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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Jan 25. 2022

꼰대 엄마

친구 같은 엄마

"엄마는 친구 같은 느낌이야."


 아이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인 나를 친구처럼 느낀다는  말을 들을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지만, 좋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크기아이에게 웃어 보인다. 친구 같다는 말이 좋기도 하지만, 엄마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친구만큼 편하다는 것으로 들려서 좋다가도,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나 싶어 엄마로서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로서 권위가 무얼까 하는 구체적인 생각으로까지 도달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엄마가 친구 같은 느낌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친구 같다는 아이의 말에 이번에는  말꼬리를 잡아봤다.


"엄마는 답답한 꼰대 같지 않아. 말도 잘 통하고 세대 차이도 안 느껴져."

"오. 그럼 좋은 건가?"

"응."

"그런데 너 엄마 잔소리 극혐 하잖아."

"엄마가 꼰대는 아니지만, 잔소리는 많은 편이잖아."


아이가 말한 '친구 같은 엄마'는 '꼰대 같지 않은 엄마'를 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좋았다. 춘기 소년의 말꼬리를 붙잡아  물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가 친구 같은, 그러니까 꼰대 같지 않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나의 변화에 있었다.


꼰대
[명사]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꼰대스럽다
[형용사]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데가 있다.


몇 년 전까지 나는 꼰대스러운 엄마였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꽃길만 걷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꽃길은 엄마인 내가 만들어주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아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에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길이 꽃길이라 믿으며, 그 길을 아이에게 강요했다. 나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그 생각과 기준으로 정한 길을 걷도록 했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온실 속에서 자라 따뜻하고 포근한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서 그 온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고, 온실이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일부임을 깨닫고 있었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온실을 벗어나는 것이 불안하고 겁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정한 길이 꽃길이라 믿고 살아왔던 나는, 배운 대로 아이에게 꽃길을 만들어 주려 했다. 아이가 스스로 찾아 내딛는 발걸음을 믿어주고 응원해주지 못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자유영혼인 나의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내가 만들어준 길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공교육이 맞지 않으니 유학이나 대안학교를 고려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보내던 학원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속상해서 혼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아이를 혼냈다가, 달래보기도 했다가 나중에는 애원까지 했다.


"제발.. 엄마 말 좀 들어줘.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게."


'나는 안 그랬는데, 나는 부모님 말씀 잘 들었는데, 도대체 왜 내 아이는 둘 다 이렇게 내 말을 안 듣는 걸까.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까..'


내가 살아온 대로, 내가 걸어온 길대로, 내 기준대로 되지 않는 두 아들이 밉고 힘들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두 아이를 미워하게 된 나 스스로까지 미워해야 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안된 어린이라서 구체적인 감정은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억지로 등 떠미는 길이 답답하고 싫어서 발버둥 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발버둥은 고작 어른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거나 장난이 조금 심한 정도였지만, '꼰대' 였던 나를 포함 어른들의 눈에는 튀는 아이나 힘든 아이로 비쳤던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아이의 반항,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찾아온 세상 늦은 나의 질풍노도, 그리고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총체적 난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가버리지 않으려 고민하고 생각하고 버티다 보니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얼마 전에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온 온실 밖으로 발을 내밀어 보기 시작했다.  온실을 벗어나기까지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온실 밖에 나와 바라본 세상은 예상과 달랐다. 달라진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 더 따뜻하다거나 추운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확실한 건 내 마음을 더 평온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던 길만 안전하고 온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안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도 내가 바라보는 눈으로 보라고 강요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중이다. 온실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른 아이, 어린이이기에 서툴지만 적어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 덕분에 내가 조금은 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 아이가 나를 친구 같은 엄마라고 생각해 주는 것 같다.


친구 같지만, 만만하지는 않은 좋은 엄마가 되도록 더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잔소리를 줄이고, 아이를 더 믿어줄 생각이다. 권위적인 꼰대 엄마는 아니어도, 권위 있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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