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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Nov 08. 2016

경복궁과 창경궁

<스토리펀딩> 3화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광화문 광장을 바라보면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과 그 뒤쪽으로 경복궁이 고즈넉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 뒤쪽으로 600년 고도(古都)를 지켜온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이 이 가을 경복궁과 어울려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면한 주변의 높은 건물에 올라서면 경복궁의 많은 전각들과 북악산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전통건축의 묘미를 한 눈에 느껴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광화문과 뒤쪽의 경복궁 전경을 높은 곳에서 바라본 모습의 흑백 드로잉이다.


경복궁 전경 흑백 드로잉


이 흑백의 드로잉 위에 아래와 같이 깊어가는 가을의 컬러를 입혀 보았다.


가을을 입은 경복궁 전경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이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온 백성들이 큰 복을 누리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 궁은 백악산(북악산)을 배경으로 좌측에는 낙산, 우측에는 인왕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쪽으로 청계천이 흐르는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됨에 따라 정궁의 역할이 창덕궁으로 넘어갔다가 조선말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일제 때에는 근정전 앞쪽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지난 1995년 해체되고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현재는 막힌 공간없이 시원스런 궁궐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동십자각
경복궁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경복궁 우측에는 자그마한 전각 하나가 도로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동십자각으로 알려진 건물이다. 원래는 경복궁 외곽으로 성벽이 있었는데 그 성벽 양쪽 귀퉁이에 대칭으로 지어진 망루 2개 중 동쪽에 놓여진 것이다. 서쪽에 있던 서십자각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성벽과 함께 없어졌고 이 동십자각도 연결되어 있던 성벽 없어지자 경복궁에서 떨어져 홀로 외로이 남아있게 된 것이다. 차로에 둘러싸여 길 건너 인도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단아한 형태의 완벽한 2익공(기둥 머리에 소의 혀모양으로 길쭉하게 돌출된 2개의 부재) 형태로 조선후기의 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 옆 동십자각


광화문을 통과하여 경복궁 안을 들어서서면 웅장한 근정전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전인 근정전은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서 조선 초기 여러 왕들의 즉위식을 비롯한 왕의 집무 기능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기둥뿐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많은 포(包:지붕을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나무로 짜여진 부재)가 얹힌 다포(多包)양식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넓은 앞마당에 도열해 있는 품계석을 보니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을 많은 고관대작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경회루
근정전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경회루를 마주하게 된다. 가로 128m, 세로 113m 직사각형 연못 안에 세워져 있는 누각이다. 경사스런 만남(慶會)을 뜻하는 이 경회루는 국가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누각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은 총 48개로서 바깥쪽에 24개의 사각기둥, 안쪽에는 24개의 둥근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쪽 사각기둥 24개는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을 거쳐 대한, 소한까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24절기를 의미하고, 안쪽 둥근기둥 24개는 8궤와 1년 열 두 달을 의미한단다. 연못 안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진 두 개의 섬이 있는데 ‘만세섬’이라 부른다. 조선의 왕들은 연꽃이 만발한 이 연못에서 배를 타고 경회루에서 만세섬을 오가며 풍류를 즐겼다 한다. 
아래의 그림은 이 경회루를 흑백으로 그린 것이다.


경회루 흑백 드로잉


이 흑백의 드로잉 위에 여름 분위기의 컬러를 입혀보았다.


여름 분위기의 경회루 컬러링


향원정
경회루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향원정이 나타난다. 광화문과 근정전, 강녕전을 잇는 경복궁의 남북축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간다(香遠)’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경복궁 북쪽에 자신이 기거할 건청궁을 지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섬을 만든 뒤 섬 가운데다 2층의 정자를 세우고 이를 향원정이라 이름지었다. 건청궁과 향원정을 연결하는 다리인 ‘취향교’는 원래 북쪽 건청궁에서 남쪽 향원정을 잇도록 되어 있었다. 이 다리는 6.25때 소실되었으나 이후 복구과정에서 남쪽으로 옮겨 놓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쪽에서 향원정을 바라보면 뒤쪽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전통건축의 모습이 겹쳐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낸다. 우리나라 주요 전통건축의 모습을 차용하여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박물관의 모습은 건립당시부터 많은 비판을 안은 채 지어졌다. 그러나 한 장소에서 모사된 우리의 주요 전통건축의 모습(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법주사 팔상전, 화엄사 각황전 등)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박물관의 전통건축의 모습이 향원정과 어우러지는 멋진 서정은 사시사철 끊임없이 사진가들이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향원정으로 이끌고 있다. 그림은 이러한 향원정에 눈이 내린 모습을 그린 것이다.
  

눈내린 향원정

창경궁
경복궁과 이웃하고 있는 궁궐인 창덕궁은 1화에서 소개한 바가 있다. 창덕궁과 담을 경계로 한 지역에 놓여 있고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동궐(東闕)로 불리운 창경궁을 3화의 말미에 담아보고자 한다. 창경궁 전경을 찍기 위해 맞은 편 위쪽의 공간을 찾았는데 정문인 홍화문 맞은편의 서울대학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마침 친구가 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친구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서울대학병원 암병원 5층에 오르니 창경궁 쪽으로 멋진 옥상정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옥상정원에서 편안히 창경궁을 관조할 수 있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 임금 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일제 때에는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7년부터 본래의 궁으로 복원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한국관광공사 백과사전 인용) 창덕궁은 구릉지에 위치하다보니 자연지형에 따라 건물의 축들이 약간씩 틀어져 자연스러운 배치가 이루어졌다. 반면 창덕궁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창경궁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서 정문인 홍화문에서 명정문, 명정전, 빈양문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각들이 뚜렷한 주축을 가진 좌우 대칭의 평지형 궁궐배치를 하고 있다. 그림은 암병원 5층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모습이다. 창경궁 뒤쪽으로 안국동 도심 빌딩의 모습과 북악산의 모습이 어울려 멋진 서울의 도심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컬러링은 아직 가을이 깊이 영글지 않아 단풍이 약간 든 10월의 모습으로 색을 입혀 보았다.  


10월 어느 날의 창경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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