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Lucerne)은 스위스 중부 루체른 호(湖) 서안에 면해 있는 도시로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8세기에 베네딕트파(派)의 수도원과 대성당이 건립되고 이곳을 중심으로 한 생고타르 고개의 개통에 따라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필라투스, 리기, 티틀리스와 같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알프스가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 큰 산들 가운데 이 도시 뒤쪽에 있는 필라투스 산은 알프스 산맥과 루체른 호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필라투스 산의 이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이 죽인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총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유령이 그 죄 때문에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이 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산이 변화무쌍한 날씨와 천둥번개로 인해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았고 유럽에서는 불길하고 악의 상징인 용이 사는 산이라 했다하니 필라투스 산은 공포의 대상이고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루체른 호로 흘러 들어오는 로이스 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다리가 카펠교이다. 1333년에 지어진 이 다리는 길이가 280m로 호수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라 한다. 다리의 천장에는 루체른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수호신을 그려놓은 하인리히 베그만(Heinrich Wagman)의 111개의 판화가 걸려 있어 루체른의 역사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해 준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의 석조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를 겸한 루체른의 방어탑으로 위급할 때 시민에게 경종을 울리는 종각의 역할을 하는 한편 감옥 또는 문서보관소로도 사용되었다.
구시가지 북동쪽에는 ‘빈사의 사자상’은 스위스의 아픈 역사와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잘 말해준다. 19세기 이후로 스위스가 금융, 관광, 정밀광학 등으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지만 그 이전에는 스위스가 지정학적으로 여러 나라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다. 로마시대에는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했고 5세기경에는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0세기부터 11세기에 걸치는 동안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14세기에는 합스부르크家의 지배를 받는 등 스위스의 역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스위스는 주변이 온통 산이라 국토의 25%밖에 경장할 수 있는 땅이 없어 핍박받는 낙농국가에 불과하였다. 알프스의 자연환경은 척박했고 긴 겨울동안 쏟아지는 북풍한설은 이들을 더더욱 힘들게 했다. 주변국의 침략으로 스위스는 정복자들에게 약탈당하고 남자는 노예로 끌려갔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시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스위스인들은 몹시 시달렸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생겨난 루체른의 전설이 윌리엄 텔의 전설이다. 화살로 자신의 아들의 머리에 있는 사과를 맞추라는 이야기는 스위스인들에게 독립을 위한 저항정신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윌리엄 텔이 용병출신이었던 것처럼 스위스의 남자들은 몸이라도 팔아야 했다. 그래서 스위스의 남자들은 예로부터 주변 강대국에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용병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과 용맹성은 워낙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로마의 교황청과 프랑스 용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1527년 로마의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신성로마제국의 공격을 받았다. 로마 교황청이 함락위기에 처하자 자국 이탈리아 군인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189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3/4이 전사하면서까지 교황을 사수하였다. 이 일 이후로 스위스 용병에 대한 충성심과 용맹성에 매료된 로마 교황청은 근위대를 항상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프랑스 혁명 때의 일이다. 프랑스 혁명(1789년)이 일어나자 1792년 왕궁을 지키던 1,00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왕궁을 지키기 위하여 혁명군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에 혁명군은 ‘이 혁명은 우리나라의 일이니 우리와 상관없는 당신들은 빠지라’라고 만류하였으나 스위스 용병들은 자신들은 왕궁을 지키는 것이 의무이므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밝히고 끝까지 싸우다 결국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로마 교황청과 프랑스 왕궁에서처럼 자신의 의무를 다하다 죽어간 용병들의 죽음을 창에 맞아 스러져가는 사자로 표현하고 있다. 스위스 용병들이 보여준 ‘믿음’의 정신은 오늘날 스위스의 정신으로 이어져 스위스의 은행 사업을 비롯한 시계, 나이프 등 스위스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들에 대한 세계적인 신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루체른은 음악 페스티벌로도 유명한 도시다. 스위스 7대 문화행사로 손꼽히고 있는 루체른 음악 페스티벌은 1938년 이탈리아의 유명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루체른 교외 티립센(Tribschen)에 있는 바그너의 옛 거주지에서 유명 연주자들을 모아 결성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휘하면서 시작되었다. 1943년에는 스위스의 유명 연주자들로 ‘스위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Swiss Festival Orchestra)’를 조직하면서 이때부터 1993년까지 매년 루체른에서 국제적인 음악축제를 개최해 왔다. 1970년부터는 매년 주제를 정해서 음악축제를 해 오고 있으며 2003년에는 루체른 자체적으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베를린 필하모니, 빈 필하모니 등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1998년에는 루체른 호숫가에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KL,Kultur und Kongresszentrum Luzern)가 건립되면서 이 장소가 루체른 국제 음악페스티벌의 메인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년 여름 약 4주간에 걸쳐 KKL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연주회가 열리는 루체른 음악 페스티벌은 전 세계적으로 수 십 만 명의 음악 애호가들이 루체른을 찾아오는 국제 음악페스티벌로 그 명성을 높이고 있다.
알프스에 둘러싸인 루체른의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빈사의 사자상에서 보여지는 스위스인들의 믿음의 정신, 그리고 루체른 국제음악 페스티벌같은 문화산업은 루체른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동경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