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북부에 위치한 취리히는 중세부터 북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취리히호(湖)의 북안에서 흘러나오는 리마트강(江)과 그 지류인 질강 연안에 위치한 상업도시이다. 오늘날에도 도심에서 북쪽으로 11km 떨어져 있는 스위스 최대의 공항 클로텐 비행장이 세계 각지를 연결하는 허브역할을 하고 있다. 중세시대에 취리히는 북이탈리아·프랑스·독일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견직물의 대표적 생산지로서 번영하였으며(16세기), 길드 세력이 도시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17세기에는 면공업과 염색업도 성하여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취리히호를 이용하여 호반의 여러 도시에 직물공업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차 대전 때도 중립국을 선언하는 등 정치적, 경제적 안정 때문에 신용이 높아 국내 은행 이외에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의 금융주식의 중심지로서 유럽 최대의 외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 1519년 츠빙글리(1484~1531)가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교육자 페스탈로치(1746~1827)가 태어났다. 1832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취리히 대학이 설립되어 종교, 철학, 학술 면에서 취리히는 스위스의 중심이 되었다. 1855년 스위스 정부에서 설립한 공업기술전문학교는 1911년 현재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으로 학교 이름을 바꾸었다. 아인시타인이 수학과에서 공부하였고 교수직을 시작하였던 대학으로 유명한 이 취리히 공대는 2013년 현재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기초과학 분야에 있어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건축분야에 있어서 이 대학의 건축학과 교수였던 고트프리드 젬퍼(Gottfried Semper)가 설계한 본관 건물은 유럽의 다른 대학들이 모델로 삼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다.
취리히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중앙역 앞에서 취리히 호수까지 약 1.3km에 이르는 중심가 반호프 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쇼핑거리이다. 고급 상점과 백화점은 물론 유명한 은행 들이 밀집되어 있음에도 그렇게 번잡하지 않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한편 스위스 은행이 고객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비밀계좌제도 때문에 많은 개도국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비자금을 숨겨두던 은행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는 생각을 하면 썩 개운치는 않다. 이 반호프 거리를 따라 호수까지 가면 뷔르클리 광장이 나타난다. 호반 길은 ‘케’라고 불리는데 호수 물이 리마트 강으로 흘러나가는 케 다리의 양쪽 끝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무척 아름답다.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에서처럼 취리히는 취리히 호수 북쪽에 위치하여 호수의 낮은 곳에서 흘러나가는 리마트 강에 의해 동서로 나뉘어진다.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물고기가 노니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취리히 호수위로 백조들이 노닐고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아래 시민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호수의 모습은 어느 위치에서고 좋은 그림이나 사진의 소재가 된다. 케 다리에서 취리히 시가지를 돌아보면 리마트 강 우측에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역설했었던 곳이자 쌍둥이 탑으로 유명한 그로스민스터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강 좌측에는 지름이 8.7m나 되는 유럽 최대의 시계탑이 있는 스위스 최고(最古)의 장크트페터 성당(뒤쪽)과 샤갈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프라우 뮌스터의 하늘을 찌를 듯한 푸른색 첨탑(앞쪽)이 우측의 그로스민스터 성당과 함께 강 좌우로 도시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첨탑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취리히는 많은 성당과 교회당이 도시를 바라보는 이방인에게는 신기하게 여겨진다. 강변에 정박되어 있는 수많은 개인 보트들이 취리히의 높은 경제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오랜 역사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반도시의 정경을 만끽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