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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Jun 24. 2015

중세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북쪽 강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뢰머광장(Römerplatz)은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기원전 50년경 로마군이 게르만족을 방어하기 위하여 조성한 곳이라서 뢰머(Römer ~ Roman의 독일어)베르크, Römerberg’ 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 지역은 중세의 건물이 가장 많이 위치한 곳이다. 1405년 프랑크푸르트 참의회가 뢰머베르크에 있던 3개의 귀족 저택을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하였는데 그 중 가운데 있는 ‘뢰머저택’의 이름을 따서 시청을 ‘뢰머’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2차대전때 파괴되었다가 재건한  2층에 있는 넓은 홀은 156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배풀었던 장소로 ‘카이저자르’로 불리운다. 황제의 방 내부에는 샤를마뉴(카알 대제) 이후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관청에서 식을 올리도록 되어 있는 독일의 결혼식 문화 때문에 뢰머는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뢰머광장은 박람회 도시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의 최초의 박람회(messe)가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뢰머 맞은 편에는 15~18세기에 지어진 ‘오스트차일레’라고 불리우는 목구조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는 15세기에 쾰른을 다녀가는 비단상인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1층보다 도로쪽으로 건물이 조금씩 튀어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1층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건물의 세금을 부과하다보니 세금을 적게 내려고 위로갈수록 건물의 면적을 더 넓게 만들려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건축의 모습들이다. 광장 중앙에는 정의의 여신(유스티아) 분수가 자리 잡고 있다. 영어의 ‘정의’라는 뜻의 ‘justice'는 이 여신상의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유스티아(justia)'에서 유래했다 한다. 여신상은 왼손에 편견을 배제한 평등을 상징하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정의의 집행에 엄격함을 뜻하는 칼을 들고 있다. 정의의 여신의 눈은 시청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이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란다. 여신상의 4면에는 각기 다른 조각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정의, 절제, 희망, 사랑의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광장 남쪽에 위치한 니콜라이 교회는 14세기까지 왕실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가 15세기부터 시 정부 소유의 루터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고딕양식의 교회이다. 내부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래스와 고딕건축의 특징인 첨두아치, 그리고 리브가 붉은 벽돌로 두드러지게 표현된 단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 옆에 있는 종탑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때 3번 40회의 종이 울린다. 오스트차일레 뒤편에 우뚝 서 있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일명 ‘카이저 돔’으로 불리우는데 1562년부터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라 황제의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붉은 색의 사암을 마감재로 사용하였기에 햇빛을 받으면 장밋빛으로 빛나는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사람인 바돌로메를 성인으로 모신 ‘성 바돌로메(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카롤링거 왕조의 루드비히 대제 때인 852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다 교황이 성 바돌로메의 유골을 성물로 이 성당에 보낸 이후 1239년 성 바돌로메에게 헌정하므로써 ‘성 바돌로메 대성당’이란 이름이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 후에도 건축공사는 계속되어 1415년 정상부의 팔각탑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로써 첨탑 끝까지 95m에 달하는 고딕양식의 성당이 완성된다. 그러나 1867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는데 이 때  중세시대의 도면에 따라 다시 재건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2차대전 때 크게 파괴되고 오늘날의 성 바돌로메 대성당은 2차대전 이후에 재건축한 모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광장에 들어서면 광장에서 중세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슨 큰 행사를 치를 것만 같고 그래서  마치 자신이 중세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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