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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Y Oct 30. 2019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

  마이크 리의 작업 방식에 대해선 이미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쓴 글에 수록되어 있으니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다.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마이크 리의 작업 방식이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에 <네이키드>와 <비밀과 거짓말>을 찾아서 봤다. 역시나 언급했지만 <비밀과 거짓말>과 <세상의 모든 계절>을 비교하기에는 시간차가 너무 벌어져 있으며, 그 사이의 영화를 언급하지 않고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지양하겠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영화를 2천 편 정도 보면 연출이나 기술적인 요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3천 편 정도를 보면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난 이제 3천 편 정도를 봤다고 생각하는데, 연기를 보는 것이 아직은 너무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영화는 연기를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영화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계절>도 그런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나선 서사 진행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심리적 운동성에 대해 글을 썼다. <비밀과 거짓말>을 보고 난 다음 곰곰이 생각했지만 역시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연기를 보는 것과 <비밀과 거짓말>에서 연기를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 한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우리가 알게 되는 정보와 캐릭터의 행동이 거의 동시에 상호작용된다면, <비밀과 거짓말>은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의 이유(정보)를 유추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아크 플롯의 전형적인 서사 진행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미니 플롯으로 조각난 영화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는 미니 플롯이다. 누군가의 동선을 따라가고자 하면 끊어진다. 영화는 호텐스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을 한다.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이 영화를 바로 이어봤을 때의 특이한 점은 편집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선 편집이 거의 가려져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편집은 종종 드러난다. 물론 롱테이크 장면 또한 같은 의미다. 두 번째 장면은 결혼식이다. 장례식과 붙은 결혼식.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는 봄 시퀀스에서 임신한 배를 볼 수 있고, 겨울 시퀀스에선 장례식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모리스와 모니카 부부를 보여준다. 이 집의 거실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액자에 끼워져 있는데, 부부의 대화로 유추해보면 여자아이는 조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계속해서 대화 속에서 관객이 모르는 정보들로 긴장감을 꽉 채운 채로 장면을 설계해 나간다.     


  네 번째 장면에서는 록산이 거리로 떠났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고 다섯 번째 장면에서는 신시아가 어디서 일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섯 번째 장면에서는 신시아와 록산의 모녀 관계가 등장한다. 그다음은 다시 호텐스가 등장하여 호텐스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물들을 대략적으로 소개한다. 뒤이어 계속해서 인물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마이크 리는 이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한 뒤에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목표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다.          


  호텐스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죽은 뒤 형제들이 집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놓고 싸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친자식들은 그 모양이지만 입양아 호텐스는 재산 분할에는 관심조차 없다. 우리는 세 가족을 보게 되는데 모두 문제가 있다. 그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 봤을 때 가족들은 우리 사회가 보편적이라고 정해놓은 기준에서 무언가 빠져있는 것이다. 모리스와 모니카에게는 아이가 없고, 신시아에겐 남편이 없다. 호텐스에게도 아빠가 부재하고 있으며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이크 리는 가족 사이에 비밀과 거짓말이 없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난 동의하지 않지만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모리스가 자신의 사진관에서 가족사진들을 찍는 장면은 모리스와 모니카의 부부 생활과 교차되어 있다. 사진을 찍을 땐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진을 찍는 그 찰나의 순간에 조작된 것이다. 사진을 찍는 그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면 사진기에 포착되지 못한 그 모습은 우리에게 포착된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작업들 사이에 모니카가 굉장히 짜증을 내는 장면과 모니카가 화장실에서 테스트(?)를 하는 장면, 그리고 모리스가 모니카를 간호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사진을 찍는 가족들. 모리스와 모니카 부부. 문제가 없는 가족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한편 호텐스는 친모를 찾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은 흑인 호텐스의 친모는 백인 신시아였다. 여기서 마이크 리는 분명하게 인종 문제를 건드린다. 백인이 버린 흑인 딸. 그들이 결합하려면 흑인 호텐스가 백인 신시아 가족에 속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영화는 호텐스가 신시아 가족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로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인종에 관한 시선이 돼버린다. 마이크 리는 여기까지 와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던 자신의 시각이 인종에 관한 시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흑인 호텐스를 백인 신시아의 가족에 합류시키면서 영화를 끝낸다. 그리고 그 결말에서는 그들이 진짜 화목한 가족처럼 보인다. 한데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낼 수 있는 문제인가?     


  이 문제를 건드리면서 마이크 리가 설정한 것은 신시아가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딸 록산과는 항상 어긋난 관계이며, 동생 모리스도 모니카와 결혼하면서 자신과 멀어졌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신시아. 마이크 리는 이 설정을 정말 잔인하게 보여준다. 록산이 그녀의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며 소파에 드러눕자 쇼트가 바뀌면 신시아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있다. 가슴을 만지면서 흐느끼는 신시아. 그다음 쇼트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호텐스다. 즉, 이 편집은 신시아의 외로움을 호텐스가 채워줄 것이라는 복선의 편집이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던 장면이 있다. 하나는 호텐스와 친구가 나누는 대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모리스의 사진관에 찾아온 이전 사진관 주인과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둘 다 기능적인 장면이다. 한데 이 장면들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호텐스와 친구의 대화에서 우리는 호텐스가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친구의 말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물론 마이크 리가 교묘하게 그 자리에 넣은 것이다.      


