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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Mar 10. 2022

아들의 선거

아들 맘의 다짐

작년 2학기 학급 부회장이었던 큰 아이는 2학년이 되면 1학기 부회장 선거에 나갈 것이라고 줄곧 말해왔다. 회장은 어깨가 무거울 것 같고, 자신의 능력이 그만큼에 미치지 못한다나. 

휴일이었던 어제 아이 친구 몇 명이 선거 공약을 봐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열심히 수정해 주더니 나에게 와서 말했다.

"크, 내가 봐도 너무 잘 고쳐준 것 같아."

"너도 나간다며, 내일 선거하는 거 아니야?"

"아닐걸."

2학년이 되기 전부터 2학년이 되면 1학기 부회장 후보로 나간다고 말해왔던 녀석이 정작 정확한 선거일조차 모르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일 (그러니까 어제의 내일) 선거날 인 게 분명했지만 아이는 '아닐걸.'이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다른 일에 열중했다. 나도 더 이상 선거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이가 던진 그 짧은 한마디에, 지금은 귀찮으니 그것에 대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밤 열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보더니 소리쳤다.

"헐."

"왜?"

"내일 선거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속으로 삼켰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아이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공약 준비하면 어때?"

"그래야겠어. 지금 너무 졸려."

내 옆에 누운 아이가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가슴을 토닥토닥해주다가, 어릴 때처럼 자장가를 불러봤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엄마, 그건 하지 마."

"응."

그냥 조용히 토닥여주니, 잠이 안 온다던 아이는 몇 분만에 코를 골았다. 

아침 7시에 아이를 깨웠다. 단 한 번도 단번에 일어난 적이 없는 우리 아이는 오늘도 몇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팬티바람으로 잠들었던 아이가 춥다며 몸을 웅크렸다. 이불을 폭 덮어줬다. 

"일어나, 너 공약 준비한다며."

"엄마, 너무 졸려."

"그럼 더 자. 이번에 안 나가도 되잖아."

청개구리 녀석이 더 자라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종이와 연필을 들고 다시 침대로 들어와 눕더니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나름의 공약을 적었다. 

"이러다 떨어지면.."

"떨어지면 뭐 어때."

이왕 나가는 거 부회장에 당선되면 좋고, 떨어진다면 실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가 하교했다. 표정을 살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어떻게 됐어?"

"정말 망했어."

"빵 표야?"

"아니, 너무 치열했어. 4표 얻었어."

"괜찮아. 그래도 4표나 얻었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속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나 나나, 우리가 모범생처럼 생기지는 않았잖아. 그래서 1학기는 아무래도 불리해. 너의 진가를 알 수 있는 2학기에 나가 봐."

그제야 학급선거 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기호 4번이었거든. 그런데 내가 3위를 해서 떨어졌단 말이야. 그랬더니 애들이 기호 4번 안철수가 기호 2번에 단일화되어 기호 1번과 2번이 치열하게 맞붙었대. 접전 끝에 결국 기호 2번이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 됐거든. 어제 대통령 선거랑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야."

"대박, 정말이네. 재밌다."

아이와 나는 이렇게 속상했을지도 모르는 나름의 실패를 마음에 상처로 담아두지 않고, 웃으며 흘려보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큰 아이는, 자기 말로는 사춘기가 지나갔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요즘에는 아이와의 수다가 즐겁지만, 언젠가 아이와 수다 자체가 힘들 만큼 말이 안 통하고 싸우게 되는 날이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한결같기 어려운 게 사람의 심리라는 걸  안다. 나조차도 오락가락, 수시로 변하는데 아이라고 변함없을 리가 없다. 아이는 수시로 변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성향 자체가 변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주기에 따라 예민해질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엄마나 아이 각자 성향이나 성격, 환경 등 모든 요인이 집집마다 다르다.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아서를 외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아들 둘을 키우며 유명한 육아서마다 찾아 읽었던 적이 있다. 읽기 전에는 답답하고 심란한 마음을 해결해 줄 것 같은 기대로 신이 나서 시작했지만 늘 한숨을 쉬며 책을 마무리하거나, 읽다 말고 책을 덮어버리곤 했다. 책에 나온 대로 연습해서 따라 해 보면, 언제나 아이는 예상을 벗어나는 반응이었다. 책에 나온 내용이 객관적으로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지만, 아들 둘 육아 현실에는 도무지 적용이 안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이 따라줬다면, 과연 육아하며 고민할 일이 있었을까?


언젠가부터 육아서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뜬구름만 잡는 이야기, 이론적인 이야기, 그게 아니라면 ‘엄친아’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 자유 영혼에 고집불통인 나의 두 아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육아서에 나온 그 엄마의 모습처럼, 아이가 화나게 해도 감정을 잘 다스리며, 단호하지만 따뜻한 훈육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화를 참지 못하는 내가 분노 조절 장애가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상적인 이야기를 읽고 그대로 되지 않는 나와 아이의 모습에 좌절하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육아서는 가능한 한 멀리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육아 초보자이자 육아 전문가이다. 엄마로서의 매일은, 그 매일이 처음이기에 육아 초보자이다. 아이의 엄마인 나보다 내 아이를 잘 아는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만큼은 다른 엄마보다 육아 전문가이다. 아이가 세상이 정한 기준대로 따라가지 않아서, 정해진 틀에서 자꾸만 벗어나려 해서, 내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아서 아이를 다그쳤던 적이 있다. 내가 잘못 키운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시절이었다. 


육아에는 정해진 답, 정답은 없다. 책에 나온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아이가 문제가 있거나 엄마인 내가 부족한 건 아니다. 그러니 내 아이가 세상의 정해진 기준을 벗어난다고, 책에 나온 대로 되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며 자책할 필요 역시 없다. 


십 년 넘게 아들 둘을 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이가 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언제나 결국에는 엄마인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결론이 난다. 세상이 원하는 속도나 방향이 아닌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쏟으면,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걸 느끼고 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낀 아이는 그대로 엄마를 아끼고 사랑해줄 거라 믿는다.


오늘도 난 사춘기 녀석 둘을 키우며 울고 웃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 다짐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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