정에서 떡국을  먹기에 내가 설 당일에 떡국을 끓일 일은 드물었다. 올해에도 구정 당일 날에는 시댁에 가서 어머님이 끓여주신 떡국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다.

지난  1월 1일 신정에 아이들에게 떡국을 끓여주고 싶어서  떡국떡을 준비해놨었는데,  글쎄 당일에 떡국에 대한 생각을 홀랑 까먹고 말았다. 온종일 알 수 없는 허전함으로 혼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민하기는 했지만, 그 허전함의 원인이 떡국에 있었음을 밤 열두 시가 다 돼서야 깨닫고는 황당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지만, 그저 웃고 말았다.


1월 1일에 떡국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떡국떡들은 결국 따뜻한 떡국으로 풍덩 빠지지 못한 채 여전히 냉동칸 속에서 꽁꽁 얼려있는 중이었다. 냉동칸 문을 열 때마다 그 안에 꽉 들어차 있는 다른 식재료들 사이에 낀 채, 도대체 자기들은 언제 떡국으로 들어갈 수 있냐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얘들아 곧 설인데 떡국 끓여 먹을까?"

"설 날도 아닌데 벌써?"

"응 당일에는 할머니 댁에서 먹을 건데.. 우리끼리 미리 먹을까 싶어서."


떡국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큰 아이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큰 아이의 반응에 오늘 아침엔 또 뭘 해 먹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달려와서 말했다.


"엄마, 내가 끓여봐도 돼?"

"오, 그럴까?"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응. 라면 끓이는 것만큼 간단해."


이제 6학년이 될 테니 제발 스스로 요리 좀 하게 해달라고 조르던 둘째 아이가 이 때다 싶었던 모양이다.

'최대한 간단하고 맛있게'가 평소 내 요리 철학이기에 (사실은 요리에 흥미나 관심이 없는 걸로) 실제로 내가 끓이는 떡국은 라면 끓이는 것만큼 간단한 것이었다.


"자, 우선 재료 준비. 떡국떡, 만두, 파, 양파, 육수용 멸치, 다진 마늘, 국간장, 후추, 소금."

"끝이야?"

"응."


급할  하나도 없는데 다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혼자서 우왕좌왕 재료를 찾아다니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해."

"너무 재밌어."


어쩔 수 없이, 매일 끼니를 때우기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를 강조하며 "그까짓 거 그냥 대충" 해왔던 요리였다. 요리라기보다는 한 끼를 때울 음식 만들기라고 해야 맞겠다. 내가 '음식 만들기'를 할 때마다 유심히 지켜보며 평생소원처럼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드디어 그 음식 만들기를 하게 되자 재료 준비만으로도 들떠 있던 것이다.


신이 난 아이가 몇 분 동안 바쁘게 움직이더니 재료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자, 그러면 이제 떡국에 들어갈 식재료들은 씻어야겠지. 여기에 다 때려 넣어. 그리고 물로 헹궈."

"한꺼번에?"

"응.. 엄마는 빨리 해치우려고 그냥 대충 한꺼번에 이렇게 해."

"아.."


한꺼번에 물로 헹궈진 떡국떡, 파, 양파 그리고 만두가 한껏 깨끗해진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다.


"그 다음엔 자, 여기 냄비에 이만큼 물을 떠 오세요."

"여기 떠왔어."

"자 그다음에는 물을 끓이고, 동시에 이 멸치와 아까 씻어놓은 재료들을 다 때려 넣어."

"다?"

"응."

"뭘 자꾸만 다 때려 넣으래."

"엄마만의 스타일이야."


자꾸만 다 때려 넣으라는 나의 말에 당황해하면서도,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요리 앞에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나의 말대로 했다.


"이제 국간장을 한 두 스푼 넣고요. 그리고 다진 마늘은 손톱만큼. 그 다음에 소금 한 두 꼬집 그리고 후추 두 번 정도 탁탁 넣어줘. 그리고 조금 끓이면 끝."

"끝? 이게 끝?"

"어. 진짜 끝."

"뭐야 진짜 간단하잖아."

"응. 엄마 스타일 알지?"


국간장 두 스푼을 넣으면서도, 다진 마늘을 손톱만큼 넣으면서도, 소금 후추를 넣으면서도 그것을 떡국에 넣는 손이 떨릴 만큼 긴장하고 집중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떡국이 완성되었다. 재료 준비부터 떡국이 완성되기까지 15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완성."


완성됐다는 말에 관심 없어 보이던 큰 아이가 나와 식탁에 앉았다. 한 번 맛보라며 떡국을 퍼서 한 그릇 식탁에 올려줬다.


"어때?"

"오 맛있어."


둘째 아이도 처음으로 스스로 끓인 떡국이 맛있다며 눈을 찡긋 웃어 보였다.


아이가 십오 분 만에 초간단하게 끓여준 떡국 덕분에 특별할 것은 없지만, 간만에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각자 핸드폰만 들여다 보기 바빴던 평소 식사와 다르게 말이다. 가족이 함께 무언가 한다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점점 특별한 일이 되는 것 같다.


둘째 아이는 첫 요리를 생각보다 쉽게 해낼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다. 사춘기인 큰 녀석은 함께 무언가를 행할 만큼의 의욕까지는 없음에도, 엄마와 동생이 함께 요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뭔지 모를 평안함을 느꼈을 것 같다. '화목한 우리 가족'의 느낌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엄마로서의 나의 바람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구정 전, 아이기 끓여준 떡국 한 그릇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비쥬얼은 좀 그렇지만, 맛은 괜찮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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