  자세히 보면 호텐스와 그녀의 친구의 대화 장면 전 장면은 통계국에서 호텐스가 신시아의 자료를 얻게 되는 장면이고, 그 대화 장면 뒤에는 통계국에서 얻은 자료로 신시아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동력 차원에서 본다면 중간에 대화 장면은 없어야 된다.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야만 이야기의 속도가 붙는다. 만일 마이크 리의 영화가 오락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면 마이크 리 자신은 그 평가에 별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마이크 리는 호텐스가 신시아를 찾아가는데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대화에서 엿보는 건 궁금한 걸 묻지 못한 뒤에 오는 후회, 부모에게서 배운 무언가이다.      


  마이크 리가 훌륭한 건 호텐스가 찾아갔을 때 신시아를 바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를 호텐스 대신에 모리스가 채운다. 아마도 신시아의 외로움은 사람이 아니라 남자가 채워야 하는 자리일 것이다. 모리스가 그 집에 가서 하는 것은 록산의 아버지의 자리에 가거나 신시아의 남편의 자리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록산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파악하고 난 다음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돌아가기 전에 신시아에게 돈을 준다. 그건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이다. 그 자리에 호텐스는 갈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신시아에게 그 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만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쌓을 사람이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마이크 리는 그 설명을 잔인하게 편집하는 것으로 했다.     

 

  이해가 안 되는 두 번째 요소. 마이크 리는 영화를 진행하면서 감정적 쇼트를 삽입했다. 여기서 이해가 안 되는 건 감정적 쇼트로 볼 수 없는 쇼트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이다. 모리스가 신시아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카페(?)에서 잠시 앉아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이는 신시아의 집을 방문하고 마음이 좋지 않은 모리스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다른 개념으로 장면 도입부에 다른 쇼트들을 넣어 편집한 장면이 많다. 모리스의 사진관으로 이전 주인이 찾아오는 장면의 시작도 자세히 보면 맨 앞에 모니카가 화분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모리스가 신시아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장소 이동을 하기 전에 호텐스의 장면이 삽입된다.      


  호텐스의 용기로 신시아와 호텐스는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마이크 리는 신시아 배역을 맡은 브렌다 블레신 배우에게 호텐스 역할을 맡은 배우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게 진짜인지 진짜더라도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면은 망원렌즈로 촬영되었으며 롱테이크다. 즉, 촬영 장면만 본다면 마이크 리가 그렇게 찍고자 했던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개인적인 궁금증은 브렌다 블레신에게 어떤 디렉팅을 했는지가 궁금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망원렌즈로 찍기 때문에 움직임이 z 축으로 움직이게 되면 포커스의 심한 문제가 뒤따른다. 그렇기에 z 축으로는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을 것이고, 수평축으로도 최대한 움직임을 배제하는 쪽으로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연기를 지속해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아마 디렉팅은 놀랄만한 사실이 NG를 내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후 신시아는 모리스에게서 한 쪽의 측면을, 호텐스에게서 한 쪽의 측면을 채운다. 신시아가 호텐스에게서 정서적인 면을 채우자 록산과의 다툼은 잦아든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록산과 한 장소에 있는 시간 자체가 줄어드니까. 그 시점에서 모리스의 사진관에 스튜어트 크리스찬이 찾아온다. 불청객의 등장.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기능적인 장면이다. 그렇다면 이 인물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모리스에게 나타났지만 그가 나타남으로써의 효과는 신시아에게 있다. 그는 어쩌면 신시아가 겪어야 할 그다음 단계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도식적인 설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신시아에겐 록산밖에 없다. 하지만 록산이 떠난다면 신시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크리스찬은 아내가 도망갔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더 일찍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물질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 모두 결핍 상태이다. 그 결핍을 채우는 건 알콜. 우리가 이전에 봤던 신시아. 호텐스가 나타나기 전, 모리스가 다시 신시아를 찾기 전 신시아의 상태.      


  호텐스의 용기로 호텐스는 자신의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신시아의 용기로 호텐스는 가족의 일원이 된다. 록산의 생일파티. 결국 여기서 모든 것이 밝혀진다. 모니카의 불임. 신시아의 딸 호텐스. 록산의 언니 호텐스. 이 파국은 쉽게 해결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의문이 남는다. 록산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밝히지만 호텐스의 아버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건 그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어서인가. 아니, 아직 신시아는 모든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비밀과 거짓말이 없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가족이 아닌 사람은 제인이다. 제인은 그 자리를 왜 차지하고 있는가. 여기서 마이크 리는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도 가족으로의 확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영화는 모든 게 괜찮아졌다는 뉘앙스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진 것일까? 쉽게 설득되진 않는다. 정말 이제는 록산과 신시아 사이의 균열이 줄어들까? 모니카는 모리스에게 신경질을 내지 않을까? 모리스는 신시아를 자주 찾아올 수 있을까?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마지막 시퀀스 이전보다 마지막 시퀀스 이후가 조금은 더 나은 가족이 되는 길이라고.


  2019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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