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 Y Jan 12. 2020

[무이네] 여행은 꿈을 꾸는 것일지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베트남에서 한국의 12월로 돌아왔다. 첫 해외여행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름에서 겨울로 이동하니 몸이 버티지 못하고 여독이 왔다. 하루 정도 몸을 전기장판에서 지지니 다시 겨울에 적응을 했다고 말하는 것 같이 열이 떨어지고 활기를 점점 찾고 있다. 2019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여행은 청년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난 29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동남아 여행을 갔다. 가난하기 때문에 여행을 못 가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였다면 한국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정신적인 이유였다.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든 그 돈이면 한국에서 호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 나라에서 무얼 배우고 올 수 있을까? 혹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저 유명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행위는 아닐까? 한때는 도피라고도 생각했다.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망. 여행을 떠나기 전 생각했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여행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생기자 당시 김영하 작가의 신작인 <여행의 이유>를 읽었고, 이어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다. 두 책을 모두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알 것 같다.    

  

  티켓팅을 하였을 때 한국 출발 시각이 오전 10시 15분이었고, 호치민 공항 도착이 13시 40분이었다. 고작 3시간 조금 넘는 시각인 걸 확인하고 한국이랑 참 가까운 나라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도착하고 핸드폰을 본 순간 경악했다. 15시 30분이 막 넘어간 시각. 너무 놀라서 여자친구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우리의 계획 중 일부를 수정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몇 번 있는 여자친구는 아이를 쳐다보듯 나를 보며 아직 핸드폰이 한국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리다. 시차. 나는 시차를 교과서에서만 봤지 몸으로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때 문득 우리의 비행은 다섯 시간의 비행인지, 세 시간의 비행인지 궁금해졌다. 살다 보면 가끔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해놓을 걸 하는 순간들이 있다. 여행에선 그런 순간들이 너무 많다. 난 문과 출신이며 과학에는 아주 관심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시차에 대해서 궁금했지만 검색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는 우리의 비행이 5시간 비행인지, 3시간 비행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물리적으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것은 3시간이겠지만.      


  중요한 건 이걸 몸소 체험했을 때 여행이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이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문득 고개를 저으며 공간과 시간을 둘 다 이동하는 것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여행을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건 가장 가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비교적 감춰져 있다. 호치민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니 익숙한 냄새가 났다. 마치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간 냄새가 났다. 노인 냄새. 사람들에게서 난 것인지 공항에서 난 것인지는 잘 구분이 안되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맡는 익숙한 냄새가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호치민 공항을 나오자마자 무수히 많은 인파와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놀랐다. 이 나라의 첫인상은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우리는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어플인 그랩을 이용하여 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라. 한국에서 생활한 거의 모든 시간들이 지워져버렸다. 항상 블로그와 유튜브를 검색했고 우리는 가장 안전하게 이동했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시간들이 지워진 것은 아니다. 택시 기사가 길을 돌아갈까 봐 지도 어플을 켰던 것처럼 우리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했다. 택시 기사가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통행권(?)을 끊고 우리에게 보여줬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지만 느낌적으로 저 용지가 통행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000동이 적혀있었다. 10,000동이면 한국 돈으로 500원이다. 우리는 그랩 어플을 보여주며 여기에 만 동을 더 주겠다고 말했지만 기사는 답답하다는 눈치로 계속해서 베트남어로 말했다. 결국 알아듣지 못한 우리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아무 말 않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랩 어플에는 89,000동이 적혀 있었지만 우리는 100,000동을 주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오케이란다. 화폐는 만국 공통어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건 우리가 일상을 벗어났다는 것에도 의미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때어놓은 것이다. 술을 먹을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취기가 오를 만큼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마치 그 시간이 동떨어진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대학교를 찾아 후배들과 술을 먹으면서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안타깝게 느껴지는 그런 때. 혹, 밤새 술을 먹으면서 회포를 풀다가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안타까움. 여행은 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잠시 동떨어진 느낌.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곧 지나갈 것을 알고는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여기서 방점은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순간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단지 토요일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고, 일요일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여행은 모든 순간 어떻게든 붙잡고 싶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직원이 토요일 파티 팜플렛을 나눠주었다. 680,000동이라는 아주 비싼 금액이었지만 우리는 상의 끝에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해가 질 무렵 해변가에는 테이블이 세팅되었고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파티에서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며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전통공연이 이어졌고, 베트남의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가수가 와서 노래를 불렀다. 술기운이 살짝 오르고, 파도 소리가 이어지고, 외국인들이 눈앞에서 브루스를 추고 있는 데다 음식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으니 감성은 충만해졌다. 바람은 생각보다 거셌지만 그 누구도 불평불만 없는 파티였다. 그 순간 여행과 술자리는 굉장히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취한다는 것은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술에 취하면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여행은 어쩌면 시작부터 취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도착하고 난 뒤 꿈을 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 기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다시 한국에 있는 것이 꿈인지, 베트남의 기억들이 꿈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한국이라는 일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베트남은 꿈을 꾼 것처럼 흐려진다. 몸으로 느꼈던 베트남의 햇살, 오토바이의 소음, 호치민의 거리, 무이네의 사막, 무이네의 바다, 호객행위 하는 택시 기사들, 불친절한 입국 심사대의 직원과 풍짱버스 직원 그리고 베트남 공항에서의 티켓 매표소 직원, 리조트에서 항상 웃으면서 우리를 반기던 직원들, 호갱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벤탄 야시장의 점원들, 처음으로 흥정을 잘한 것 같은 보케거리의 미스터 크랩 아저씨, 우리와 같은 리조트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진다. 꿈. 어쩌면 계속해서 여행을 가려는 것은 꿈을 꾸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악몽은 두려워도 일상을 벗어난다는 꿈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살면서 꿈을 꾸지 않는 건 정말 불행한 삶이니까.       

2019년 12월 06일

작가의 이전글 줄리아 듀코나우의 <로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