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드라마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고, 하고 또 해도 계속하고 싶은 말이 많기에. 오늘도 난 일어나자마자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전지적 정이작가시점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처음에 이 드라마는 단지 가장 찬란했던 시절, 청춘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인 줄 알았다. 사실 청춘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만 다뤘다고 해도 지금처럼 나는 이 드라마에 열광했을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에, 전날 방영된 9화에서 주인공 백이진(남주혁)이 나희도(김태리)에게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 정의했다는 글을 썼었다.
https://tv.naver.com/v/25610719
"넌 항상 나를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끌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관계의 정의야. 이름은 무지개. 맞다, 넌 무지개 아니라고 했잖아 너 아직 대답 안 했어 무지개 아니고 뭔지."
"사랑. 사랑이야.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이 장면을 보고 난 소리 지르고 말았다.
"꺅! 사랑하고 있대!"
본방사수 중에 본 이 장면은 백이진이 드디어 나희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설레는 장면이었다. 손꼽아 기다린 장면이기도 했다. 시청자는 진작부터 사랑임을 알고 있었지만, 둘만 모르는 것 같았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처음 입 밖으로 꺼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희도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진에게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이진은 그런 희도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한다. 희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희도의 모습 그대로,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고 이 고백으로 희도가 행복해진다면 바랄 게 없다고.
희도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만 , 시련 앞에서 이진이를 일으켜 세우고 이진이만의 빛을 잃지 않도록 해 준 그동안의 모습을 보면 희도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열아홉 '아가'이기에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https://tv.naver.com/v/25621908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난 네가 뭘 하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너 자체를 사랑하고 있고, 이 고백으로 네가 행복해진다면 난 바랄 게 없어."
"바랄 게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래?"
"그렇던데? 너한텐."
이진이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남녀 사이의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더 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한다는 자신의 고백으로 상대가 행복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니, 이 마음은 내가 아이들에게 가진 마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더 깊고 성숙한 마음이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 나를 빛나게 해 주니 어떤 시련이 와도 그 빛에 기대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부럽다! 나희도!!
이 드라마는 나의 인생 드라마이다. 인생 드라마가 줏대 없이 자주 바뀌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꽤 오래갈 것 같다. 나의 인생 드라마는 "인생" 드라마가 틀림없다. 드라마 소개에는 '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로맨스'라는 말이 나와 있지만 단지 청춘들의 청량 로맨스만이 아니라 "인생"을 담고 있다. 청춘뿐 아니라 그런 청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누구나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남겨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고 그래서 당시엔 소비하듯 흘려보냈던 청춘이지만 이제는 힘들고 아팠던 그 시절의 기억에 필터가 씌어 아름답기만 했던 추억으로 남았다. (드라마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불완전하고 불안하기에 나름의 고민과 아픔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 시절의 고민은 그리울 만큼 현재의 고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아름다운 그 시절을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 방영된 11화에서는 희도와 엄마가 갈등이 극에 달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상하고 따뜻했던 아빠가 희도의 빛이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희도의 가슴속에 남아 희도의 마음에 온기를 주고 있었다. 희도가 열세 살이었을 때 세상을 떠난 아빠를 희도는 기억하고 싶어 했다. 잊고 싶지 않은 것 같은모습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세월이 흘러 녹슬어버린 아빠가 만든 의자를 보며 슬퍼할 만큼이었다. 하지만 희도의 엄마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희도 엄마는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불편해했고 피하기만 했다. 아빠가 원래부터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사는 듯했다. 그런 엄마로 인해 상처받아왔고 엄마를 미워했다.
"엄만 아빠 얘기 나오면 피하잖아. 맨날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잊으려고만 하잖아."
"넌, 네 아빠에 대한 그리움뿐이지. 난 아니야. 난 8할이 원망이야. 너 키우면 서 쭉 그랬어. 피해야 살 수 있었고 잊어야 살아졌어. 그래 이제 너한테 이해 안 바랄게. 그런데 잊으려고 피하려고 하는 내 노력 비난하지 말아 줘.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니까."
사실은 희도의 엄마도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티 내지 않았지만, 희도보다 더 그리움이 크지 않았을까. 원망의 크기만큼이나. 희도가 빨리 어른이 되어 아빠가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며 오열하는 희도 엄마의 모습에 나도 같이 오열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희도 엄마보다는 덜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다. 희도 엄마는 본인이 버티기 위해 희도에게 주는 상처를 외면해 왔다. 알면서도 선뜻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않다. 두 아이가 상처받았을까 봐, 상처받게 될까 봐 내 상처를 외면하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철저히 아픔을 숨기고 있다. 어느 때보다 밝은 모습으로 씩씩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글을 통해 흘려보내고 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그가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게 하며 그를 만나러 갈 때마다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고자 노력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의 기억이 흐려져도 아빠를 만나러 갔던 날은 슬프기보다는 즐거운 날이었다는 걸 마음에 새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너무나 일찍 떠나버린 남편으로 인한 아픔은, 내가 아이들 몫까지 다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에 대해 그리움이나 원망의 감정이 들 때마다 글을 써서 재빨리 비워버리고 그저 시간에 맡겨 버리기에 이제는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내가 사별 후의 아픔을 버티는 방식이다. 요즘 들어 아이들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찬란한 청춘을 지나 중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사랑을 했으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훗날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여러 번 이별을 했고, 이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로 인해 사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나로 인해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나의 인생뿐 아니라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고난이나 시련, 아픔이나 상처, 그리움이나 원망은 없는 삶을 살고 싶지만 또 이런 것들이 있기에 지나간 나의 청춘 그리고 나의 오늘이 아름답고 소중하지 않을까.
오늘도 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기다리며 행복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맞다. 난 이 드라마 덕후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