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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Jun 24. 2015

천사의 성 산탄젤로

로마 중심가를 흐르고 있는 티베르 강가에 위치한 산탄젤로 성(Castel Sant' Angelo)은 2세기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그의 가족의 유골을 보관하기 위한 영묘(靈廟)로 건축된 것이다. 이후 여러 황제들의 유골이 이 영묘에 안치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이곳에 안치된 황제는 217년 사망한 카라칼라였다. 그러나 5세기에 이 건물은 군사 요새로 개조되었으며, 이후 천 년이 지나면서 이곳을 교황의 요새로 사용하고자 더욱 견고하게 보강되었다. 13세기에 교황 니콜라스 3세는 원형의 성벽 위에 바티칸 시티와 연결되는 비상 연결 통로를 건립하였다. 이 비상 통로는 바티칸이 적으로부터 포위될 때마다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을 탈출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277년 교황 니콜라스 3세는 위험에 처했을 때 교황들이 안전하게 달아날 수 있도록 요새와 바티칸 시국을 연결하는 800m 길이의 비밀 통로 ‘파세토(이탈리아어로 ‘복도’라는 뜻) ’와 성벽을 건립하였다. 실제로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로마를 침략했을 때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이 통로를 이용하였다. 이후 1527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로마 약탈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교황 클레멘스 7세를 포함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 통로를 이용하여 요새로 몸을 피해 몇 달을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교황 바오로 3세는 교황이 유사시 성을 피난처로 삼게 될 경우를 대비한 호화로운 저택을 짓기도 하였다.

산탄젤로라는 명칭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흑사병을 진압하는 미카엘 천사의 환영을 보고서 붙여진 이름이며 16세기에 미카엘 천사의 대리석 조각상이 성 꼭대기에 세워졌다. 이 대리석 조각상은 18세기에 청동 조각상으로 대치되고 대리석 조각상은 현재 성의 내부 안뜰에 세워져 있다. 이 성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중세 무기 박물관으로 12~15세기의 무기들이 전시되고 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성의 감옥 입구 문을 열면 ‘여죄수의 방’에 이어서 두 개의 ‘사형수의 방’과 기름을 끓이는 가마가 있다. 가마는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한 것이고, 그 앞 두 개의 원형 방이 정치범을 수용하는 독방이다. 풋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수감되는 곳이 바로 이 방이다. 끝 방에는 우물이 있는데, 이탈리아의 사형 집행은 사형수가 그 우물에 목을 드리우면 칼로 목을 쳐 그대로 테베레 강에 떨어져 흘러가 버리게 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곳에 성 천사 미카엘의 청동상이 있고, 그 왼쪽에 ‘자비의 종’이 있는데, 이 종은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사형이 있을 때만 울려 처형의 종료를 알렸다 한다. 오페라 <토스카>에서 카라바도시는 이 성에 있는 감옥에서 나와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는 등 오페라 토스카의 주 무대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탄젤로 성 앞에는 산탄젤로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는 16세기 이래 몇 세기 동안 산탄젤로 다리는 처형당한 죄인의 시신을 진열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1535년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다리 양쪽에 베드로와 바울,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의 조각상을 세웠는데 조각상들을 세우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통행세를 부과하였다. 이후 베드로 성당 앞의 열주광장을 디자인한 바로크시대의 최고의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베르니니가 베드로와 바울의 조각상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10개의 천사 조각상으로 교체하였다. 천사들은 예수가 수난을 받을 때 사용되었던 여러 가지 소품(기둥, 채찍, 가시면류관, 십자가 등)을 하나씩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다리는 현재는 산탄젤로 성을 이어주는 보행전용으로 사용되는 제일 유명한 로마의 다리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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