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알프스산맥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호엔슈반가우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자리잡고 있다. ‘백조의 성’으로 불리우는 이 성은 영어로는 ‘new swan rock castle'로서 우리말로 해석하면 "새로운 백조의 석조 성"이라는 뜻이다. 이 성은 수많은 엽서나 퍼즐, 달력 등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저 유명한 디즈니랜드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비롯한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모델로 등장하는 유명한 성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언덕위에 솟아 있는 이 성은 영국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10선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성이다. 그러나 이 성은 이 성을 지은 왕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1845~1886)’의 부친 막시밀리안 2세는 ‘백조의 성’이라 불리우던 폐성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고딕 양식으로 개조하였다. 어린 루드비히는 이 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어렸을 적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는 15세 때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리벨룽의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과 같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바그너 오페라에 심취했던 그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 루드비히는 1862년 1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고 2년 후인 1864년에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가담하였지만 패배하게 된다. 이름뿐인 왕으로 전락된 루드비히는 패배감과 내성적 성격으로 의욕상실에 빠지게 되었으나 어렸을 때 꿈꾸었던 바그너의 음악에 나오는 중세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현실화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생기를 찾게 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생활하던 호엔슈방가우 성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건립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왕위에 오르기 전 그는 튀링겐의 아이제나흐에 있는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성을 호엔슈방가우 성 맞은편에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은 지형이 너무 급경사지여서 바르트부르크 성과 같은 성을 짓기에는 보통 난공사가 아니었다. 이에 그는 처음의 계획을 수정하여 다른 새로운 형태로 수정 계획되었고 1868년 건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루트비히 2세는 왕권 강화를 둘러싸고 관료들과 마찰을 빚게 되면서 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가게 되자 그는 건축에 온갖 정열을 쏟아 붇게 되었다. 그는 이 성의 현관 홀에다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의 한 장면인 레긴이 지크프리트에게 그람의 칼을 갈아주는 모습을 그려 넣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궁전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하고 치엠 호수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딴 궁전을 짓게 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바그너를 다시 불러 자신에 구상에 가담시켰다. 당시 바그너는 막대한 빚을 지고 유럽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루드비히는 그의 빚을 모두 갚아주고 호화로운 건물까지 지어주며 작곡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러나 바그너로 인해 국고가 낭비되어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자 결국 루트비히는 바그너를 축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짓는 데에 깊이 빠져버린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 건축물을 짓게 되면서 수많은 빚을 지게 된다. 결국 1886년 루트비히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 되고 왕위에서 퇴위되고 만다. 그리고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노이슈반슈타인 성 북동쪽에 위치한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체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조사 결과 당시 총리였던 루츠가 국고를 낭비하는 루트비히를 못 마땅히 여기고 루트비히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92년 완성되었고, 모든 정열을 쏟아 부었던 루드비히는 결국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한편 루드비히는 자신의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숴 버리라고 유언했다 한다. 그러나 이 성은 관광지로 최고였으므로 부서지지 않고 지금도 바이에른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었다. 바이에른을 파산직전까지 몰고 갔던 이 성이 이제는 바이에른의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변모되는 역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